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야 할 것
요한복음1:19~34
2003년 2월 16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낮예배 설교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1: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1: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1: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1: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1:28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설교:
사람은 지식을 갖고 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하고 재미있게 하며 수고와 고생을 면하게 합니다. 그래서 요즘을 정보화 시대라 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정보가 돈이 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無知는 인간의 손발을 힘들게 하고, 무지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다줍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 하는데 그 말은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모르면 죽습니다. 무지하면 사람을 죽입니다. 옛날 많은 어린이들이 홍역하다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열이 나면 옷을 벗기고 열을 떨어트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어린이가 죽었습니다. 무지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러나 아주 무지한 사람은 그 답답함을 모릅니다. 시각장애도 중도 시각장애는 적응하기 아주 힘들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삶을 포기하고 자살합니다. 그러나 선천성 시각장애는 원래 그렇게 살아서 별 불편이 없이 삽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에 안믿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기에 전혀 답답하지 않습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무지하면 답답합니다. 그래서 배워야하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면 아주 중요한 사실 몇가지를 분명하게 알고 살아야만 바르게, 그리고 후회 없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가 인생을 바르게 살려고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 3가지를 교훈합니다.
1.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누구이십니까?
세례요한에게 사람들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네가 누구냐? 네가 누군데 이렇게 세례를 주느냐? 그때 세례요한은 일부 사람들이 ‘그가 혹시 그리그도가 아닌가?’ 기대함을 알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면 누구냐? 엘리야냐? “아니다 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외친 것 같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너무도 분명하고 당당하게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묻기를 “네가 누구냐?”고 말하면 어떤 대답을 하실 수 있습니까 ?
몇주전 세례요한이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았듯이 나도 하나님에 의해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임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라는 존재를 창세전에 만드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며 살게 된 존재임을 우리는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굽니까? 내가 누군지를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자신을 분명히 알기에 자신을 낮출 수 있고 그러기에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위대한 사명을 부여받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는 부족합니다.
또 다른 나를 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며 그래서 그의 신발 끈을 풀고 매는 일도 감당키 어려운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의 능력입니다.
자신의 罪惡됨과 자신의 연약함을 알아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인줄 알지 못하면 결단코 그 앞에 올바로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보냄 받은 사실은 누구나 다 잘 압니다. 그러나 그분 앞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비록서 복을 얻는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마땅히 심판받을 그래서 더 이상 소망이 없을 뻔한 죄인입니다.
2. 두 번째로 내가 받은 사명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주의 길을 평탄케 하러 온 자”이고 오늘 봉독한 본문에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의 사명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세상의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살았습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해보면 하나님 나라에 크게 들어 쓰임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분명하게 알고 그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다윗도 양치기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고 요셉도 아버지의 심부름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리고 모세도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와 권세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부귀도, 명예도, 평안함도, 그리고 행복도 버리고 고난을 감당했고 그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을 섬겨왔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오늘 봉독한 본문의 주인공 세례요한입니다.
그는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뒤늦게 태어난 아들이기에 얼마나 귀한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더욱이 레위지파 제사장 집안의 아들이니 여러 가지 조건이 평탄한 생애를 보장하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서 외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옷도 화려한 옷이 아닌 약대털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보장된 평안과 행복을 버리고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을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평범하게 살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은 평범하게 살기는 애시당초 그른 사람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평범하게 살게 두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이루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세상 많은 사람이 크게 되기를 원하며 삽니다. 그래도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어찌 평범하게 살려는 사람이 그 틈바구니에서 평범하게 살겠습니까? 옆의 사람 손 좀 잡아보세요. 이야기 하세요.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네요. 크게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과 사명이 우리를 평범하게 살게 두지를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아브라함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온 세상을 다니며 살았나요?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 잡으러 가다가 예수를 만나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명있는 자는 죽지 않고 사명이 있는 자는 평범하게 살수 없는 것입니다.
비단 성경뿐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꿈으로 여러분 속에 다가오기를 기원합니다.
