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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고전3:16~17/2004년 9월 19일

하나님의 聖殿을 더럽히는 자

고린도 전서 3:16~17

2004년 9월 19일 주일낮 설교 최일환 목사

 

3:16 너희가 하나님의 聖殿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설교:

어제 중부서 경목위원회 會計로 일하시는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가 새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聖殿入堂感謝禮拜”라고 프랑카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날 성전은 예배당이라고 해야 정확한 용어입니다.


오늘의 예배당을 일반적으로 聖殿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구약성경에서 소나 양으로 번제가 드려지고 제사장만 들어가 집례를 하던 곳이 성전이고 오늘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을 예배당이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갈라진 후로는 성전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장소적 성전 개념에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성전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에서는 우리 몸이 거룩한 성전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왜요? 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까?

1. 우리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 주의 성령이 우리 몸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몸이 거룩한 성전임을 깨닫고 우리 몸을 毁損하는 일이 없이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오늘 17절을 다시 보세요. “누구든지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한 성전인 우리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1. 우리 몸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몸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맘대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 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주인을 위해 주인이 원하는 곳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내 것이라 생각하는 자체도 문제고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내 것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몸입니다.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아무렇게나 살다보면 죄의 도구가 되어 버립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 말을 한 것은 고린도 교회가 성적으로 부도덕한 죄악이 가득 찼고 우상숭배와 극악한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인 몸을 더럽히는 것이 죄악임을 경고하고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아주 교묘하여 우리 몸을 죄 가운데 빠트리려고 합니다. 그 유혹에 한번 걸려들면 그 유혹은 끊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죄는 마약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죄를 지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담대해집니다. 사단은 우리 조상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지게하고 그 배후에서 계속하여 죄에 종노릇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이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죄의 값을 치르시러 사람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가 우리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치명타를 加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해야 우리 몸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죄가 멀어질까요?

1)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라는 것이 사회 法規를 어기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신호위반하고 속도를 위반하고 거짓말하고 그런 것이 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죄지요. 그런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란 작게는 하나님을 안 믿는 것부터가 죄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에덴동산의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금한 선악과를 따먹은 것같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한 것도 죄이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도 죄입니다.

2)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언약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 사망의 결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이 죄 값은 어느 누구도 자신이 치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고 나를 내신하여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한사람의 죄가 數代에 걸쳐 많은 자손에게 무서운 심판으로 임함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지 않으려면

2. 내 몸을 학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몸은 우리 영혼의 그릇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 몸이 늘 건강을 유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방탕하여 우리 몸을 함부로 사용하고 학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자신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건강을 잃은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이 자신의 행위로 건강을 잃게 됩니다. 잘못된 습관, 잘못된 자세, 그리고 잘못된 식사생활로 건강을 잃게 됩니다.


특히 우리의 건강을 해하는 도구로 저는 세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과로는 성전을 더럽히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7일중에 하루를 쉬어야만 살수 있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적절한 영육의 安息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고도의 戰略에 넘어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안식을 못하므로 과로하게 되고 결국 육체에 이상이 생겨 병이 들게 되고 결국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의 말을 들으니 사람에게 통증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sign 이라는 것입니다. 몸에 문제 있으니 빨리 치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싸인을 진통제로 억제하고 무리를 합니다. 그러니 돌이키기 힘들게 되고 맙니다.

쉴 때 쉴 줄 아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중에 복은 안식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에게서 이 안식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바쁘게 하거나 엉뚱한 일에 시간을 빼앗아 쉬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의 이 궤략에 넘어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2)음주도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술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혹자는 성경이 술을 먹지 말라고는 안했다, 취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먹어도 된다는 궤변을 토합니다. 그러나 잠언 23장에서는 “아예 보지도 말라”고 명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술은 우리의 精神상태를 흩트려 놓는 도구입니다. 우리 영적 상태를 혼미케 하고 영적 분별력을 떨어트려 죄를 범하게 하는 도구가 술입니다. 죄가 개입되는 거의 모든 장소에 술이 개입됩니다.


그러면 전혀 먹으면 안되는가? 성경에서 먹으라는 곳이 한곳 나옵니다. 그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 5:23에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치료의 목적은 약으로 사용하는 경우이기에 괜찮으나 그러나 술은 약간취해도 취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한잔에 아주 가버립니다.


飮酒運轉을 하는 사람을 보세요. 완전히 살인행위입니다. 자기도 해하고 가족도, 상대방도 죽이는 살인입니다. 우리나라는 음주 운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합니다. 유럽 어느 나라는 음주운전을 하면 완전히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 버립니다.

도적질이나 음행보다 더 무서운 짓이 음주운전입니다. 우리나라도 음주운전으로 1997년 한해 동안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1,603명인데, 이중의 8.7%인 1,004명이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음주운전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은 36,023명이라고 합니다.


3)담배는 더 큰 문제입니다.

"담배를 끊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이 말은 텔레비전에서 늘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故이주일 씨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건강했던 그의 모습만 기억했던 사람들, 그러나 말하기 힘들 정도로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금연홍보대사의 이름으로 한마디 한 마디 금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여러분은 어떠했습니까? 얼마 전에는 탤런트 故 이미경씨도 역시 담배를 피운 것에 대한 뼈저린 후회를 하며 시청자들에게 금연을 당부했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한때 금연 열풍이 불고 담배업계들 역시 긴장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그들의 당부는 잊혀져 갔습니다.


