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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계2:1-7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계2:1-7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계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계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에 해당합니다. 그 일곱 교회의 명칭은 이러합니다.


계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1) 에베소, 2) 서머나, 3) 버가모, 4) 두아디라, 5) 사데, 6) 빌라델비아, 7)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물론 그 당시 소아시아에는 이들 일곱 교회 이외에도 다른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라오디게아의 인근 마을인 골로새, 그 맞은편의 히에라볼리, 그리고 항구 도시인 드로아에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그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여러 교회들 가운데서 일곱 교회만 택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곱은 완전수이기에 그 일곱 교회만으로도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며 상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분명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똑같이 다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기록된 순서는 지리적이었습니다. 지도상에서 이들 일곱 교회가 위치한 곳을 연결하면, 그 모습이 마치 아라비아 숫자 7처럼 보입니다. 그 당시 우편물이 전달될 때, 바로 이 순서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먼저 우편물은 에베소에서 출발합니다. 그 위로 올라가면서 서머나가 있고, 또 그 위에 버가모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두아디라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밑으로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를 차례대로 거쳐서 내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가운데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에 있던 여러 교회들의 어머니 교회와 같았습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 승동교회와 비슷한 점이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일곱 항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도시 에베소(the city), 2) 에베소 교회(the church), 3) 발신인(the correspondent), 4) 칭찬(the commendation), 5) 책망(the concern), 6) 명령(the command), 그리고 7) 권고(the counsel).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진지하고도 심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들을 귀와 뜨거운 마음이 있어서, 말씀에 따라 회개하고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도시 에베소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City).


그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서,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 또는 “아시아의 시장”(the market of Asia)이라고 불렸습니다. 에베소는 지중해에서 소아시아로 들어가던 교통의 요충지이었기에, 매우 번영하던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는 버가모였습니다. 그러나 버가모는 행정적인 의미에서 수도였을 뿐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에베소가 가장 크고도 번화했습니다. 예컨대 버가모가 오늘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해당한다면, 에베소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뉴욕에 해당했습니다.


행19: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행19: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에베소의 연극장은 한꺼번에 25,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입니다. 로마시대의 연극장들은 대체로 그곳 주민의 1/10이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에베소의 인구는 약 25만 명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에베소에는 풍요의 여신 아데미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Artemis)는 헬라식 이름이고, 그 로마식 이름은 다이아나(Diana)입니다. 이 아데미의 신전은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웅장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둘째로,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Church).


에베소 교회가 설립된 배경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8장 이하 20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 잠시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때 그의 곁에는 신실한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함께 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뒤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그대로 에베소에 남아서 복음 사역에 이바지했습니다. 아울러 그 때에 아볼로와 같은 탁월한 설교가도 에베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 때에, 에베소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 때 바울은 에베소에서 삼 년간을 머물면서 본격적인 복음사역을 펼쳤습니다. 바울의 전도 여행 가운데 가장 오래 사역했던 곳이 바로 에베소였습니다.

처음에 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도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회당에서 두란노 서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역사는 대단했습니다.


행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행19: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행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에베소 교회는 이렇게 해서 세워졌습니다.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에 있는 다른 교회들도 이 때에 세워졌습니다. 타지에서 왔던 사람들이 두란노 서원에서 전해지는 복음을 듣고서 자기 동네로 되돌아가서 그곳에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 때 에베소에는 마술을 행하던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기도 하고, 그의 손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도 보았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기들이 갖고 있던 모든 마술책들을 다 불살라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아데미의 우상을 만들어서 팔던 이들이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에베소에는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서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딤전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딤후4: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뒤를 이어서 디모데와 두기고가 차례대로 에베소 교회를 맡아서 사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그들의 뒤를 이어서 사도 요한이 이곳에서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던 중에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밧모라는 섬에 유배를 당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밧모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그것을 기록하여 요한계시록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위대한 사역자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말씀이 흥왕했습니다. 표적들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 많은 지교회들도 생겨났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명실공히 소아시아의 어머니 교회와도 같았습니다.


