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손을 대셔야 합니다.
시편 127:1-5
2005년 6월 26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설교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127: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127:5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설교:
많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정착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에 탈북자 출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훈련을 받을 때 남쪽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답니다. 왜 남쪽 사람들은 왜 그렇게 뛰어야 하는지? 왜 고속도로에서 그렇게 목숨 내걸고 속도를 내는지 이해가 안 된답니다. 신도림역에 가보면 사람들이 전철을 갈아타는데 그곳에 서 있으면 정말 살벌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은 마치 바보 같고 남을 방해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별로 바쁘지 않은 사람들도 남들이 뛰니까 자신도 급하게 갑니다.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급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나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바보 되고 뒤떨어진 인생이 된다는 걱정을 합니다. 그러니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평생을 허덕이다가 죽는 인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또 하나는 행복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살면 행복해 질까요?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손을 대셔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힘쓰고 노력하고 고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손을 대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살이 중 어떤 곳에, 어떻게 손을 대셔야 할까요?
1.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손을 대주셔야 합니다.
1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본문에서 말씀하는 “집을 세운다.”는 말은 “건물을 세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정과 집안이 평안하고 식구들이 하는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을 말하고, 가문이 興旺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세워주지 않으면 가정을 행복하게 하려는 우리의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 집을 세우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집이 행복한 집, 건강한 집, 복된 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知識이나 技術 또는 타고난 능력이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과 목적을 이뤄 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家門을 세우고, 그 이름을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야심에 찬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限界를 잘 모르고 자신을 過信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人物이라 해도 아는 것 보다는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많습니다. 아무리 天賦的 재능이나 經驗이 있더라도 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핸드폰을 다 갖고 계시지요? 기능을 다 사용할 줄 아시지요? 모른 다구요? 그래요, 이 조그만 핸드폰 하나도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원리로 소리가 전파가 되어 저 멀리 있는 곳에 연결이 되는지 아시고 사용합니까?. 아마도 대부분 모르고 씁니다. 알고 쓰는 분은 아마도 천명에 하나 정도 될까요? 그러나 몰라도 다 쓰게 되어 있습니다.
왜요? 만든 사람이 달 알고 있고 쓰기 편하게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쓰고 있다고 내가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편하게 만들어 놓은 것 그냥 쓰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습니다. 家庭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아멘?
여러분이 서로 만나 夫婦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고 여러분이 서로 모르던 남남이 만나 자식을 낳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 자식이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난 것도 하나님은 은혜입니다. 누가 만드셨어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만드셨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몸 건강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빵을 먹으면서 일으켜 세운 집이라고 할지라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남들이 쉬는 날도 쉬지 않고, 일요일도 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꽤 큰돈을 모았습니다. 그렇지만 큰돈을 모으면 뭐합니까? 지금 우리 부부가 다 중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맨 날 돈, 돈 하면서 자식에 신경을 못 썼더니 지금 자식들도 엉망입니다. 우리 집은 틀렸습니다. 우리 집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찌 이 사람 하나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시면 아무리 形便없는 부족한 사람도 베드로 같이 크게 쓰임 받고 아무리 잘난 사람도 하나님이 손 떼시면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1800~1865) 이야기를 한 가지 하겠습니다. 링컨은 청년 시절에 일리노이 주에서 노동자, 점원, 창고지기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독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이 좋아하는 여성이 한 사람 있었는데, “MERRY”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MERRY의 눈에는 링컨이 별 볼일 없는 시골뜨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가정 형편은 공부도 시켜주지 못할 형편이고 생긴 것도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정말 못생겼습니다.
그렇다고 Merry는 당장 더 좋은 청년이 자기 앞에 나타난 것도 아니어서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링컨을 외면하지 않고 못 이기는 척 가끔 한 번씩 만나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링컨의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마리에게!, 만일 나와의 사귐이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그대에게 행복을 주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면 분명한 의사를 밝혀 주시오.
만약 답장이 없으면 이 편지가 작별 인사가 된 줄도 알겠습니다.
나는 그대와의 사귐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만 그러나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포기하고, 그대의 원대로 해드리겠소이다.
앞으로 행복하십시오. 그러나 답장을 하기로 결정하신다면 나처럼 분명한 의사를 밝혀주시오.”
MERRY는 이 청년의 편지를 받고 기도도 안 해보고, 고민도 없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 링컨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훗날 링컨이 미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MERRY 현재의 링컨을 보고 거절했던 것이지만 그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였기에 퍼스트레이디가 될 기회를 놓친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나요? 그녀는 링컨의 외모만 보았고 현재만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쓰실 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가정행복은 내가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가정에 손을 대셔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정한다 해도 나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는 겉모습만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속과 우리의 미래를 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손을 대시도록 맡기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손을 대주셔야 합니다.
