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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을 믿습니다. (행 2:1-4)

성령을 믿습니다. (행 2:1-4)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J. I. Packer)는 [성령을 아는 지식](Keep in step with the spirit)이라는 책에서 주목할 만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거룩한 수줍음’(holy shyness)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수줍음’이라는 말은 소심한 사람이 대인관계에 약점으로 드러내는 특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자신을 의식해서 움츠려드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수줍음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상대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 사랑의 특성을 말합니다.

   패커는 성령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신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최대한 예수님만 드러내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중매쟁이처럼 우리와 예수님을 맺어주려고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려고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자신을 숨기고 예수님만을 나타내시려는 특성을 거룩한 수줍음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 거룩한 수줍음은 우리가 성령을 알고자 할 때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성령께서 당신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신을 숨기시려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성령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을 안다고 해도 잘못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령을 알기가 힘이 들어도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 올바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성령을 제대로 알고 올바로 신앙고백하는 일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실재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는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간단하게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믿는다는 고백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고백일까요?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선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령을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영적인 능력이나 에너지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영적인 현상으로 오해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이십니다.

   마 28:19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고후 13:13을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를 해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교회는 2000년 동안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해 온 것입니다.

둘째, 성령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히 9:14을 보면 “영원하신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영원한 존재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하나님의 속성인 영원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눅 1:35을 보면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될 때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속성인 전능성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성령은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십니다.

   창 1:2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실 때 성령께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셨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천지창조 사역을 수행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요 3:7-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인간에 대한 재창조 사역을 말합니다. 바로 이 창조하시고 또 재창조하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성령과 영적으로 깊이 교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성령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신 성령께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고 또한 이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 이후 성령이 본격적으로 강림하시면서 일어난 놀라운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 사건 이후 이 땅에 본격적인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이 변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한 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모두가 각각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 개개인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사도행전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성령이 임하시자 사람들에게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선 성령 받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고전 1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스스로 예수를 주라고 믿고 고백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성령 때문에 예수를 주라고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문도들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 모든 믿음의 사람들, 그리고 기독교 2000년 역사에 등장하는 그 모든 믿음의 사람들, 또한 오늘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 모두 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을 수 없던 사람들인데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다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성령 받은 사람들이 주를 위해 헌신하게 됐습니다. 행 20:22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느니라.” 바울은 죽을 줄 알면서도 성령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헌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주를 위해 헌신하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120문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대부분 도망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두려워서 문을 닫고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저들에게 임하신 뒤 달라졌습니다.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체포됐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매도 맞았습니다. 심지어 스데반과 사도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저들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헌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 온전히 헌신할 수 있습니다. 다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둘째, 공동체가 변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뒤에 그 공동체가 변했습니다. 바로 그 공동체가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 땅에 최초로 교회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행 2:42-47을 보면 이 첫 번째 교회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약해 보면 우선 저들은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함께 있으면서 마음을 같이했고 서로 교제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고, 말씀을 들었고, 함께 기도했고, 서로 보살펴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갈등이 없고, 서로 영적으로 교제했고, 서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 대부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까요? 바로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행 10장을 보면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집에 초청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때 이 집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이 집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에 모인 사람들이 은사를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예수가 임마누엘하시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 가정은 이방인 가정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 자체가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이방인 가정이 하나님의 가정으로 변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셋째, 세상이 변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한 뒤 예루살렘이 변했습니다. 행 2:41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무려 삼천 명이 예수를 믿게 됐다는 것입니다. 또 행 4:4을 보면 베드로가 성전에서 또 다시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을 들은 사람 중 남자들만 오천 명이 예수를 믿게 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는 대략 3-4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어림잡아 예루살렘에는 약 1만 명 정도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순례 차 예루살렘에 왔다가 믿게 되긴 했지만 예루살렘은 이미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행 1:8에서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지역으로 그리고 사마리아를 넘어서 땅 끝까지 복음을 들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면서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300여년 만에 로마 제국이 복음화 되기에 이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바로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람이 변합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변합니다. 나아가 세상도 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성령의 역사의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또 하나 성령이 내주하심을 믿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 14:16-7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셔서 예수님 대신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성령이 오시면 세상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알 뿐 아니라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그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 속에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오실 수 있고, 우리 안에 계실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성령의 내주’라고 말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내주하신 뒤에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셨다가 떠나시고, 잠시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계속 내주해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고전 6:19에서 사도 바울은 이런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체험하며 살면서 이렇게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도 바울은 롬 8:14에서 한 마디로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할 때에 40년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늘 함께 하면서 저들을 인도했던 것과 같습니다. 성령은 오늘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회개의 영으로 우리의 죄를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자복하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믿음의 영으로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믿을 수 없을 때 우리에게 믿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위로의 영으로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할 때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성령은 예배의 영으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찬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 곧 영으로 진리로 예배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영에 속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자에게 내주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늘 이점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순간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 해야 합니다. 때때로 성령께 묻고, 성령께 도움을 청하고, 성령과 대화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령께서 진정한 나의 보혜사임을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하려면 성령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로 신앙생활하려면 성령에 대해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세상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성령께 내안에 계시면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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