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교사를 섬겨야 하지요
마10:40~42
2005년 1월 16일 주일낮 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설교:
어떤 선교사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성탄축하와 새해 축복인사가 담긴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 속에는 왠지 모르게 선교사의 쓸쓸함이 담겨져 이었습니다. 그 선교사가 하는 말 “고향과 고국을 떠나 10년이 넘다보니 이제 한국에 오는 것이 두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와 봐야 반겨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후원하는 교회들은 점점 줄어들고 동기목사들이나 노회 목사님들은 목회의 어려움을 하소연합니다. 그러면서 ‘선교사는 그런 걱정 없으니 참 좋겠다.’하니 들어오기가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후원은 점점 들어들고 일은 해야 하겠는데 영적 침체는 회복되지 않으니 이제 번 아웃(탈진) 상태인 것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선교사라하면 일단 평생을 그 땅에 묻으려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완전 귀국한다는 것은 선교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선교지에서의 철수를 쉽게 결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우리 교단 신문인 기독교개혁신보에 <선교사의 아픔>이라는 내용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겪는 아픔이 얼마나 많은지 일반 목회를 하는 목사나 성도가 이해 할 수 없는 아픔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누구에게 쉽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그 갈등과 고민을 누구에게 말하면 현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오해를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선교사들은 돌봄(care)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사역은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기에 전쟁터에 군사로 그들을 내 보냈다면 그 최전선의 군인을 지원하고 전쟁물자와 비품을 대야 하는 역할은 후방 병참기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역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맡고 있는 사역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영적전쟁의 군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전쟁을 치루는 선교사들을 뒷바라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자를 보내고 계속해서 전투병을 훈련시켜 보내야 하고 더 나아가 전투병들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전교인 선교헌신 작정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선교사역에 헌신 할 것인지를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그 작정서를 봉헌하면서 헌신을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 “선교사! 성경은 그들을 어떻게 섬기라고 명하는가” 를 살펴보기를 축원합니다.
선교사!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주님을 섬기듯 섬겨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은 주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에게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그중에 오늘 봉독한 말씀은 전도자는 어떤 자세로 일하여야 할 것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4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할렐루야
예수님이 보낸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영접한다”는 뜻은 받아들인다, 말을 듣는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을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보낸 종을 대접하고 그들을 섬겨주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대단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종들을 전권대사로 보내셨습니다.
대사란 한나라에서 상대 나라에게 파견한 책임자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가 미국에 파견 한 대사는 단순한 공무원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도 大使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대사인 선교사에게 특별 권세를 부여하십니다. 그리고 특별하게 보호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앞절인 28절부터 31절을 잠시 봅시다.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할렐루야!
사실 선교사를 인간적으로 보면 볼품이 없습니다.
제 친구 목사가 어느 날 그런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선교사를 강단에 세우면 죽을 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세운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설교를 못하는지 영 은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번번히 실망한다는 것입니다.
왠지 아십니까? 한국말로 설교를 안하다가 오랜만에 한국말로 설교를 하니 말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는 하나님이 보낸 대사입니다. 그러기에 그를 주님 섬기듯 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넴 지역을 오갈 때마다 섬겼던 수넴 여인에게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도 않은 복을 주십니다.
바울이 복음전도자라는 이유로 지성으로 뒷바라지 한 루디아와 부리스길라 아굴라,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높이며 놀랍게 복을 주셨습니다.
옛날 우리 한국에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왔다 가셨습니다. 그때 선교사를 잘 뒷바라지하면서 섬겼던 분들은 이상하게도 놀라운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종수 박사를 기른 어머님도 대전에서 그 어려운 시절 선교사 가정에 가정부로 일을 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그 자식에게 세계적인 의사로서의 권위와 명예, 서울대 수석졸업의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도 여러분 목장이름에 해당되는 국가의 선교사, 그리고 우리 신학교 학생들을 지성으로 섬기시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상 받을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41절을 보세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선지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에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가 받을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 말로 번역하면 선교사라는 이름 때문에 그 선교사를 섬기면 그 선교사가 받을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부도를 내지 않습니다. 사람은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하면 부도를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냉수 한 그릇의 헌신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교회와 종들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복이 있다는 약속하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선교헌신은 놀라운 복을 동반하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계시록 2:10에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달란트비유의 결론은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을 받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눈에 보이는 상도 받아야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상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이 복을 약속하고 있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참된 헌신을 해야 합니다.