여기 오늘 본문 시127편 1절 하반 절에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글자 그대로 말하자면 전방의 군인이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최전방을 철통같이 경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상17장47절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제가 성장하고 국력이 있어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잘해서 전쟁 없이 편안히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우리가 전쟁 없이 편안히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시121편4절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어제가 6.25 55돌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55년 동안 우리나라는 6.25의 처참함을 딛고 일어서서 선진국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때는 거대한 빌딩의 숲을 보면서, 그리고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 들을 보면서, 저 많은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사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84년도에 이웅평 소령이 북한 비행기를 몰고 귀순했을 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때 슈퍼마켓의 라면이 모두 동났었습니다. 쌀가게에서 쌀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 난 줄 알고 비상식량 확보하느라 아우성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교육전도사로 성경학교 하고 있었는데 부모들이 달려와 자기 자식 안고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중국 비행기가 한국으로 와서 비상 착륙을 했습니다. 그때도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전쟁이 나는 것처럼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중국을 드나들며 복음사역을 할 것이라고 누가 예측했겠습니까? 아마도 그때 같았으면 나를 빨갱이라고 정보부에서 잡아갔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북한 항공기가 오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만약 그 보호의 손길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시게 되면, 그 때는 국가가 아무리 비상경계망을 펴고, 철통 수비를 한다 할지라도 무익하게 되고 맙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손을 떼시게 되면,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임재를 거두어 가시게 되면, 정부의 조치와 군인과 경찰의 경계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세계 제2차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입하자 영국, 프랑스가 독일에 대하여 선전 포고함으로서 발발했습니다.
독일이 단 두 주일 만에 프랑스를 석권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프랑스를 도와주던 영국 군대가 도버 해협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국 수도 런던도 매일 폭격을 당했습니다. 영국군도 맥을 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영국 정부가 한 일이 무엇인지 앏니까? 전국에 기도 일을 선포하고, 온 국민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결국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마침내 미국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우리의 나라는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안전합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건강에도 손을 대셔야 합니다.
본문 2절, 하반 절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맨 날 잠만 퍼 자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해석하지 마십시오. 또 “늦잠을 자는 것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늦잠을 자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단잠을 잘 수 있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건강도 붙들어 주시고, 염려도 맡아 주시고, 그리고 사고와 위험에서 지켜 주심으로 단잠을 이루게 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편안한 휴식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잠이란 생명에 기운을 주는 영양소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잠은 지치고 곤한 인생에게 무척 소중한 보약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잠을 자야 할 때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단잠을 이룰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곤한 내 육신과 영혼이 편히 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할 때 곤한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1)건강하다는 뜻이고 2)근심걱정이 없다는 뜻이고 3)배가 부르다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면 잠을 잘 못잡니다. 잔다 해도 제대로 자는 것 같지 않습니다. 걱정근심이 많으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늘 불안합니다. 또 배고파 보았나요? 잠이 안 옵니다. 눈물만 나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은 건강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고 만족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군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군가 마지막 부분에 “부모 형제 우릴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자 그럼, 그것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십시다. 우리가 누굴 믿고 단잠을 이루어야 합니까? 군대를 믿고요? 정부를 믿고요?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고 단잠을 이루어야 합니다. 젊은 군인이 나라를 지켜서 단잠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상급자를 쏘아대는 군대를 믿을 수 있고 단잠을 이룹니까? 어떻게 이런 사태를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를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인 의사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USA투데이 신문은 최근호에서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 10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습니다.
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의사 중 76%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고 또 59%는 죽은 뒤의 세상, 즉 내세가 있다고 믿는다고 대답했답니다.
생명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신을 믿는다는 이들의 비율이 일반인보다 배나 높은 것은 그들이 생명을 다루면서, 사람을 치료하면서 자신들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없다느니, 하나님을 죽었다느니 하는 인생은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14장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7편5절~6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문제와 염려와 가는 길을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가운데 언제나 단잠을 이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이 여러분자식에게도 손을 대주셔야 합니다.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基業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기업(基業)은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재산과 사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자식을 가리켜서 企業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자식이야 말로 평생을 두고 정성을 쏟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내가 그를 건강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키우도록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기업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식은 마치 내가 부모의 유산을 받듯이 저절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膳物이고 賞給입니다.
만약 자식을 부모가 만드는 것이라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생겨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갓난아이를 두통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식은 누구에게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식을 주시는 것 자체가 은총이고 상급입니다. 자식을 낳아보고도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여성들은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선물입니다. 아멘?
본문 4절에 이 자식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였습니까?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다”고 하였습니다. 將帥의 수중에 화살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또 화살은 궁수가 쏘는 방향으로 날아갑니다. 그것은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배우게 됩니다. 어느 일선 교사가 말하기를 “문제 있는 학생의 부모를 만나보면 어쩌면 그렇게 부모하고 자식이 똑같은지 모르겠더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자식들을 잘 길러 놓게 되면 그 부모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 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늘 지나다니고, 만나서 얘기하고 하는 성문에 재판소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사람에게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들이 있게 되면 악한 자가 쉽게 모함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이런 자식들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고, 내 멋대로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의 손을 대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 이 민족에 손을 대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건강을 붙잡아 주셔야 하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능력의 손이 닫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 주셔야 온전케 됩니다. 내가 아닙니다. 나의 노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비하면 커다란 호숫가에 물 한 컵도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이 손을 대시는 복이 있도록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추천 설교 > 최일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복받을 가능성 /2005년 7월 10일 주일 낮예배 설교 (0) | 2015.12.01 |
---|---|
[스크랩] 오늘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15:9~11/2005년 7월 3일 설교 (0) | 2015.12.01 |
[스크랩] 질서를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2005년 6월 19일 (0) | 2015.12.01 |
[스크랩] 작은 것을 양보하면/창13:1~18/2005년 6월12일 (0) | 2015.12.01 |
[스크랩] 다른시각으로 보고 계십니다/눅21:1~4/2005년 6월 4일 설교 (0) | 2015.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