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
창세기9:20~27, 롬13:1~2
2005년 6월 19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9: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9: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9: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로마서13장1~2절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설교:
세계 어느 나라를 가보더라도 한 가지만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교통질서입니다. 교통질서를 보면 선진국은 선진국답고 후진국은 후진국답습니다.
하나님은 秩序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질서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反對로 사단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破壞하고 무너트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宇宙를 秩序있게 만드시고 오묘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주를 영어로 cosmos (코스모스)라고 하는데 이는 "질서와 조화를 이룬 체계"란 뜻입니다. 우주가 질서와 조화를 이룬 존재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를 잘 살펴보세요. 거기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별견케 됩니다.
하나님은 지구가 하루 24시간에 자전하게 만드셨고 365일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돌게 하셨습니다. 조금만 빨라도 조금만 늦어도 인간이 살 수없는 환경이 됩니다. 또 太陽과 地球와의 距離, 달과 지구와의 거리를 오묘하게 만드셔서 일식과 월식이 있게 하셨고 그로인해 밀물과 썰물이 존재하게 되어 바다가 썩지 않고 살아있게 만드셨습니다. 창조물의 질서를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성경의 말씀대로 믿고 기도했답니다. 마가복음11:23절의 말씀을 믿고“이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하신 말씀대로 자기 집 앞을 가로막는 산이 집값을 떨어트리고 있기에 밤새 “하나님 그 산을 옮기어 바다에 던져 주십시오.”기도했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그 산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하더랍니다.
왜 안들어 주셨을까요? 첫째는 “그럴 줄 알았어!” 하고 의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기도한다고 옮겨주시면 이세상은 온통 無秩序의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산주인은 어쩌고 그 산에 집이 있는 사람은 빠져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까? 하루 밤 기도해서 팔달산이 서울로 가고 하루 밤 기도해서 한강이 사라진다면 이세상은 극도의 混亂과 苦痛이 있게 될 것입니다.
또 돌맹이를 붙들고 기도해서 금덩어리를 만든다면 세상의 금은 금이 아니라 돌과 같이 될 것이고 수고하고 노력하여 일하려 하지 않고 혼란과 무질서의 세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특별한 곳에서 주님이 超自然的인 행사가 이루어 졌습니다. 주님이 물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무화과 나무를 말라 죽게 하신 것은 주님의 신성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10장 12절에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한일, 달을 멈추게 한일도 14절에 보면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했습니다. 이 말은 다시는 그와 같은 기적을 베풀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되 질서를 破壞치 않는 방법으로 일을 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4장 33절에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아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서를 어떻게 잘 지킬 것인가? 그리고 그 질서를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질서를 위해 사람을 세우셔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뿐 만 아니라 인간의 幸福을 위해서 질서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질서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그 질서에 권위를 부여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驕慢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의 권위를 깨트리고 자기 중심의 질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 秩序가 깨지고 결국 혼란과 混沌이 와서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시고 그 가정의 행복을 위해 “자녀들아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아내들아 남편을 복종하라” 하며 질서를 세우시고 그 부모와 남편에게 권위를 부여하십니다.
그러기에 부모가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이 세우신 분이기에 공경해야 합니다. 남편이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이 짝 지워 주셨기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 권위를 拒逆하고 이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무서운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그만 실수를 합니다. 포도주를 너무 많이 먹고는 잠이 들었는데 열이나 더웠던지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둘째인 함이 보았습니다. 이 둘째 함은 그 아비의 실수를 덮지 못하고 형과 동생에게 떠벌리며 돌아다녔습니다. 결국 첫째 셈과 셋째 야벳이 뒷걸음질하여 들어가 아버지를 덮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술이 깬 노아는 자기가 실수를 했음에도 둘째를 저주하고 첫째와 셋째를 축복합니다. 그 축복과 저주는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노아가 망령이 들었나? 왜 자기가 실수하고 왜 아들을 저주 할까요?
그것은 어비지의 權威를 失墜시킨 자식에게 내리는 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곧 하나님의 권위이고 그러기에 아버지를 욕하고 그 허물을 떠벌린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를 대적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도 분명 길이 막혔을 것이고 고통당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편의 권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의 머리는 남편입니다. 그러기에 아내가 남편을 업신여기거나 남편을 대적하여 싸우면 그것 또한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질서를 위해 남편에게 머리되는 권위를 부여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남녀평등을 부르짖더니 이제는 호주제를 폐지한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서양에서는 여자는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꿉니다. 제 아내가 조복희이지만 미국식으로 하면 최복희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의 성도 따를 수 있고 재혼을 했을 때 자녀가 새 아빠의 성을 따르면 혈통에도 문제가 생기고 결국은 가정이 무너지게 되는데 우선 당장 편하자고 폐지한다는 것입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세계 由來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건강한 가족제도가 다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의 질서도 重要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셨습니다. 牧師와 敎師, 장로와 집사 권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점점 교회 안에서도 평등사상으로 흘러 질서를 깨고 있습니다.
