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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민 이스라엘 / 엡 2:11-13 (신311쪽)

제가 어려서 가졌던 의문 중에 하나는 

왜 이스라엘은 자기 조상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다들 한 번 쯤은 가져 보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서양종교라고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용을 자세하게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입니다. 

아니 사실은 내용을 잘 알면서도 애써서 무시하는 것일 뿐 입니다. 


지금 민족종교라는 소리를 서슴없이 하고 있는 불교도 따지고 보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전래된 수입종교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종교는 사실 종교라고 주장할 만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미미했습니다. 


그러니 사실 기독교의 근본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정당한 근거가 되질 못합니다. 

그냥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은 사단의 장난일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 사람들의 그런 견해가 사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그럼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을까요? 

그 이유를 한 번 확인해보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오류, 실수, 또는 잘못을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중에 항상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은 선민이라고 하는 겁니다. 

자신들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하게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겁니다. 

때문에 자신들의 민족성은 아주 특별하다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인 존재가치가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생각이 이방인과의 벽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 외에 모든 민족을 다 포함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들까지도 다 포함됩니다. 


그런 선민의식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막되 먹은 망나니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 경쟁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민족적 자부심의 콧대를 꺾으려고 하는 타 민족들의 공격을 오랫동안 받아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입니다. 

물론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유대인들의 타 민족에 대한 멸시 태도가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인간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조건이나 환경, 상황, 처지들은 모두 

사람들 사이에서 분열하고 갈등하고 다툼을 하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결코 하나 되지 못합니다. 

아니 근본적으로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 어떤 분열이나 다툼이 없이 하나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분열하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하나가 됩니까? 


정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가 

단순히 하나 되기 위한 조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보다는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개념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다는 것으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단순하게 ‘너 예수 믿어? 그럼 우리 편!’ 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는 훨씬 뛰어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나타내고, 

소개해주는 지경까지 가는 겁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크게 오해한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좀 더 많은 민족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다고 하는 것으로 

행세하고, 자랑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언제든지 남을 무시하고, 짓밟고, 깔고 뭉개버리는 악한 성품이 다분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손해를 끼치면 그것을 끝까지 쫓아가서 되갚아 줬습니다. 


‘니들이 감히 우리 민족을 건드려?’ 라고 하는 복수심과 적개심에 불타오르는 민족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주변에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주변에 수많은 원수들을 달고 사는 민족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을 다툼과 싸움을 조장하고, 

전쟁만 하려고 하는 괴상망칙한 존재로 변질시켜 버린 것입니다.


고후 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서 좀 더 많은 세상의 사람들과 민족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을 하자면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이 될 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선민 이스라엘이 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을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민 이스라엘이 오늘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의미일까요? 

우리가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된 것도 사실은 몽땅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될 만한 어떤 자격이나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내용은 확실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12절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다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의인이라는 소리만 들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에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

어쩌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서 

저들 역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해야만 하는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뭡니까?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를 죽인다는 것은 나를 다 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죽인다는 것은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내 우월감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다고 가만히 있으니까 나를 뭐 바보로 아는 거야?’ 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내버려야만 합니다. 

남들이 예수 믿고 사는 나를 바보로 알아야만 지극히 정상인 겁니다. 

바보이기 때문에 예수 믿고 사는 겁니다.


어떤 목사님이 현대 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불행은 

같은 교회의 성도들끼리 친하지 않다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럼 친해지지 못합니까? 

서로 자기 우월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 가진 돈이 좀 있으면 돈 있다고, 

직분 받았으면 직분 있다고, 

오래 다녔으면 오래 다녔다고, 

새벽기도에 십일조 하면 그거 한다고, 

심지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 없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성도들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원 가서 며칠 기도하고 오면 목소리부터 달라져서 폼을 잡지 않나, 

어디서 봉사 좀 하고 오면 봉사 좀 했다고 거들먹거리고, 

신학교를 들어가면 뭐 좀 배웠다고 난리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도 교회 안에서 신앙의 친구가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기 안 죽으려고 그저 있는 대로 폼을 잡고 버티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돌아서면 맨날 남을 헐뜯는 것이 취미요, 특기입니다. 


사실 담임목사를 세워두시는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안주 삼아서 뜯어 먹으라고 담임목사를 세우신 겁니다. 

그런데 그나마 담임목사만 헐뜯으면 다행이고 감사한 겁니다. 

담임목사야 워낙 그런 대우로 살기로 하고 사역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이 좀 더 발달을 해서 이젠 성도들 간에 그러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적을 때는 그런 소리 전혀 안 들립니다. 


그런데 이제 좀 커지려고만 하면 늘 그런 문제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마귀들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는 겁니다. 

사단과 마귀와 귀신들이 교회가 커지는 것을 싫어하는 겁니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기존에 있는 성도들을 앞장세워서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이간질을 시키는 겁니다. 

엄격하게 율법적인 잣대를 들이밀고 이런 저런 사유를 붙여서 떠나게 해버립니다. 

아니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미숙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화목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섬기는 직분과 섬기는 교회를 주신 겁니다. 

그만한 능력이 되고, 그만한 실력이 되니까 감당하라고 주신 겁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감당하는 겁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이런저런 지경과 경지를 다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의 형편과 자리를 다 주신 겁니다. 


무엇으로 감당합니까? 

내가 죽으면 됩니다. 

죽으면 도대체 아무 말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나무목교회를 섬겨 가는 동안 

불평과 불만의 시선이 내 눈에 있는 것을 깨닫거든 

즉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올바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죽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처럼 죽으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는 경지에까지 가셔야만 합니다. 

누구누구 나한테 돌을 던졌는지 내가 똑똑히 다 기억한다가 아닙니다. 

그저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죽으면 됩니다. 

내가 죽으면 상대방의 이야기와 의견과 생각이 충분히 이해가 되도록 다 들려옵니다. 

그러면 화목하게 되는 겁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오늘 나는 죽었는지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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