혹시 예수를 믿으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간절히 부탁합니다. 제발 그 독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담배를 왜 毒 덩어리라고 부를까요?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담배가 무엇이길래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요? 이 작은 담배는 한번 필 때 약 4,000여 종의 화학적 성분이 담배에서 생산되어 인체로 흡입된다고 합니다.

연탄가스 중독의 주 원인인 일산화탄소, 페인트 제거제인 아세톤,

최루탄에 사용되는 포름알데히드, 좀 약에 사용되는 나프타린,

살충제 제초제 마약으로 사용되는 니코틴, 사형가스실에서 사용되는 독극물인 청산가리 그리고 라이터의 원료로 사용되는 부탄, 이런 것이 담배 연기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 많은 독들이 바로 여러분의 폐를 들락날락합니다. 이 모두가 發癌물질과 毒性물질들 중의 일부입니다. 작다고 결코 얕볼 담배가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직접흡연자가 마시는 담배연기 외에 간접 흡연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담배 연기 역시 많은 발암물질과 독성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것이 입증되었고 이중 20여종이 A급 발암 물질이라고 하니 百害無益 담배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담배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세계보건기구(WTO)의 1996년 “흡연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의 흡연자는11억 명인데, 이들은 1년에 5조 2천개피(1인당 하루 평균 15개피)의 담배를 피우며, 흡연 때문에 10초에 한 명이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간접흡연으로 인한 희생자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중년남자들 전체 사망자의 ⅓과 중년여자들 전체 사망자의 15%가 담배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으며, 흡연과 관련된 사망자(주로 암과 심장병)는 매년 선진국에서만 190만명, 개발도상국에서는 120만명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앞으로 20년 안에 1천만명으로 3배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1999년 현재 흡연인구는 약 1,240만 명이고, 성인남자의 흡연율은 64.9%로 세계 최고이며, 고등학교 3년생의 흡연율도 41.6%로 세계 최고입니다 WHO가 1997년에 조사한 각국의 흡연율도 우리나라 성인남자 흡연율이 68.2%로 세계 최고임이 밝혀졌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은 이런 국민건강을 크게 해롭게 하는 담배 사업을 대부분의 나라가 정부가 주도하고 정부가 세금 징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담배인삼공사라는 공사에서 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앞당기는 일인 줄 알면서도 여기에 놀아나는 백성들이 불쌍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을 왜 술과 담배로 오염시키고 계십니까? 내 代 만이 아닙니다. 자식과 아내의 건강에도 크게 해롭게 만드는 독약을 왜 그리 즐기십니까? 끊을 수없다구요?  자식이 마약과 본드를 마신다면 못 끊는다고 그냥 둘 것입니까?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요. 사람은 자기 몸을 자기가 統制할 수 있어야 성공합니다. 자신의 몸도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리더가 되며 어떻게 남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겠습니까?


어느 의과 대학에서 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교수가 달려가 담배를 뺏어 던지고 뺨을 후려 갈겼답니다. “네놈이 의사가 된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환자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할 것이냐”며 “이름이 뭐냐” 하면서 너는 내강의 학점 딸 생각을 말라고 했답니다.

나도 못 끊으면서 누구에게 욕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담배를 피운다면 오늘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듣겠습니까? 제가 술을 마신다면 여러분이 우리교회 나오실 수 있습니까? 언행이 일치되지 않기에 배울 것이 없다고 나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왜 여러분 남편이 흡연을 하는데도 그냥 둡니까? 왜 여러분 자식이 그짓을 하는데도 막지 못합니까? 그것이 독극물인데,,,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지 않으려면

3. 남의 몸도 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성전이면 다른 사람도 성전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몸을 더럽히는 것도 성전을 毁損하는 행위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1)남을 미워하는 행위, 2)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 3)남을 정죄하고 批判하는 행위, 4)남이 잘되는 모습을 비판하고 嫉妬하는 행위도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기에 그도 해롭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왜 남을 미워하며 비판하며 시기 질투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1) 慾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잘되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와 비슷하거나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잘되면 은근히 배가 아프고 무시하고 질투하게 됩니다. 욕심입니다. 욕심이 내 심사를 뒤틀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이것을 극복하면 하나님은 놀라운 복을 허락하십니다.


2) 공동체 의식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것임을 알려면 나와 그 사람이 같은 공동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라이벌이 되지 마시고 동역자가 되시고, 동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 사람이 잘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것임을 알아야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共同體란 그런 것입니다. 구성원 한사람의 성공이 전체의 성공입니다. 이것이 인식되면 심령이 평안하고 누구라도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아이들이 노회 성경고사대회에서 종합우승을 하였고 개인부문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발휘하였습니다. 제 아들이 1학년부 최우수상을 차지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요? 왜 좋지요? 내 가족이고 내식구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바로 그것입니다. 

남이 잘못되는 것이 내가 잘못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 되려면 바로 이 정신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남이 잘될 때 축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복 받을 그릇이 되는 사람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라이벌로 여겨 늘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번도 사울을 라이벌로 생각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종이며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피하며 도망치면서도 한번도 사울과 대적하여 싸우질 않습니다. 왜요? 공동체 의식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습관도, 생활도, 그리고 생각까지도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기도합시다.(합심기도)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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