셋째로, 편지의 발신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Correspondent).


계2:1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신 이는 누구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대필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시는 이가 불러주시는 대로, 그저 받아서 적었을 뿐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실질적으로 편지하신 이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분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였습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1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들 가운데 일부분이었습니다.


계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장에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여러 가지로 묘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마다 편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각 교회마다 형편과 처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두 가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셨습니다.


계1:20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왜 예수님은 오른손에 일곱 교회의 사자를 붙잡고 계셨을까요? 그들을 사용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는 도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을 자신의 오른손에 붙잡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왜 예수님은 일곱 교회 사이에 다니셨을까요? 교회를 살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같기에, 예수님은 일곱 교회의 모든 형편을 낱낱이 살피셨습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은 각 교회마다 칭찬하실 일은 칭찬하셨고, 책망하실 일은 책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삶도 낱낱이 살피십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오른손에 붙잡혀서, 모든 일에 크고도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에베소 교회가 받았던 칭찬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Commendation).


계2:2 내가 1) 네 행위와 2) 수고와 3) 네 인내를 알고 4)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5)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2:3 6)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2:6 7)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신 말씀에는 일곱 가지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 행위에 대한 칭찬입니다.

에베소는 우상과 미신의 도시였습니다. 그러한 곳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믿고자 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마술책을 불태웠습니다. 우상들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결단력 있는 행위를 칭찬하셨습니다.

둘째, 수고에 대한 칭찬입니다.

그들은 남들이 땀흘리며 수고해서 수확한 열매를 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교회를 위하여 땀흘리며 심고, 가꾸고, 거두는 등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셋째, 인내에 대한 칭찬입니다.

그 당시에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핍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모진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계속해서 잘 지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넷째, 영적 각성에 대한 칭찬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악한 자가 있으면, 다른 선량한 사람들이 나쁜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기 약 40년 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이미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행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행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 바울의 눈물어린 훈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늘 깨어있었습니다. 그리해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은 결코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섯째, 영적 분별력에 대한 칭찬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리적으로 확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거짓된 것을 밝히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여섯째, 올바른 동기에 대한 칭찬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던 것은 교회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3절에 있는 말씀처럼,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동기가 순수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일곱째, 성결한 삶에 대한 칭찬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기록된 대로,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습니다. 성경은 니골라당의 정체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니골라당의 교훈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았던 발람의 교훈과도 같았습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니골라당의 교훈에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행음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그리스도인답게 성결한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성결한 삶을 칭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에베소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어떠한 점들을 칭찬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 수고, 인내, 영적 각성, 영적 분별력, 올바른 동기, 그리고 성결한 삶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웃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더라도 우리에게는 큰 격려가 됩니다. 하물며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힘씀으로서 예수님의 칭찬을 많이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예수님이 우리를 아낌없이 칭찬해주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서,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부지런히 칭찬하며 격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에베소 교회가 받았던 책망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Concern).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일곱 가지로 많은 칭찬을 예수님에게서 받았습니다. 반면에 에베소 교회는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 예수님에게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받았던 책망이 숫자적으로는 단 한 가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에베소 교회의 수많은 장점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오로지 에베소 교회의 단점 한 가지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버렸던 처음 사랑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설립하고 나서 그들에게 보낸 편지, 곧 에베소서를 통해서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엡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6: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1: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그의 기도에 힘입어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도 예수님을 몹시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자연히 성도들 상호 간의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때로부터 어언 사십 년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처음 세대는 거의 다 세상을 떴습니다. 그리고 다른 세대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들은 앞선 세대의 교리적인 전통과 보수적인 신앙을 잘 이어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그들은 앞선 세대의 그 뜨거웠던 처음 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싸늘하게 식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그저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섬기며 행하는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컨대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내가 이전처럼 당신과 함께 살기는 하겠소. 열심히 돈도 벌어다 주겠소. 숙식도 같이 하겠소. 아이들도 그대로 양육하겠소. 그렇지만 나는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는 않소.”

