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습관을 기르자
눅 22:39-46
중세 유럽에 흑사병(페스트)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일이 있습니다. 이 때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나 죽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유럽에 살고 있던 유대인 중에는 이 흑사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전파시켰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습니다.
도대체 왜 유대인들만 흑사병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활습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의 생활은 야만적이었습니다. 위생관념도 별로 없고, 목욕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달랐습니다. 식사 전후 손을 씻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전에 목욕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생활습관이 유대인들을 죽음에서 건져냈던 것입니다.
미국의 인구 가운데 유대인들은 2%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2%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미국의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100대 부호 가운데 20%가 유대인입니다. 특히 최상위 40명 중에서는 무려 42%가 유대인입니다. 게다가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20%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 750명 가운데 173명 그러니까 23%가 유대인입니다.
도대체 왜 유대인들은 이렇게 남다른 데가 있는 것일까요? 답은 역시 간단합니다. 유대인들의 독특한 습관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탈무드를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탈무드를 공부하면서 질문하고 깊이 생각하고 또 토론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습관이 유대인들을 남다른 민족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 습관이 우리 인생을 좌우합니다. 좋은 습관은 우리 인생을 복되게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우리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습관은 우리의 운명 자체를 결정합니다. 좋은 습관은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우리를 어둠 가운데로 인도하여 실패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가 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거룩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모범을 우리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눅 2:42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여기서 “관례”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어로 ‘에도스’(Ethos)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사실 이 에도스라는 말은 습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보다 정확하게 번역해 보면 “이 절기를 지키는 습관을 따라 올라갔다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 부모가 가르쳐준 습관을 따라서 유월절이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셔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서부터 거룩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눅 4:16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여기에 “늘 하시던 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어성경을 보면 여기에 또 ‘에도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정확하게 번역해 보면 “안식일에 습관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초창기에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셨습니다. 이 때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셔서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면 늘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으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고, 공생애 때도 그 습관을 따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막 10:1을 보면 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여기서 “전례대로”라는 말씀에도 “에도스”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번역해 보면 “예수께서 또 습관대로 가르치시더니”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여든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셨고, 이때도 그 습관을 따라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공생애 시절 새로운 거룩한 습관이 생기셨던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눅 22:39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여기에는 분명하게 이 “에도스”라는 말을 “습관을 따라”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무리 하시는 순간 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습관을 따른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생애 시절에도 거룩한 습관을 따라 사셨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공생애 기간에는 대부분의 사역이 바로 이 거룩한 습관을 따라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가지고 계셨던 거룩한 습관을 그대로 이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시절 새로운 거룩한 습관을 만드셨고, 그 거룩한 습관을 따라 사역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생애는 거룩한 습관으로 가득 찬 생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거룩한 습관 때문에 성공적인 삶을 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면 거룩한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고 싶지만 잘 안 되는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거룩한 습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거룩한 습관을 길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은 바로 이 거룩한 습관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도 나름대로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려움 가운데서 신앙을 지켜갑니다. 성수주일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 십일조 헌금을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 등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위기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켜갑니다.
그러나 거룩한 습관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영적인 위기가 오면 쉽게 무너집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지켜왔는데 그 마음이 흔들리면 신앙생활 전체가 흔들립니다. 때로는 의지로 신앙을 버텨왔는데 그 의지마저 흔들리면 신앙생활을 추스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리고 의지가 꺾여도 습관이 그 신앙을 지켜냅니다. 그래서 거룩한 습관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실 거룩한 습관을 갖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선 과거의 잘못된 습관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강상구라는 분이 쓴 [나를 위한 행복한 습관 만들기]라는 책을 보면 습관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현상유지 매커니즘’이 있어서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일상적으로 공급받던 일정량의 니코틴을 유지하려는 항상성 때문에 담배를 끊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롭게 거룩한 습관을 가져보려고 할 때 기존의 나쁜 습관들이 방해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습관을 새롭게 가지려고 할 때 우리를 방해하는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TV에 심취하는 습관, 주일 늦게 일어나는 습관,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어울리는 습관, 지나치게 낭비하는 습관... 어떤 것들이 내가 거룩한 습관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사탄이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탄은 우리의 습관에 깊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나쁜 습관에 빠져들게 미혹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습관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큰마음을 먹고 성경을 읽어보려면 이런 저런 핑계거리를 만듭니다. 성경 읽으려 하는데 TV 보고 싶고, 인터넷하고 싶고, 쓸 데 없이 전화로 수다 떨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나쁜 습관으로 거룩한 습관을 세워가는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습관을 갖는 일은 하나의 영적 사건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사탄의 방해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지려면 우리 안에 그것을 바라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뉴멕시코 주립대학의 연구진이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운동하는 이유를 연구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습관적으로 운동하는 266명을 조사했습니다. 대다수가 충동적으로 운동을 하고 한가한 시간이 생기거나 예기치 않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 이유가 달랐습니다.
