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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하늘에 앉아 세상을 사는 성도/엡2:1~10/2005년 5월 29일

하늘에 앉아 세상을 사는 성도

에베소서 2:1-10

2005년 5월 29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설교: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요즘 人生살이는 어떻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럭저럭 살만 합니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왜 인생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만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되었는데 그 하나님을 떠났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인생살이가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시기에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하나 물어봅시다. 예수를 믿지 않는 不信者들과 예수를 믿는 성도, 누가 인생살이가 힘들까요? 생각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살면서 말씀도 지켜야 하기에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술 먹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하지 말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거기에다 기도에 힘써라, 복음을 전파하라, 예배하라, 찬양하라 등등, 하지 말라, 하라는 것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세상 사람은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살기에 아등바등 사니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야 내세가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니 마음이 더 즐겁고  기쁘고 하기에 덜 힘들 것이나 믿지 않는 자들은 그렇지 못하니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혹시 아직도 예수를 올바로 믿고 살려면 이 세상 살기 힘들어! 하면서 적당히 살려는  양다리 전략을 펴고 있지는 않습니까?

천국도 포기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세상도 포기 할 수 없다, 그러니 적당히 양다리 걸치자 하면 편할 것 같습니까? 바라기는 어중간한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과 천국 어중간한 위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완전히 세상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천국 백성도 아닌 것 같은 어중간한 소속은 우리를 더 피곤하게 하고 더 힘들게 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社會學的인 용어로 “주변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은 변두리 인생, 가장자리 인생, 어찌 보면 처세술이 좋은 것 같고 중용인 것 같으나 매우 피곤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빨갱이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세상 사람이 되든지 완전히 예수쟁이가 되든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그것이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만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요? 오늘 봉독한 에베소서 2장 6절 말씀을 보세요.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혀 놓은 존재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소속은 하늘인데 우리 몸은 땅에 속해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실질적인 소속은 하늘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살이도 남달라야 합니다.


요즘 이중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兵役을 면제 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몸은 한국에 있으면서 돈도 벌고 인기도 얻고 여러 가지를 보호 받으면서 국방의 의무는 못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살려면  누구나 다 해야 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 하니 문제입니다. 


우리는 소속이 天國입니다. 그러나 몸이 세상에 있기에 세상의 의무를 다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의 시민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소속은 천국이기에 천국 시민으로 합당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의 “그 큰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분의 그 놀라우신, 그리고 그 엄청나신 사랑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천국 시민권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앉아 세상을 사는 성도가 되려면 적어도 이것은 확신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그 큰 사랑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베푼 그 큰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1. 우리의 과거를 보지 않고 살려주신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기 이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의 과거 모습이 기록되었습니다.

에베소서2:1~3을 보세요.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그렇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으려던”이 아니고 “죽었던”입니다. “죽어가는” 이 아닌 “죽었던”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던 존재”입니다. 그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누굽니까? 사단 마귀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그를 따라 다녔던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짓은 다하며 살았던 자요, 결국 “본질상 진노의 자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살렸습니다. 전혀 자격이 없고 공로가 없는 우리를 아무 조건없이 살리셨습니다. 앞으로 살려 주실 것이 아니고 살려 주셨습니다. 살리셨도다! 이미 완료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습니까?

그 분을 迎接했다면 장차 구원 받을 것이 아니고 이미 구원 받았고  그러기에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닌 하늘에 속한 자가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나를 보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그리스도를 보시고 하신 거룩한 사역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던 罪와 허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지 못해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 이것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신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분이 그토록 처참하게 죽음의 값을 치루어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그럼 엄청난 과거를 일체 따지지 않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 과거를 묻지 않는 사랑은 지금도 여러분에게 적용됩니다. 그 큰 사랑으로 우리가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행함과 우리의 범죄를 하나하나 따지고 그것을 따라 심판하신다면 우리는 구원은 고사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앉아 세상을 사는 성도는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은

2.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늘에 앉히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와 그리스도를 聯合시키셨습니다. 그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하늘에 앉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셔서 그분이 하신 일이 전부 나를 위한 일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과 내가 연합되는 이 원리가 구원의 眞理입니다. 내가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안에 거하는 연합입니다. 그 연합의 원리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죄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 연합의 원리로 우리는 사망을 이기고 부활 한 것입니다.


본문 5절~6절을 보세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연합되어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몸은 이 땅에 살지만 주님이 하늘에 앉히신 사실을 의심하지 마시고 하늘에 속한 자 답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정도 되어야 우리 인생살이가 힘들고 피곤한 것이 아니라 기막힌 스릴과 기쁨이 있는 인생살이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2절을 기억하십니까?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로마서 12장 2절을 아시나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을 어떤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주변에 있는 세상이 자기 틀에 맞게 너를 쑤셔 넣지 못하게 하라 너희는 거기에 끌려들어가지 말라”

그렇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로서 이제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차원이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왜요? 하늘에 속한자요, 하늘에 앉힌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그 큰 사랑은

3. 일방적인 은혜의 선물을 베푸셨던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쌍방 통행이 있어야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일방통행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랑은 불행하고 안타깝습니다. 대개 남여간의 사랑을 가만 보면 나를 좋아서 죽겠다고 따라 다니면 그것은 싫어하고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서 죽으라고 따라갑니다.

연애하는 청년 자매 여러분! 한수 가르쳐 드릴까요? 혹시 여러분이 좋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여러분을 좋아하게 하려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세요. 너무 좋아서 날마다 어쩔 줄 몰라 따라다니면 그 사람은 곧 도망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왜 상방통행이 아닌 일방적인 사랑이었을까요? 그것은 부모와 자식 사랑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지식에게 사랑을 일방적으로 베풉니다. 자식 쪽에서 어느 정도 반응을 보여야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일방적으로 사랑의 융단폭격을 퍼 붇습니다. 그게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쪽에서 어느 정도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려 할 때 베푸는 사랑이 아닙니다.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닌 일방적인 사랑이며 선물입니다. 그 사랑을 느끼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개인의 감정이나 체험으로 느끼려 하지 마세요.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감각은 믿을 수 없습니다.

비행기 조정사가 비행 기술을 익힐 때 유의할 점은 비행기를 따고 갈 때 자기의 감각을 믿지 말라는 것이랍니다.  내가 보기에 비행기가 남쪽으로 가는 것 같아도 계기판이 동쪽을 가르키면 동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비행기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으나 실상은 수평으로 가는 것이랍니다.

그러기에 조종사는 계기판을 생명처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 경험과 지식만 믿으면 추락합니다. 그러기에 철저하게 우리의 영적인 계기판인 성경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안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하늘에 앉아 세상을 사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0절의 말씀을 보세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가집입니다.

1)내가 그분의 被造物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러기에 내가 철저하게 피조물 됨을 믿어야 합니다. 

2)내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할렐루야

하나님이 나를 지어 세상에 보내실 때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선한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 하나님은 나를 이 땅에 보내셨고 구원하셨고 세상에서 하늘에 속한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는 선한 일이 내 사명이기에 거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각자에게 부여한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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