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명절에 해야 할 3가지
신명기16:13~17
2014년 9월 7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3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설교:
내일이 추석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한 민족은 대대로 추수를 거두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왔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분들은 풍년은공을 조상들에게 돌리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추수의 결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추석을 맞는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른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비슷한 절기를 지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절기를 지키는 이유나 방법은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처럼 절기를 단순히 먹고 즐기는 절기로 보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기를 지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자세로 절기를 지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추석 명절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요? 적어도 저와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구별되게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추석명절에 우리 성도가 해야 할 것 3가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길 축원합니다.
1.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13절을 다 같이 봅시다.
13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초막절이 뭘까요? 유대인들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첫 추수를 하면서 지킨 추수감사절입니다. 다른 말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은 추수 후에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이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대한 여러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의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명절에 우리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5:18에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범사”란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어떤 경우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공했을 때에나 실패했을 때에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이 결실의 절기인 추석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말로만의 감사가 아닌 예배로서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하나님이 받으시는 최고의 예배입니다.
제가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성경은 전체에 “감사” 단어가 몇 번 언급되었나?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으로 검색해 보니 188번 쓰였습니다. 그중 시편에만 75번이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감사하라”는 명령구절이 36번이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감사예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감사하는 민족과 감사하는 사람을 들어 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감사를 많이 하는 민족과 개인을 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감사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절대로 들어 쓰시지 않는 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다윗입니다. 그는 시편 말씀을 보면 늘 감사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위대한 왕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늘 원망불평입니다. 그러니 가나안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을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원망 불평하는데 잘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대로 감사를 드리는 나라 쳐놓고 가난한 나라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복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그 복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감사는 벽을 향해 공을 던지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감사를 던지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불행은 “감사”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범죄한 우리 인간은 감사를 할 줄 모릅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모습이 가득합니다. 그러니 삶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병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유쾌해집니다. 그리고 감사하면 몸이 가벼워집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흘러 들어옵니다. 그리고 감사하면 적절한 환경이 조성됩니다. 감사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면 돈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사랑의 생깁니다. 건강해집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손해 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보세요. 대형사고가 터지면 곧바로 어떤 증세가 나오나요? “누구 때문이냐? 어떤 놈이 잘못했냐?” 책임자를 찾고 정부를 향해 원망불평을 쏟아 붙습니다. 그러나 서구사회는 좀 다릅니다. 대형사고가 터지면 근심하고 그런 가운데서 의로운 사람을 칭송합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한국 유학생이 총기를 난사 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마치 우리나라가 죄인인 것처럼 미안해하고 책임 전가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오히려 자기들 탓이라고 하며 조용했습니다. 심지어 유족들도 조용했습니다.
우리도 좀 구별되어야 합니다. 원망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에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감사는 마귀도 물리칩니다. 감사하는 집과 감사하는 신앙생활은 마귀가 틈 탈 길이 없습니다.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감사는 우리 영혼에도 축복이 되지만 우리 육체 건강에도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감사가 죽으면/ 다 죽고/ 감사가 살면 /다 삽니다./
그러기에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습니다. 이 추석명절에 감사예배를 드리므로 건강한 가정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2. 받은 은혜를 헤아려 봐야 합니다.
추석을 맞아 우리 성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가 어떤 것일까요? 그 은혜를 다 헤아릴 수 있나요?
어떤 분은 치질 수술을 하고 나서 아침마다 볼일을 잘 보는 것이 은혜인줄 몰랐다고 합니다. 소변이 잘나오는 것이 은혜입니다. 잠 잘 자는 것도 은혜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신 분들을 살펴보세요. 아이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은혜입니다. 심지어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오늘 이렇게 예배에 나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아멘?
얼마 전 교단총회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어서 지방을 다녀오면서 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추석이 좀 빨라서 아직 좀 이르지만 들판에 벼와 곡식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조금 있으면 그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일 것입니다. 일본에는 태풍이 여러 개 올라왔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풍년이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들 재수가 좋아서 그렇다고 하나 우리는 분명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재수나 운수가 아니고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아멘?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나라 경제도, 정치도 어지럽고 복잡하지요. 그래도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셨고 여러분의 건강도 지켜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명절을 주신 가장 큰 이유는 받은 은혜를 헤아리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세요.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네 하나님”입니다. 그 분께서 소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답니다. 아멘? 그러니 명절에 그 은혜를 헤아리고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은혜는 구원의 은혜인 줄 믿으셔야 합니다.
