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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손 꼭 잡고 갑시다 /눅2:41~51 2005년 2월 20일 주일 낮예배 설교

손 꼭 잡고 갑시다

누가복음2:41~52

2005년 2월 20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41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설교:

2005년도를 맞이 한지 벌써 50일째입니다. 새해에는 열심히 살고 보다 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기로 결심했는데 어쩌다 보니 365일중에 50일이 지났고 이제 300여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2005년도 그럭저럭 가고 말 것입니다.

돌아보면 또 후회가 되네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살까요? 어떻게 살아야 失敗없이 살까요?

모든 사람이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해놓고 지나고 나면 또 반복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데,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사는데 왜 후회하는 일이 생기고 왜 만족치 못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 없이 나 홀로 만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데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경제가 안 좋아서 그렇다, 정치적으로 불안해서 그렇다, 먹고 살기 힘들다보니 정신없이 살기에 그렇다하나 아닙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문제의 원인의 80~90%는 우리 내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족함이 없이 행복함이 없이 그럭저럭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동행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와 동행치 않아서가 아니고 내가 너무 욕심이 많고 나 자신만 생각하다가 주님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과 동행함이 이루어지지 못할까요? 임마누엘을 믿는 우리가 왜 주님과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12살 되었을 때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 기록은 예수님의 유소년기의 유일한 기록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그 어디서도 예수님의 소년시절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이 예루살렘 방문 사건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요셉이 아들 예수를 잃어버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자식 기르면서 한 두 번은 겪어 본 일들일 것입니다. 눈이 뒤집히고 뵈는 게 없는 속된 말로 환장할 것 같은 일입니다. 

지난 2003년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미아 건수는 3500건 정도 되며 이중 자녀를 찾지 못한 건은 160여건이나 된다 합니다.

어쩌다 예수님의 부모들은 예수님을 잃어버렸던 것일까요?

그 원인을 깊이 생각해보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을 일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몇가지 중대한 교훈은 얻습니다.


왜 예수님을 잃었을까?

1. 정신없이 바쁘다보니 잃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7일간의 유월절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날이 되어 정신없이 분주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사렛까지 먼 길을 가려고 할 때 짐도 싸고, 먹을 음식과 물도 챙기고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또 조금 늦게 출발하면 너무 많은 인파로 복잡하고 힘든 것을 알기에 서둘렀습니다. 또 집에 빨리 가야 밀려있던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린아이도 아닌 예수님에 대해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알아서 하겠지 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 우리는 왜 주님과 동행치 못하나요?

어떤 때 주님을 잃고 헤매며 살까요?

너무 정신없이 바쁘다 보면 그렇게 됩니다.

지나치게 바쁜 삶을 살다보면 예배시간도 빼먹고 기도시간도 빼앗기게 되고 성경 볼 시간은 더 더욱이 없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주님을 향해 마음을 덜 쓰게 되고 결국 예수님이 내게서 멀어져도 미처 눈치를 못 채고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무 바쁜 것은 좋지 못한 것입니다. 안식할 시간도 없이, 그리고 주님을 행해 예배나 기도를 드릴 시간도 없이 바쁘십니까? 그것이 가장 귀한 것을 잃게 할 수 있음을 깨닫고 그럴수록 주님께 시간을 쏟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몇 주 교회를 못 나오시는 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제가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시간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하더라구요. 그러나 실상은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입니다. 교회나 예배가 다른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잃게 됩니다. 


유명한 목사인 ‘죠지 뮬러’ 목사님이 하루 일과 중 첫 번째 것이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가 끝나야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비서가 기도실로 들어가는 목사님께 부탁합니다.

“목사님 오늘은 하실 일이 너무 많으니까 기도시간을 좀 줄여서 일찍 끝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다 할 수 있습니다” 했답니다.

그때 뮬러 목사님이 ‘알았네’ 하고 들어가더니 두 시간 넘게 기도를 하고 나오시더랍니다. 평일에는 보통 한 시간이 넘으면 나오셨는데 그날은 두 시간이 더 지나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비서가 원망하며 불평을 하였답니다.