지난주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하도 나가니 관심들도 없는 것 같아 조용히 다녀왔습니다. 하루 시간을 내어 단동에 가서 신의주를 보았습니다. 강 건너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데도 갈수 없는 분단의 아픔을 보았습니다. 압록강을 30분정도 거슬러 올라가 조그만 도랑으로 국경선이 나누어져 있는 곳도 가 보았습니다. 도랑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있고 중간까지 가서 한걸음만 내딛으면 북한 땅입니다. 그곳에서 북한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과자와 음식을 사서 징검다리에 다가가 북쪽 땅에 던져 주고 추운데 좀 드시라고 했더니 “일 없습니다” 괜찮다는 뜻입니다. 도랑을 사이에 두고 몇 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건너고 싶어도 건널 수 없는 현실, 그 땅, 그 아픔을 보면서 통일의 꿈이 제게 생기고 그곳에서 가슴속에서 울려나는 노래를 부르고 왔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마치 그 북한 땅을 향해 지은 가사처럼 마음에 와 다았고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 歌詞대로 이루어 주리라 믿고 기도했습니다.
누군가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왜 그토록 중국에 마음을 두시나요? 그 땅 백성들이 사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맘만 먹으면 북한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로 심각한 상황에 쳐해 있습니다. 그땅을 복음화 시킬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언젠가는 그 땅에 찬송이 울려 퍼지며 언젠가는 그 땅에 십자가가 자유롭게 세워지고 언젠가는 그 땅에 복음이 마음껏 전파되는 그날이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가정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직장에서, 더 나아가 모든 분야에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그 사명을 찾으시고 그 사명에 여러분의 시간과 정력과 마음을 쏟아 부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꿈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3. 셋째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했습니다. 이 말속에는 그의 신학, 그의 믿음, 그의 신관, 그의 구원론, 그리고 그의 사역까지도 다 담겨진 위대한 구절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사역을 하실 분인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계셨던 분이고 그러기에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누구로 믿습니까?
어떤 사람은 위대한 철학자 정도로, 어떤 사람을 내게 복을 주실 분으로, 어떤 이는 서양귀신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로 믿습니까?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분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없이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왜 친구를 ‘왕따’시키느냐 하는 질문에 일부가해 학생들을 상대한 조사에서 그 대상 학생이 바보 같고 좀 모자라기에 그랬다고 합니다. 그 세계에서 알아야 할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학생들은 자신이 왕타 당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한답니다.
제가 그 말을 듣다가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혹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를 잘못알고 있다면 하나님께 왕따 당하지는 않을까요? 그토록 사랑하여 은혜도 주고 믿음도 베풀었건만 예수를 누군지 모른다면 어찌 성도라 할 것입니까?
그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셨으나 그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나를 향한 위대한 계획을 갖고 지금도 도우시며 보살피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잘 모르신다면 그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며 그 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전부를 잃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분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내 대신 어린양으로 피 흘려 죽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이사야 53장의 말씀처럼 그분은 내게 평화와 나음을 주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함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왜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나를 사랑해서입니다.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셨고 사랑하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 고통의 신음을 참으시며 한마디도 원망 불평하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뭐가 그리 힘들고 뭐가 그리 어렵다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까? 혹시 사랑문제 아닙니까? 사랑이 식어져서 힘들고 사랑이 식어져 못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며 조그만한 일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봉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예배드리는 것도 귀찮아 지고 사랑이 식어지면 작은 환난도 견디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왜 식었나요? 하나님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인가요? 주님의 사랑이 돌아섰나요? 아닙니다. 내게 문제입니다. 내가 딴 맘먹고 내가 엉뚱한데 쳐다보고 있고 내가 주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파고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그 위대한 사랑의 품을 체험해 보셔야 합니다. 어떻게요? 성경으로요, 기도로요, 안되면 금식으로라도 회복해야지요. ! 왜 세상으로 달려 나가며 힘들다고, 어렵다고 야단입니까? 예수님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를 깊이 생각하며 내 사명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세가지에 여러분의 문제의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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