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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 믿기가 만만치 않다고 느낄 때/ 시편37:1~7 / 2014년 7월 27일 주일 설교(주제: 신뢰)

예수 믿기가 민만치 않다고 느낄 때

시편37:1~7

2014년 7월 27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설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말세 중에서도 말세입니다. 그래서인지 신앙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라고 말들 합니다. 성경을 보면 마지막 때는 ‘고통하는 때’가 된다는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뭐 때문에 고통 할까요?

딤후3:1절 이하를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이유가 19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모두 19가지입니다. 이것들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힘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기적이고 육체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마지막 때에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교훈하는데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죄로 말미암아 타락해 있기에 이기적이고 육체적인 모습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그런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우리가 예수님 믿고 신앙 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포기해야 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좀 더 편한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신앙생활은 편한 생활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아시지요? 막8:34절을 보세요.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을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뭡니까?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욕심과 야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가 뭡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부여한 십자가인데 그것은 주님이 주신 사명과 직분입니다. 그것을 걸머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쉬운 것이겠습니까?

 

얼마 전에 어떤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 자기는 교회 권사인데 교회 나가면 마음이 너무 편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 교회 나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교회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이 부여한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가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많이 본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배신도 당해보고 심지어 아들에게 쿠데타를 당해서 쫓겨 다녀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오늘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신앙생활은 뭐가 문제인지를 점검해 보고 내 신앙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이 만만치 않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1.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 중에 가장 힘든 것은 사람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시험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단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낭떠러지기에 미끄러지다가 겨우 나무뿌리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매달려서 “사람 살려” 라고 아무리 외쳐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매달리다가 손힘이 없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나무뿌리를 놓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떨어져 보니 높이가 3~40센티 정도 밖에 안 되는 곳이 밑바닥이었는데 그것도 모래사장이었습니다. 그런 줄 알았으면 밤새 그 고생하지 않고 손을 놓았을 텐데 괜히 헛고생을 했다고 불평은 했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우리 앞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악하기 그지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사회 각 분야 도처에 악이 가득합니다. 악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보세요. 많이 선진국이 되었으나 아직도 죄악이 가득합니다.

어떤 사람은 깨끗한 사람 같았는데 청문회에 세워 들추어보니 온갖 악이 가득합니다. 정치인들만이 아닙니다. 경제 문화 교육 종교 각 분야에 악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실망케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니 시기하지 말라하십니다. 한마디로 사람 때문에 실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자신도 죄인이지만 주변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을 향해 원망불평하게 되더란 것이지요.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오히려 잘살고 호의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시나요? 1절을 보세요.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불평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나요?