“목사님 오늘은 바쁘니까 좀 일찍 나오시라고 했는데 오히려 두배를 더하십니까? 어쩌자고 그러십니까?” 했더니 목사님이 그 비서에게

“이보게 오늘 할일이 많다며? 그러니 하나님이 도와달라고 더 많이 기도해야 하지 않겠나?”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바쁠수록 더 기도하고 바쁠수록 더 성경보고 바쁠수록 주님을 더 가까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곳이 주님과 동행하는 비법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정신없이 바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향해 마음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너무 바쁜 것도 문제이지만 또 너무 편하게 살려고 해도 문제입니다. 교회 신경을 좀 덜 쓰고 그리고 좀 더 신앙생활을 편안하게 하려면 주님을 잃게 됩니다. 교회 봉사도 神經쓰지 말고 교회가 무슨 행사를 하든 말든 신경을 끕니다. 내가 신경 안 써도 다 되겠지 합니다. 모든 일에 무관심하게 되고 결국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주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인 동시에 우리의 몸입니다. 주님은 내 머리십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이 뜨거운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향해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에게 신경을 안 쓰면 주님은 언젠가 모르게 네게서 멀어집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주님을 향한 열심을 품고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無關心! 이것은 사랑에 대한 背信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데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요? 하나님이 뭘 좋아 하시는지 하나님이 뭘 싫어하시는지 알면서 귀찮다고 그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사랑은 관심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인 사이는 매일 만나게 되고 만나면 대화하고 싶고 알고 싶고 헤어지면 또 보고 싶고 합니다. 왜요?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무관심하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할까? 그 사람은 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온통 관심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 있을 때 그게 사랑입니다.


주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나고 싶고 말하고 싶고 뭘 좋아하실까? 뭘 싫어하실까 神經쓰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신경을 쓰며 관심을 보여도 그게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습니다. 왜요? 사랑하니까.


나는 여러분이 주님께 큰 관심을 쏟으시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으로 느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절대로 주님을 잃지 않게 됩니다.


왜 잃었는가?

2. 주님이 알아서 따라와 줄줄 알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제는 12살이나 되었으니 알아서 따라와 줄줄 알았습니다. 44절에 보니 “동행에 있는 줄을 생각하고 하루 길을 간 후에” 살펴보니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생각처럼 따라 줄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러니 주님도 이렇게 생각하시겠지? 착각입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누구 생각에 맞추어야 합니까? 내 생각에 주님의 생각을 맞추려 하지 마세요. 반드시 실패합니다. 반대로 내 생각을 주님의 생각에다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공합니다. 

이제 유월절이 끝났으니 집으로 가는 것 알겠지? 우리가 떠나는 것 알테니 따라와 주겠지? 그러나 주님은 전혀 따른 생각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의 形便과 處地를 잘 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알아서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내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시는 주님을 여러분이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뭘 해야 할지를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는 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다리라하면 기다라고 주님이 남길 원하면 남으시고 주님이 떠나길 원하시면 떠나고 주님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먼저 살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면 그래서 관심을 가지면 주님의 뜻이 보입니다. 알아서 따라 오시겠지 방심치 마시고 늘 살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을 잃기는 쉬워도 찾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주님을 잃고 혼자 헤매고 계십니까?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親戚중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찾으려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서 찾으려고 하십니까? 혹시 사람 중에서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科學에서, 哲學에서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내 이성에서 내 경험에서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거기 계시지 않습니다. 어디서 찾았습니까? 예수님은 사람 중에도 안계셨고 친척 중에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성전에 계셨습니다.


또 예수님을 하루 무관심하여 잃었던 그들, 3일만에 찾았습니다. 잃어버리기는 쉬워도 되찾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리고 헤매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한마디로 뵈는 게 없습니다. 먹는 것 잠자는 것 모든 것이 엉망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주님을 잃었을 때 이런 심령을 갖고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성전에 계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곳에서 금방 만나실 수 있습니다.


49절을 읽어보세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요셉은 뭐라 합니까?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누가 근심케 했습니까? 자기들이 방심하여 스스로 근심케 만들어 놓고 누구탓을 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동행하시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주님을 잃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주님을 꼭 잡으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단 하루라도 주님에 대한 관심이 식어지지 않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나오시고 말씀을 들으시고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방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것 다 버려도 다 잃어도 좋지만 목숨까지도 잃어도 좋지만 예수님은 잃으면 안 됩니다.


이구경씨가 쓴 “짧은 동화 긴 생각”이란 동화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네가 내옆에 있다면 나는 글씨를 왼손으로 쓸거야.

문도 왼손으로 열고 손가락질도 왼손으로 할거야.

그림 그릴 때도 세수할 때도 왼손으로 할거야.

왜냐하면 내 오른손으로는 네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이 내게 함께 하실 때 그 손을 꼭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분 안에 기쁨이 있고 그분 안에 참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의 손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참 평안이 함께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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