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15:9~11
주일 낮 예배 2005년 7월 3일 최일환 목사 설교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15: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설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뭡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답은 여러 가지 이야기 할 수 있겠으나 정말 가장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람입니다.
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일까요?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어 인간으로서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연쇄 살인범, 육군의 총기난사 사건의 김일병 등 수없이 많은 범죄사건은 누가 저지른 것입니까? 짐승이 아닌 사람입니다. 한사람의 범죄가 수백만 명을 죽이기도 합니다. 히틀러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육했고 6.25전쟁, 베트남 전쟁,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사람의 욕심에 의해 수 백 만 명이 살육을 당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사람이지만 반면에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신 것도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악하기 그지없고 무섭기 그지없는 존재이나 창조 본래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장 고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멋있게 만들어진 존재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향해 베푸신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한번 따라서 합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돌아보니 오늘의 나, 현재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은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입니까?
1. 과거를 묻지 않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문제 않고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고 그는 바리새인이었으며 가문이나 학문으로는 남부럽지 않는 엘리트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그는 이중 國籍者였습니다. 유대인이면서도 로마 시민권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에 전문가였습니다. 성경으로는 누구 못지않게 確信있는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던 그 메시아가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청하여 기독교의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7집사 중 하나였던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도 사울이 한일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그때 얼마나 많은 성도를 못살게 굴었는지 자신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울을 하나님은 다메섹 길에서 만나주셨고 그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셔서 일꾼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가 다메섹으로 예수쟁이 잡으러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며 살았는지를 알았습니다.
이제까지 자기 딴에는 정당하다고 했던 그 일들이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서운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거나 심판치 않으시고 주님을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헛된 일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니 식음을 전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준비 된 사람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붙여줍니다. 그를 통해 예수를 영접하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극적인 경험은 없었을 터이지만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기적이 아닙니까?
저 개인의 입장도 제가 예수를 믿는 것 자체만도 엄청난 은혜입니다.
더욱이 목사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며 산다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인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 하나님은 인내하셨고 기다리셨으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같은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못된 고집 꺾으시느라 하나님은 무척 오래 참으셨습니다. 또 수없이 많은 체험도 하게하고, 수없이 많은 복을 베푸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창세전에 선택하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실 때 창세전에 구별하시어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믿는 그 순간 같으나 실상은 훨씬 이전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별하셨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제입니까? 창세전입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그 제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로 택함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듣고 하나님의 은혜로 영접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난번 스승의 날 제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30년 지났는데도 지금까지도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럽게 만들었는지, 한동안 그 선생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지냈습니다.
스승의 날이 지난 후 고등학교 앨범을 들척이다가 옛날 선생님 사진을 보고는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선생님 찾기에 들어가 검색을 했더니 아직도 교사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메일로 인사를 하면서 저를 기억하십니까? 인사를 드렸더니 전화가 왔더군요. “일환이 자네 기억하구 말구, 어찌 내가 자네를 잊겠나?” 하시더군요.
생각해보세요. 하물며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나를 아시고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창세전이 언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때 나를 계획하시고 그때 나를 도우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때 이 미물만도 못한 나를 아시고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고 때가 되매 우리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하셔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이렇게 주님의 교회 직분을 받아 섬기는 것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3. 연약한 중에 불러 쓰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일꾼으로 쓰실 때 강한 자나 잘난 자를 일꾼으로 들어 쓰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세상에는 강한 자가 많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많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지식을 갖춘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쓰지 않으시고 형편없는 사람, 연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제 개인적으로 보면 정말 형편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부르시고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종으로 세우셔서 목사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가 우리입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자녀 삼으시고 오히려 약한 우리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그는 외형적으로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약한 자가 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육체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바울의 고백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받은 것이 너무 크므로 自高치 않게 하시려고 주셨습니다.
사실 바울이 수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입니다. 신비하게 삼층 천에도 다녀왔고 죽은 자도 살리고 수없는 병자도 살렸으나 자기 육체에 가시를 위해 3번 기도해도 안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고린도후서12장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내가 약하다고 느낄 그 때가 최고 강한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내가 약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B.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할까요?