42절을 보세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성경은 냉수 한 그릇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도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냉수 한 그릇에는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중동지방에서 냉수를 구한다는 것은 깊은 샘물에서 금방 떠온 물을 의미합니다. 그 냉수 한 그릇은 대단한 수고와 정성이 담긴 것인데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하는 헌신도 냉수 한 그릇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헌신은 값어치 없는 헌신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이 담긴 것이기에 주님은 반드시 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역사에 위대한 공헌자중 한분이 <허드슨 테일러>입니다. 그는 영국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늘 “나는 크면 중국 선교사가 될 테야”라고 다짐을 했답니다.
마침내 1853년 9월, 22세의 청년 테일러는 중국으로 향했고 그 이듬해 3월 상해에 도착했습니다. 선교 초창기의 중국 상황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곤경이 산적했습니다. 아무도 영어를 할 줄 몰랐습니다. 중국인들은 그를 ‘서양마귀’라고 불렀고, 숙식도 가옥도 마련할 수가 없어 사원의 풀숲에서 기거했습니다. 여름엔 모기 때문에 겨울에는 추위에 밤을 지새워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고통 중에도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친절과 봉사로써 중국인들을 대했습니다. 그는 꽤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집을 얻을 수 있었고 조금씩 그 전도의 성과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을 지니고 중국 선교에 나선 여선교사와 결혼도 하였습니다.
그가 자리 잡았던 상해가 중국에서 가장 개방된 지역의 하나로, 서구문명과 기독교 전도의 근거지로서 발달하게 되었을 무렵, 그는 선교사로서의 새로운 결심을 하였습니다. 성숙된 선교여건의 지역을 놔두고, 보다 오지로 들어가 다시 성교영역을 개척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지 선교회를 설립했고 그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선교를 했습니다.
그의 헌신이 지금은 중국 기독교가 공산당의 혹독한 탄압을 이기에 했고 지금 매일 3만 명이 돌아오는 현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중국 전체를 보면 그의 헌신은 냉수 한 그릇 같은 하잘 것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받으시고 엄청난 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간혹 우리 C국의 HD 신학교가 15억의 인구를 향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저 청년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열매를 맺을까?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의 우리의 헌신을 냉수 한 그릇과 같은 헌신으로 받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헌신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정말 상상치도 못하는 엄청난 헌신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수 한 그릇은 하나님의 영혼구원의 마음을 시원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자와 같은 선교사들과 우리 신학생들은 수많은 영혼들에게 영혼의 생수를 공급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이 작정하는 선교작정서 한 장이 그야말로 냉수 한 그릇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작은 일 일수 있으나 그 약속으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복 주실 것이고 여러분 가족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가정의 식구가 5명이라 5만원을 작정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매우 작은 일이나 우리 신학교 학생 한사람의 한달 기숙사 생활비와 교재비가 됩니다. 가족 모두가 한달 한 사람당 만원으로 냉수 한 그릇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한국 경제를 하나님이 높여주셔서 만원 한 장의 가치를 크게 하셔서 외국에서는 큰돈이 되게 하셨습니다. 500만원이면 시골 교회당 하나를 짓고 750만원이면 우리학교 건물 일년 年稅가 되어 마음껏 공부하고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후원요청을 했는데 월 만원만 후원해 달라고 요청서가 왔습니다. 만원가지고 뭘 할까 했는데 만원후원자 300명을 모아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개미군단 후원자를 만들면 만원뿐이지만 300명의 기도후원자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선교사!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파송을 받은 종들입니다. 그들과 동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반드시 상을 받는 헌신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반드시 상주시겠다는 약속을 의심치마시고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추천 설교 > 최일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05년1월2일 -롬8:1~11 성령으로 새로워지는교회 (0) | 2015.12.01 |
---|---|
[스크랩] 2005년 1월 9일 주일낮 -막1:35~37 새벽기도할수 있는 사람 (0) | 2015.12.01 |
[스크랩] 2005년 1월 23일 주일설교- 살전4:1딤후2:15 힘좀씁시다 (0) | 2015.12.01 |
[스크랩]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요16:32~33 /2005년 1월 30일 (0) | 2015.12.01 |
[스크랩] 주님의 뜻이라면/약4:13~17 /2005년 2월 6일 설교 (0) | 2015.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