그러면 이 얼마나 심각한 말입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예수님! 내가 주일이 되면 변함없이 교회에 출석하겠습니다.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르겠습니다. 헌금도 바치겠습니다. 맡은 일도 충실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당신에 대해서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버렸습니다. 나는 이전만큼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에게 이와 똑같은 말씀을 실제로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 우리의 모습은 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단호하게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엇을 물어보셨습니까?

“네가 나를 위해서 충성하겠느냐? 네가 이제는 인내하겠느냐? 네가 이제는 영적으로 깨어 있겠느냐? 네가 이제는 성결한 삶을 살겠느냐?”

예수님은 그러한 것들을 물어보시지를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직 이 한 가지를 세 번이나 계속해서 물어보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에베소 교회처럼 우리의 사랑이 식어졌다면, 우리 모두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그리해서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아울러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섯째로, 에베소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The Command).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예수님은 먼저 에베소 교회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그들의 영적인 질병을 고칠 수 있도록 처방을 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세 가지를 명하셨습니다. 이들은 영어의 3R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입니다(Remember).

떨어지기 이전의 때, 곧 처음 사랑의 때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회개하여”입니다(Repent).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처음 행위를 가지라”입니다(Return).

예수님과 처음 사랑을 나눌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여러분이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새벽마다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서 새벽기도를 드렸습니까(Remember)? 그런데 이제는 새벽기도를 드리지를 않습니까? 그렇다면 회개하십시오(Repent). 이제 다시금 새벽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Return).

“생각하라! 회개하라! 돌아가라!”

우리 모두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 세 가지대로 그대로 행하여서,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서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5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곳에 있던 교회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이 촛대를 옮겨가시는 곳에 새로이 교회가 세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큰 교회였습니다. 명성을 날렸던 교회였습니다. 훌륭한 목회자들을 가졌던 교회였습니다. 장점도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촛대를 에베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지금 에베소 교회는 황량한 잔해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복음의 빛은 에베소가 아니라 예수님이 촛대를 옮기신 곳에서 새롭게 빛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교회가 그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성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 오른손으로 붙들고 계신데, 예수님이 우리를 붙드신 오른손을 놓아버리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님의 빛으로 환하게 비추어주시는데, 예수님이 더 이상 우리를 비추어주시지 않으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하라! 회개하라! 돌아가라!”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리해서 우리의 처음 사랑을 반드시 회복합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 오른손으로 붙드시고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진리의 빛으로, 생명의 빛으로, 축복의 빛으로 우리를 환하게 비추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곱째로, 에베소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권고입니다(The Counsel).


계2:7 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예수님의 권고는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순종과 약속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살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장점은 무엇이며,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를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제시해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또한 그 자신이 기록한 서신서에서 “이기는 자”가 누구인가를 우리게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이기는 자”는 바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 성도가 바로 “이기는 자”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우리를 가리켜서 “이기는 자”라고 부르시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사단의 권세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기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곧 참 성도를 가리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을 가리킵니다. 참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기에 참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자신의 처음 사랑을 회복합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이기는 자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계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창세기에 있는 말씀처럼 본시 생명나무는 에덴 동산에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던 생명나무는 이 땅에서의 영생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생명나무 과실도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었습니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낙원, 곧 천국에 있습니다. 천국에 있는 생명나무는 열두 가지 종류의 실과를 맺힙니다. 달마다 그 실과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생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도록 약속하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기는 자” 곧 참 성도입니다. 하늘 나라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녹명된 자입니다.

행여 우리 가운데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서 속히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셨습니까? 우리의 사랑이 식어졌다면, 회개하고 우리의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이제는 우리의 처음 사랑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유지합시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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