사단은 家庭을 깨려고 갖은 노력도 하지만 그보다 더 힘쓰는 것이 교회를 깨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 교회 指導者들이 공격 對象입니다. 영적 권위를 가진 자들을 참소하고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을 무너뜨리려고 갖은 수단방법을 다 씁니다.
민수기 12장의 모세가 아내가 죽자 구스여자 흑인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자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모세를 비판하며 공격합니다. 너만 하나님이 세우셨냐? 너만 하나님이 對話하냐? 하며 공격하며 비방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를 편들고 미리암을 문등병자로 만듭니다. 육적으로는 동생이고 나이도 어립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가 그에게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목사인 저도 비록 나이가 어리고 몸도 시원찮고 여러 모양으로 부족하나 하나님이 세우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권위를 유지하려고 저도 무진 애를 쓰고 야유회나 모임에서 농담분위기에 휩쓸려 실수할까 절제하고 매우 조심하며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보면 제가 이상한 모습을 느낍니다. 성도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가 버릇이 못되 먹었습니다.
목사를 보고도 인사도 안하고 하더라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심지어 내가 먼저 인사를 해도 고개만 까우뚱 거립니다. 식사할 때도 담임목사가 와서 먹는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고, 목사가 들어와도 앉아서 인사하는 이런 잘못된 모습을 그 자리에 고치면 상처 될 것 같아 여러 번 참았습니다. 이것은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말합니다. 제가 우습게 보이고 가볍게 보이더라도 예의를 갖추고 말하시고 예의를 갖추고 대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을 보세요.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도 그렇고 직장의 상사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 1절에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했던 것입니다.
국가가 어렵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권위문제입니다. 대통령의 말이 먹히질 않습니다. 지금 현실이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업신여김을 받고 명령이 제대로 하달되지 않는다면. 결국 질서가 깨지고 그 결과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는 누가 세웠습니까? 결국 국민이 세웠고 결국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제가 설교 준비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대통령을 비난하지 말자,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곧 세우신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2. 질서유지를 위해 세워진 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세우시고 그 공동체를 유지하려고 지도자를 세우셨고 그에게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권위는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존경해야만 세워집니다. 사랑과 존경이 사라지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세워졌어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의 男便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그 가정이 건강해 집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그 가장이 행복해 집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세우신 목회자인 목사를 사랑하시고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행복해지고 건강해 집니다.
특히 신앙 共同體는 더욱이 그것이 필요합니다. 가족공동체야 피가 섞인 공동체이기에 사랑할 수 있고 직장 공동체야 이익이 따르기 때문이지만 信仰공동체는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고 도와주는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사랑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눈으로 보지 말고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서 실체를 보게 되고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노아는 當世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失手를 합니다. 그런 실수를 업신여긴 함은 자신이 저주를 받지 않고 그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되지 않습니까? 원인 제공은 노아가 하고 저주는 그를 업신여긴 함이 아닌 손자인 가나안이 당하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거의 모든 민족들은 함의 자손들입니다. 아프리카의 살기 좋은 곳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오랫동안 타민족들, 즉 로마인, 사라센족, 그리고 야벳의 후예들에 의해 점령되어 왔습니까?
대부분의 가나안 자손들은 罪惡과 無知와 야만과 속박과 비참함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불쌍한 흑인들이 유럽과 미국 대륙 시장에서 짐승들처럼 팔리고, 지구 한 끝에서 다른 한 끝으로 옮겨져 짐승들이 할 일을 하도록 강요당하여야 했습니까? 왜요? 이것이 부모의 권위를 저버린 행위요,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를 동생으로 보았고 자기들과 똑같은 존재로 보았다가 혼이 났습니다. 민수기 16장의 고라와 다단도 모세도 레위자손이고 우리도 레위 자손인데 왜 너만 지도자가 되냐며 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했다가 결국 땅이 갈라져 생매장되는 형벌을 당했습니다.
노아도 실수 합니다. 모세도 실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편이고 모세편입니다. 왜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3. 질서를 깨면 사단이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매우 귀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깨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사단입니다. 사단은 원래 천사장으로 있던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천사라는 것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나님을 대적하다 쫓겨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를 깨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가정 공동체를 깨려 합니다. 아니 이미 깨어 졌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깨려 합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사단의 장난에 무너지고 깨어집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승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기에 결국은 교회는 이깁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세요.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할렐루야
바라기는 자신도 모르게 사단의 조종을 당하는 성도가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복 있는 성도의 모습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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