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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다른시각으로 보고 계십니다/눅21:1~4/2005년 6월 4일 설교

다른 시각으로 보고 계십니다.

누가복음21:1~4

2005년 6월 5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설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사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십니다. 그래서 사명이 있는 사람은 힘이 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잃은 사람은 쉽게 늙고 병들고 쓸어 집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부여 받은 사명은 선교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마태복음 28장 18절부터 20절까지와 사도행전 1장 8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 장안중앙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세우시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년마다 2회씩 전교인 선교헌신주일을 지키고 있고 또 저녁예배를 2회 정도 선교헌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선교는 주님이 교회와 성도에게 부여하신 지상 大명령입니다. 마가복음16장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이 우리를 택하셨고 그것을 위해 여기에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일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사역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래전에 어떤 성도님이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왜 목사님은 선교만을 그렇게 외치십니까? 왜 선교사역에 그렇게 열중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와 제가 받은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마다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이 다 같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목회자에게 다 각각의 사명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역의 방법과 목표도 다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격도, 재능도, 사명도 다르니 목회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최종적인 목표는 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방법이나 사역은 같을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마다 처해 있는 정황이 다 다릅니다. 시골교회, 도시교회, 개척교회, 자립교회, 구제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교회마다 사역의 방향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세우신 목회자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환경에 맞게 사역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떻게 선교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

선교는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는 선교와 보내는 선교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는 선교는 바울과 바나바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선교사가 직접 선교지를 향해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선교가 될 수 없습니다. 가는 이들을 뒤에서 후원하며 보내주는 선교, 즉 sending mission 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안디옥교회가 보냈고 그들의 사역을 끊임없이 후원하고 도왔습니다.

가는 선교를 전방 전투적 선교라고 한다면 보내는 선교는 후방 지원 선교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여러분이 직접 복음을 들고 나가셔야 합니다. 여러분 이웃에게, 직장에, 그리고 땅끝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현재 인도에 양재일 선교사를 파송했고, 그리고 8명의 선교사를 협력선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HDTS를 운영하며 엄청난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 4나라에 지 교회를 세워 후원 선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일을 하려 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사람일까요? 아니면 특별한 능력일까요?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름이 아닌 “마음”과 “헌신”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우리의 땀을 드리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원하는 헌신은 어떤 헌신일까요?


신약성경 마태복음6장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드린 헌금, 여기에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 담겨져 있고 여기에는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노력과 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헌금은 단순히 헌금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드리는 것, 몸으로 때우는 봉사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다가도 헌금을 드리는 이야기만 나오면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의 시간이 돈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전부 돈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14:8절을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살리셨고 주님이 구원하셨기에 우리의 시간, 재물, 우리의 모든 소유가 실상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데 주님은 그 것을 헌신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려야 할 헌신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성전에 들어오는 성도들의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모습도 지켜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지켜보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헌금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속에서 어떤 종류를 얼마만큼이나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액수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드리는 자의 마음이 중요했습니다. 액수는 부자들이 훨씬 더 많이 드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고 두렙돈, 우리 돈으로 약 2000원도 못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드린 과부를 칭찬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2000원이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 주 중요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보시는 헌금과 우리 사람이 보는 헌금의 시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보시는 어떤 것일까요?

1. 모든 헌금은 드리는 자의 감사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 헌금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드려진다면 주님은 그 헌금을 열납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혹이라도 그 헌금이 감사가 아닌 체면, 감사가 아닌 형식으로 마지못해 드리는 헌금이라면 그것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제사와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십일조도 하나님이 재물을 주셨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감사의 예물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헌금을 복채로 드리는 자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을 받기위해 드리는 투자, “이것을 드릴테니 내게 복을 주시요” 라는 마음에서 드린다면 그것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천지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데 복 받기 위한 조건부로 드린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삭에게 별미를 바치고 복을 받았던 것처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조건부적인 헌금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물론 소원하며 하나님께 심는 예물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6절을 보시면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헌금을 하나님께 심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심어도 감사하는 마음이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는 예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선교헌금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에 정성어린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헌금을 드려도 목적이 복을 받기 위한 헌금이라면 자세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다 보면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가 온전히 드려지면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부어주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여기서 “온전”란 것이 뭡니까? 그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것이며 마음과 정성이 온전히 담겨진 예물이 되면 복을 달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드리는 소중한 헌금이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보시고 계십니다.


2. 헌금은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헌금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교회 나와서 헌금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는데 그 마음은 소유권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유권 신앙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여러 번 시험하십니다.

자식이 누구 것이냐? 네 재산이 누구 것이냐? 네 몸이 누구 것이냐? 네 시간이 누구 것이냐? 대표적인 사건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받은 그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신 것은 아들이 아닌 아브라함의 그 자세, 그의 가치관, 즉 그의 소유권을 보신 것입니다.

“네 아들이 아니다, 내 아들이다.” “네 것이 아니다, 내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누구 것입니까? 여러분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도, 건강도, 재산도, 자식도, 심지어 여러분의 미래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아멘?


뿐만 아니라 헌금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어쩌려고요? 당장 어쩌려고 다 드렸을까요? 자기의 미래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기에 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에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 옥합을 깨트려 기름을 부어 드립니다. 그것도 감사하는 마음도 있으나 미래를 주님께 드리는 신앙 고백입니다.

혹자는 그 향유가 마리아의 시집갈 지참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부모도 없고 오직 오라버니 나사로, 언니 마르다 뿐입니다. 그런데 그 귀향 옥합을 주님께 아낌없이 드립니다.

그러니 그것이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여러분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주님이 깜짝 놀랄만한 예물을 드리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내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성경에 안 나왔지만 본문에 나오는 이 과부는 분명 하나님이 넘치는 은혜를 베푸셨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기도로, 입으로 아무리 청산유수 같은 신앙 고백을 드린다 해도 그것이 실천되지 않은 입으로 만의 고백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드린 모든 헌금이 여러분의 온전한 신앙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헌금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미친 것처럼 보입니다. 참된 사랑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도 사랑하는 자식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사랑은 주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금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헌금의 양을 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헌금에 들어 있는 사랑을 보십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 합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에 그 표현이 담기기를 바랍니다. 그 헌금은 아깝지 않습니다. 그 헌금은 드리면서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색하거나 억지로 드리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 문 앞에서 앉아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을 보신 주님이 여러분의 헌금 생활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헌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보는 헌금에 대한 시각과 주님이 보는 시각은 분명 다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받으실만한 헌금이 되려면 감사하는 마음, 참된 신앙고백으로, 그리고 진정한 사랑으로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만한 예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헌금을 마음껏 드리시면 그 영혼 구원사역이 곧 여러분의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영혼구원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나 하나님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귀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헌금을 단순히 돈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감사요, 신앙고백이요, 사랑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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