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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과 가까워진 우리 / 엡 2:11-13 (신 311쪽)

우리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에서의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크기를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누려야만 하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주는 크기를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이 나를 지배하지도 못하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는 신경 끄고 사는 겁니다. 

세상의 가치와 전혀 관계없이 사는 겁니다. 


사실 세상의 가치라는 것이 뭡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관심을 갖는 것이 곧 세상의 가치입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것이 다 세상의 가치입니다. 

뭔가 잘된다고 하면 우르르 다 몰려다니는 겁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람들의 시선과 사람들의 선호가 곧 세상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해야만 하는 신앙적인 이유가 뭡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 사람들의 원하는 것을 우리 신앙인들이 같이 따라서 한다고 해서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을 경계해야만 합니까?



그 이유가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중에 또 하나가 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따르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는 

세상의 사람들, 

즉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죄가 어느 정도 큰 것인지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예수 믿기 이전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어느 정도의 죄악인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표현을 하자면 

예수 믿기 이전의 삶이 어느 정도 잘 못인지를 모르고, 

또 지금 예수 믿고 사는 삶이 어느 정도의 영광인지도 모르는 겁니다.



때문에 시선이 언제든지 세상 사람들에게 가 있습니다. 

세상이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사는지, 

어떤 가치를 누리고 사는지, 

어느 정도 사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산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날의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어리석음이 우리 안에 가득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믿고 살면서도 

한숨이 가득하고, 

불안이 가득하며, 

답답함과 우울함과 온갖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생각이 늘 몽롱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을 다 고치는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바로 즉 복음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오늘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핵심 본문은 13절입니다. 

13절의 말씀이 곧 복음입니다.


13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지난주에는 “그러므로” 라는 단어가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그러나” 라는 단어가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원래 헬라어 성경에는 13절 앞에 “그러나” 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읽는 한글 성경에는 빠져 있습니다. 

때문에 한글성경만 가지고 성경을 제대로 다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바로 앞에서 말한 내용을 뒤집는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를 보면 

12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 관계없는 외인이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가까워진 우리라고 하는 겁니다. 


누구 때문에 그렇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이 곧 우리에게는 복이라는 겁니다. 

예수 믿고 사는 신앙인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의 거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뭘 주시기 때문에 복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가치의 기준이 세상과는 분명하게 다른 겁니다. 

우리가 받는 복은 영적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감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기분과 감정으로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이 세상의 것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은 전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복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왜 이렇게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세상의 이해를 구해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 안에서 사는 성도라고 해서 

다 나를 위로해주고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갈등과 어려움과 다툼이 다 어디서로부터 오느냐면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 때문에 오는 겁니다. 

믿을 만 한 줄 알았는데, 

위로해 줄줄 알았는데, 

행복하게 해줄 줄 알았는데, 

잘 살게 해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더라는 것 때문에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겁니다. 


나한테 이럴 줄 몰랐다, 

내가 그동안 한 게 얼만데, 

누구 수고 때문에 저 정도가 됐는데 라고 하는 것들이 

다 사람에게 기대하고, 

사람에게 위로를 얻을까 해서 

일어나는 갈등이고, 

어려움입니다. 


물론 사람을 통해서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면 

이내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할 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다 무엇입니까? 

사람 쳐다보고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을 살더라도 

거기에는 희망과 미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듣게 되는 말이 뭡니까? 

사람 쳐다보지 말라는 겁니다.


시118:6-9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사람에게 피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단순하게 비교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의 위로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근본적인 위로와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내 편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내 편이시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만큼 내 편이십니다.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기를 요구하면서까지 

우리를 편들어 주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여섯 시간 동안이나 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참고 보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겁니다.



그러니 반대로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까지 죽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우리의 그 어떤 것은 사랑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어리석게 살고, 

모자라게 살고, 

바보같이 살더라도 

끝까지 사랑을 하시는 겁니다. 

안 그러실 것 같아요? 


흔히 자연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것뿐입니다. 

배신을 하지 않을 뿐 특별하게 더 사랑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온 천하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자연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응이 있으니까 이런저런 고난도 어려움도 허락하시는 겁니다. 

그런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더 굳세게 서 있으라는 의미로 그러시는 겁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는 그저 평안하게 하고, 

잘 먹게 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제대로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일 곧 부도가 나더라도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 앉아 있는 시간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여유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니면 누가 누릴 수 있습니까? 

형편과 처지에 눌려서 살지 마세요.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나님의 이 큰사랑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아니 우리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의 

하나님 은혜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이미 하늘나라에 든든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하시고, 

선한 은혜와 사랑 안에서 오늘의 형편과 처지를 이겨나가는 은혜로 가득하셔서 

은총과 사랑의 주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하나님 곁에 사는 

천국 백성의 놀라운 권세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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