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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일한 시민 / 엡 2:19-22 (신 312쪽)

성경에서 “그러므로” 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면 

그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누누이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도 “그러므로” 라고 하는 단어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19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러므로” 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 

우리가 이제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쉽게 말씀을 드리면 

그냥 에베소서 1장1절부터 2장 18절까지 말씀을 하셨던 모든 내용의 결론은 

우리가 이제 성도들과 동일한 위치와 신분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하게 오늘의 현실과 형편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때까지 이야기 해온 것의 결론으로 우리가 오늘인 것이고, 

또 바로 오늘의 처지와 형편으로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수 천, 수 억의 투자를 하셨다면, 

앞으로 더 투자를 하셔야할 것들이 얼마나 더 많겠느냐고 하는 겁니다. 

때문에 오늘의 것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걱정하거나 염려하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태 우리를 위해서 엄청나게 투자해 오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서 

오늘의 우리를 가만 두지 않으신다고 하는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가진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투자하신 것이 뭡니까? 

그건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투자하신 것은 하나 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신다고 분명하게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최소 이 정도의 확고부동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아니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충분한 능력을 다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런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사는 성도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겁니다. 

아니 몇이나 되느냐고 숫자를 세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우선 나라도 당장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원받을 숫자가 144,000명이네 어쩌네 그러는데, 

그 전체의 숫자가 몇 명인지를 걱정할게 우선이 아닙니다. 

나부터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의 분명하신 말씀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곧 세상의 마지막 날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느냐는 겁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는 것이 우선이신 주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만큼 오늘 우리들의 눈이 돌아갔다는 겁니다.

어디로 돌아갔습니까? 

온통 그냥 다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동일한 시민” 이라는 뜻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지체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하늘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겁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2011년 우리 나무목교회의 표어처럼 주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나가 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들의 근본적인 속마음이 문제입니다. 

뭣 때문에 하나가 되고자 하느냐는 겁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도대체 성경에서 그렇게 하나가 되라고 하는 말씀의 원 뜻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를 하고서 그런 말을 내걸고, 또 내뱉고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를 가리켜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이라고 인정을 해주고 있는 

그 정확한 기준과 조건들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처럼 이렇게 

하나라든지 

본문이 말씀하는 것처럼 동일한 시민이라든지 

하는 말의 원 뜻이 왜곡되고 있는 때가 없습니다. 

동일하게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의 기준과 관점과 조건들이 몽땅 다 세상적인 겁니다. 


때문에 교회가 끼리끼리의 공동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이 곧 교회입니다. 

그 외에 다른 자격이나 조건이 전혀 붙어 있지를 않습니다. 

추가해야만 하는 별도의 옵션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299,000원에 모든 여행이 다 가능한 것입니다. 

나중에 돈을 더 내야만 하는 별도의 코스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불량해져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타락을 해버렸습니다. 

언제부턴가 인간적인 조건과 자격을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다니려면, 

우리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려면, 

우리 교회에서 봉사를 하려고 하면 

어느 정도 선 이상의 자격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격과 능력을 몽땅 다 

세상의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내용이 되어 버렸습니다. 

때문에 지금 내가 갖고 누리는 세상의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이상한 논리가 등장해 버렸습니다.


제가 어제 몇 분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는 도중에 서울역에 가서 봉사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눈꼴 시렸던 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 성질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 

진짜 옛날 같으면 한 번 야단을 치는 건데 그냥 참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인천의 이시문 목사님이 그럽디다. 

만약에 야단을 쳤더라면 그 사람들이 그랬을 거랍니다. 

‘개척교회 목사 주제에 어디서 큰 소리로 까부느냐?’

그 말을 듣고 보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개뿔도 없는 목사가 큰소리를 친다한들 

이미 세상의 것으로 가득 채워버린 저들의 심령이 말씀을 듣겠느냐는 겁니다. 


솔직히 이미 교회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전도를 해도 사례비 받고 하는 세상입니다. 

뭔가 대가로 잘 쳐주고, 

뭔가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만 교회생활도 잘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교회로서의 모든 능력을 다 상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것을 더 따르고, 더 믿고, 더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 속에서 막강해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감히 아무도 손 댈 수 없는 정도의 권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의 근간이 되고 

기본이 되고 

모퉁이 돌이 되는 예수님은 이미 다 포기하신 것을 

지금의 교회는 다 차곡차곡 챙기고 모으고 끌어 들여서 

세상 가운데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절대 권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며칠 전에 강남에서 3천억 원짜리 교회 건물 신축공사를 하는 교회에서 

지하철 출입구를 막고 주민들의 통행로까지 막으면서 공사를 강행한다고 뉴스가 나왔습니다. 

해당 관청의 공무원이 그렇게 해 준 이유를 

그 교회 안에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 볼 수 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교회의 청년회 회장을 하는 것도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생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고. 


이게 다 뭡니까? 


교회가 세상과 동일해진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교회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떠난 겁니다. 

교회가 그냥 세속적인 권력을 자랑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가 누구와 동일해야만 합니까? 

성도와 동일해야만 합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입니다. 

하늘 영광의 보좌까지 다 버리고 

세상을 구하러, 

사람을 구하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을 따르고 믿는다고 하는 

성도가, 

교회가 

이미 그 분의 삶을 다 내팽개쳤습니다.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권력과 재물과 자리와 명예뿐입니다. 

기준과 가치가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세상적입니다.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이 다 뭡니까?


히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모든 무거운 것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지금 여기서 살면서 다 벗어버리고 살아야만 할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들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유럽에서 최고의 개신교 기독교 국가는 네덜란드입니다. 

어린 소년 하나가 동네의 거대한 둑에 구멍 하나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 주먹을 

그 구멍 안에 넣고 밤을 새워 그 둑이 터지는 것을 막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그만큼 기독교 정신이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건 그냥 자기들을 위한 삶일 뿐이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식민지로 만든 나라가 인도네시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도네시아는 어떤 종교를 국교로 하고 있습니까? 

이슬람교입니다. 

기독교 국가의 식민지로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슬람국가가 됐습니까? 

네덜란드의 식민지 정책이 기독교답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도는 어떻습니까? 

인도를 식민지로 가졌던 나라는 영국입니다. 

영국은 물론 기독교국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인도는 지금 힌두교의 나라입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사람의 신분제도(카스트제도)를 가지고 

사람을 아예 태어날 때부터 구분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 이유들이 다 뭡니까? 

기독교가 권력이 되고, 기독교가 파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의 교회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기독교의 세력화, 교회의 권력화입니다. 

왜들 목사가 세습을 합니까? 

먹고 살만한 권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무목교회는 세상적으로 볼 때 지극히 하찮은 곳입니다. 

때문에 목사로서 늘 염려가 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요즘의 교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런 세상적인 기준과 잣대로 인해서 동시에 하찮아질까 염려가 됩니다. 


아무리 교회가 작더라도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때문에 

무조건 섬기는 것이어야 하고, 

희생해야만 하는 곳이고, 

내 것을 드러내지 않는 곳이라야만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비록 제대로 뭘 받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드러내고 나타내고 보여줘야만 합니다. 

이 말씀은 제가 세상적으로 뭔가 가진 것이 없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세상의 것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더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 분을 믿고 사는 믿음 외에 더 무엇이 우리에게 있을 필요가 있습니까?


요일 5:1-5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믿음으로 이겨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가치로 이겨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성공이나 잘되는 것에 가치를 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붙들고 달려가는 세상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요, 곧 교회입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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