또 2절을 보세요.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풀과 같이 베임을 당할 것이다.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이다. 무슨 뜻인가요? 한마디로 심판받아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각을 달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잘되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형통해 보이면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힘들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의 결말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베임을 당할 것이고 쇠잔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하고 평안이 넘쳐야 할 텐데 왜 오히려 원망불평하게 되고 시기 질투하게 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만족, 자기 이익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예배를 드리나요?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라고 예배합니다. 왜 기도하나요? 뭔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왜 봉사하나요? 그 봉사와 섬김이 내게 주어진 일이고, 그 일이 기쁨이고, 그 섬김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기에 감사하며 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고 어렵다고 느껴지면 우리 신앙생활을 적나라하게 점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악합니다. 그리고 불의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다 보니 힘들어하고 그러다보니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말씀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늘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2.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를 힘으로 삼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을 힘입어야 합니다. 3절을 보세요.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철저하게 그를 신뢰해야 합니다. 아멘?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일까요? 그것은 아를 이 땅에 보신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선은 “영혼 구원”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이 땅에 삽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엇을 먹을거리로 삼고 살까요? 밥입니까? 우리가 먹어야 할 것은 밥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뭘까요? 그것은 말씀이고 사명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건강해도 사명이 끝나면 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그것이 우리의 밥줄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우리 목사님은 건강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셨습니다. 조기 은퇴를 하셨는데 새벽기도는 못해도 건강을 위하여 매일 등산은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전 등산하시다가 심장마비로 등산길 의자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자나가는 사람들이 그가 쓰러져 있는데 술 취한 사람이 잠을 자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갔답니다. 그런데 내려 올 때 보니 그대로 있어서 흔들어 깨웠더니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 좋지요? 그러나 그 건강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 삼으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성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을 성실히 수행하시는 그 열심, 그 성실을 힘입고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게 되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안전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개척해야 하고, 내가 내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노력으로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겪을지를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입니다. 우리는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이나 말레이사아 항공 격추시간이나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사람 생명이 언제 어디서 종말을 맞을지 알 수 없는 교훈을 받았잖습니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신실하심과 열심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3. 하나님을 기뻐하며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느끼신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오늘 말씀 4절 이하를 보세요.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먼저는,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왜 다윗은 하나님을 기뻐하라 할까요? 그분은 우리의 미래를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만 보지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예비해 두신 분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전능하심과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힘들고 어려워도 때가 되면 반드시 소원을 이루어 내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인생길을 맡기면 그분이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힘들어지느냐?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니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나와서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고 원망 불평했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다 눈앞에 전개되는 현상만을 보았습니다. 광야에 그늘 한 점 없고 마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눈앞에 현장만을 보니 하나님이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그분께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5절을 다시 보세요.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여기, “네 길”이 뭡니까? 우리의 앞날입니다.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것을 주님께 맡기면 그분이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를 들어내시고 높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근심 걱정을 하지 말고 맡기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을 지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어느 것은 맡기고 어느 것은 네 손으로 해결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갑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제자들이 바다에서 고생 고생합니다. 그런데 산위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당하고 계신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한동안 그냥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때가 밤 4경 때입니다.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어서입니다. 왜 주님은 그들의 고생을 그때까지 두고 보셨을까요?

아마도 주님은 기다렸던 같습니다. 아무도 그 제자들은 처음에는 자기들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별 노력을 다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풍랑이 해결이 안 됩니다. 자기들의 방법을 포기하고 주님을 의지 할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이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말씀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뭐 때문에 힘들어 하시나요? 여러분이 겪고 있는 풍랑은 무엇인가요? 여러분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 치지 말고 주님께 아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맡기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맡겨 버리라 내가 살펴 주겠다”

여기 ‘맡기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꼬올”이라는 단어로 쓰였는데 “굴린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큰 돌을 산에서 지고 내려가지 않고 “굴려서 내린다” 는 것입니다. 그러면 쉽게 내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누구의 뜻에 따라야 하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팔자에 맡기려고 하지 마세요. 제발 점쟁이나 사주팔자에 맡기지 말고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언16:3절을 아시지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아멘?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주 공간을 지금도 경영하고 계십니다. 그런고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힘들어하는 짐이 뭔가요? 질병의 짐인가요? 장애인가요? 사업인가요? 어떤 이는 남편이 짐일 수 있고 어떤 이는 자식이 짐일 수 있고 어떤 이는 직분이 짐일 수 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달라요. 그 짐을 어쩌라고요? 맡기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세요. 왜 우리 인생이 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나요? 우리 인간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로부터 오늘 고통이라는 짐입니다. 인생은 누구나가 다 이 짐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이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문제는 겉으로 보면 경제적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문제, 건강문제, 자녀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알고 보면 그 근원은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자라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이 죄의 짐을 해결키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죄의 짐을 해결키 위해 피 흘리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슨 짐을 지고 있습니까? 그 짐이 무엇이든 주님께 맡기시는 능력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아무리 힘든 문제도 예수 안에서 다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주안에서 우리의 이 짐이 해결되면 우리 신앙생활은 힘든 것이 한방에 사라지게 됩니다. 할렐루야!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즐겁게 기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하며 선을 행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맡기라 하십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꼭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는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때를 기다려야 할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기 위한 것은 묵묵히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한방에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요? 7절을 보세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지면서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참고 기다라셨습니다. 얼마나 억을 하셨을까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래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기다려야 합니다.

악한 자들은 잘되고 형통한데 왜 나는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며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은 승리하게 하십니다.

 

기도합시다.

 

http://cafe.daum.net/ilhwan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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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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