이 은혜가 진짜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 이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구원의 은혜 때문에 다른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누렸기에 갖가지 복을 때를 따라 주시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식을 위해 그토록 수고하시고 애를 쓰십니까? 왜 그들을 먹이고 입하고 공부시킵니까?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나요? 왜 하나님이 우리를 먹여주시고 인도해 주시나요?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왜 감사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을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면 어쩌다 운이 좋아서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를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김광일이라는 분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 어머니는 아들 셋을 낳고 10여년을 키우시다가 40도 못되어 암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살려보시려 모든 재산을 쏟아 부으셨지만 하늘의 부름을 거역할 수는 없이 떠나셨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년,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새어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는 새어머니를 외면했습니다. 반항은 기본이고, 거친 말도 쏟아내고, 가시 돋친 말만 골라서 했습니다. 이런 반항은 중학교 1학년이 되도록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방안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하시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새어머니가 임신을 하게 됐는데, 새어머니는 지금 키우는 아이들 셋 때문에 뱃속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유산을 시키겠다고 하고 아버지는 낳아야 한다고 서로 다투는 것입니다. 전 부인의 삼형제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새어머님의 그 말을 들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는 지난 행동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새어머니는 진심으로 날 사랑하고 계셨구나. 알고 변화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저희 삼형제 모두 결혼을 했습니다. 막내 동생 가정이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그 어머니가 동생의 아이들까지 키워주고 계십니다. 그는 핏줄만이 가족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핏줄을 넘어 평생 사랑으로 우리 삼형제와 손자까지 키우신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깨닫게 됐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를 은혜로 알 때만 은혜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믿음, 가장 소중한 건강, 여러분이 지금 처하고 있는 현실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은혜의 귀중한 의미를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가 은혜 될 수 없고 복도 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받은 은혜를 헤아릴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난 알 수 없도다”라는 것은 몰라서 알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가사를 보세요.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아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인 것을 깨닫고 그 은혜로 감격해 그 은혜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올바른 성도요. 그런 사람이 복을 누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불평하며 난리를 쳤을까요? 은혜를 못 받아서가 아닙니다. 받은바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고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어떻게 홍해를 건넜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물을 마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아말렉 군대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습니까? 자신들의 힘으로입니까?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므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번 추석에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헤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되 말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16절을 보세요.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헤아린다면 그냥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추석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풍성한 은혜를 감사드릴 줄 아는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3. 받은 은혜를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막절이나 우리나라의 추석은 기쁜 날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을 혼자 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14절을 보세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누구와 함께 즐거워하라 하십니까? “너”와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기뻐하며 잔치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 말로 번역하면 가족과, 회사 직원들과, 목회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잔치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여러분의 이웃입니까? 여러분의 가족도 이웃이겠으나 여러분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설교 준비하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받았는데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기뻐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함께 진짜로 즐거워하려면 그들이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여러분 가족 중에 아직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가족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진정한 의미로 함께 기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명절에 지혜를 얻어 그들을 전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 믿지 않는 가족이 있습니까? 성경책을 선물하세요. 그리고 믿으라 하세요. 믿지 않는 조카나 아랫사람이 있습니까? 봉투에 별도로 용돈 좀 풍족히 담아서 성경구절과 함께 축복기도를 적어서 장학금으로 주세요. 그리고 예수를 믿으라 하세요. 그러면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말로만 해서는 들은 척도 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담고 믿음을 담으면 마음 문이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만 저 북한, 그리고 저 어려운 나라에는 지금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먹여주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는 우물을 파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 땅에 백성들이 오염된 물로 병들고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그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동네마다 하나씩 파주면 온 동네 사람들이 깨끗한 물로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물하나에 작게는 5백만원 많게는 천만원이 들어가지만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최고의 나눔은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행3:6절에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가 미문 앞에 앉은 병자에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오늘날로 번역해서 말하자면 “내게는 돈은 없으나 내게는 예수님이 있다. 그 예수를 믿고 일어 나거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 이것은 최선의 선물이고 영원한 선물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심심풀이로 저와 여러분은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영화롭게 하는 방법이 우리가 빛이 되는 것입니다. 빛이 되라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이제까지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아멘?
한 심리학자는 인간을 세 단계로 보았습니다.
첫째는 받는 단계요, 두 번째는 소유하는 단계요, 세 번째는 주는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땅에다 씨를 심는 단계, 자라나는 단계, 열매 맺어서 주인을 기쁘게 해주는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 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단계, 은혜 받는 단계, 은혜 받은 다음에는 주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항상 은혜를 받으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은 지 10년이 넘었으면 교회 봉사를 하고, 이웃 사랑을 하고, 가진 것을 주기도 하면서 봉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행20:35절을 아시나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성도 여러분!
이 추석 명절 무엇을 할 것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받은바 은혜를 헤아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명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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