그 엄청난 은혜로 구원받았고 그 엄청난 은혜로 지금도 쓰임 받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렇다면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는 사도바울의 생애를 통해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1.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겸손
내가 뭘 한다고 내가 설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0절을 보세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그렇습니다.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내가, 내가, 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은 나를 멀리하십니다.
교만과 겸손의 차이점은 “내가, 내가”가 많이 나오면 그것은 보나마나 말기입니다. 심각한 증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 은혜, 은혜 하면 겸손의 단계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성경의 사울 왕이 목동으로 있을 때는 내가 어찌 왕이 되랴 하며 숨었습니다. 그러나 왕위에 재위기간이 늘어나면서 “내가 내가”를 좋아하더니 결국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내가, 내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 병이 걸립니다. 그렇게 되면 위, 아래도 없게 되고 결국 자기가 무시당한다 싶으면 발작을 일으킵니다. 내가 회장인데, 내가 안수집사인데, 내가 권사인데, 내가, 내가, 내가…….
이러면 손을 대시는 분이 계십니다. 결국 한방 맞게 되고 그렇게라도 정신 차리면 다행입니다. 어떤 분은 영영 돌이키지 못하고 그 병에 걸려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의 밥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노라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겸손으로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2. 충성으로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까? 내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며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도 표현을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위대한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忠誠입니다.
고전4:2에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직분을 주실 때 뭘 원하신다고요? 충성입니다.
충성이 뭡니까?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맡겨진 직분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0절에서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충성은 “죽을 때까지 하라”는 것이고, “죽을 만큼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모두 한두 번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하는 사람들인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목숨을 걸고 룻을 구해 냅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도 목숨을 걸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야곱도 목숨을 걸고 압복 강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모세도 목숨을 걸고 바로에게 찾아갑니다. 다윗도 목숨을 걸고 사울과 싸우지 않고 도망만 칩니다.
이외에도 수 없이 많습니다. 엘리야도 목숨을 걸고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웁니다. 더 나아가 다니엘도 목숨을 걸고 사자 굴속에 들어갑니다. 사도 바울도 목숨을 걸고 마게도냐를 건너갑니다.
목숨을 걸면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또 하나 누가 충성할 사람입니까? 명예 때문에 충성할 수 있나요? 직분 때문에 충성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일시적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착각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에 충만하면 그러면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신앙생활에 힘이 없습니까?
왜 주님을 섬기는 일이 왜 힘이 듭니까? 주님의 은혜를 잊어서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자신을 부인할 제자, 자신을 팔아넘길 그 제자를 씻기십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잃었던 은혜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 은혜를 받아 목숨 걸고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11절)
제 친구 목사 중에 “물 따로 밥 따로 식사법”을 외치는 분이 계십니다. 밥을 먹을 때 물을 먹지 않고 국물도 마시지 않고 오직 밥과 반찬만 먹고 2시간이 지난 후에 물을 많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장도 튼튼해지고 각종 질병이 떠나고 살도 빠진다는 것입니다. 소화를 시킬 때 소화액으로만 소화를 시키니 속이 물이 부족하여 갈증이 대단합니다. 그래도 물을 먹지 않으면 지방질이 물로 변하여 소화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대신 2시간이 지나면 물을 식사1시간 전까지 2리터를 마셔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이 급속히 회복된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목사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그분은 열심히 그 식사법을 전합니다. 그가 직접 해보니 너무 좋아서 그렇게 합니다. 어떤 모임에서든지 전합니다. 누구에게든지 전합니다. 왜요? 해봐서 좋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그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는 그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을 받은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열심히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교입니다. 그것이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복음전파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먼저 구원받았기에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 천국복음을 알면서 나 혼자만 갖고 있다면 엄청난 죄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명령까지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전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전하세요. 장난으로 하지 마세요. 시간나면 한다고 하지 마세요. 목숨을 거세요. 생명을 걸고 하세요. 그게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나의 나 됨이 정말 은혜라고 믿어지면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충성하시고요, 그리고 열심히 전하십시오. 듣든지 말든지 열심히 전하면 그게 은혜의 표지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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