우선 이 사람들 중 한 부류는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운동이 주는 엔도르핀을 비롯한 신경 화학물질을 기대하고 열망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운동을 하고 나면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루어 낸 성취를 돌이켜보면서 승리감을 열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지려면 우선 간절히 바라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기도 뒤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열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염려하고 근심 걱정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기도 뒤에 하늘의 평안을 내려 주십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이 평안을 열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기도 뒤에 응답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해 주십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이 믿음을 열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한 습관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얻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해 줍니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지려면 이런 하늘의 복을 열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반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지려면 그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행동이 내 안에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합니다.
영국의 런던 대학교의 제인 위들 교수팀이 주목할 만한 실험을 했답니다. ‘생각이나 의지 없이도 어떤 행동을 자동적으로 하게 하려면 그 행동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실험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어떤 행동이 하나의 습관이 되려면 얼마나 반복해서 그 행동을 하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실험인 것입니다.
실험 대상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과일 한 조각 먹기’와 ‘저녁 먹기 전 5분간 뛰기’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이 일을 반복하게 했습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 대부분 66일이 지나서야 생각이나 의지 없이 그 일을 자동적으로 수행하더랍니다. 그러니까 같은 행동을 의지적으로 66일 동안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그 행동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실험은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는 임계시간이 66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지려면 같은 일을 적어도 66일 간 끈기 있게 반복해야 합니다. 반복하다 보면 우리 몸이 그 일에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나서 내 몸이 자동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매일 성경읽기를 습관화 하려면 적어도 66일 동안은 하루도 쉬지 말고 매일 정해 놓은 시간에 정해 장소에서 정해 놓은 분량을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읽기가 내게 거룩한 습관이 됩니다. 새벽 기도하는 일을 습관화하려면 적어도 66일 동안은 이를 악물고 새벽마다 교회로 달려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새벽기도가 내게 거룩한 습관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한 습관은 꾸준한 반복의 열매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꾸준한 반복을 실천해 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지려면 주변 사람들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인생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난 뒤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일이 있습니다. 늦었지만 그렇게 아내가 권하던 주일성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건강진단 후 충격적인 질병 소식을 듣고 그동안 젖어있던 나쁜 습관을 털어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외부 충격 없이 스스로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새로운 습관에 대해 격려를 받는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습관을 끊고자 합니다. 담배를 끊고 난 뒤 주어지는 새로운 삶을 간절히 열망합니다. 그리고 담배가 생각날 때 떨쳐버리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성공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격려를 받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이 금연을 성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동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이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나의 결심과 노력을 나눕니다. 그 사람들의 기도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격려를 받습니다. 그럴 때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격려를 통해 주어지는 믿음이 결국 거룩한 습관을 가질 수 있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한 습관은 나 혼자서 이루어가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기도의 격려, 사랑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때문에 십자가에서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기도라는 거룩한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기도를 실천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큰 결심을 해야 하고 의지적인 몸부림이 있어야만 기도의 자리로 나갑니다. 그러나 기도라는 거룩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저절로 기도의 자리로 나갑니다.
그래서 거룩한 습관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씩 거룩한 습관을 길러가야 하겠습니다. 열망을 가지고, 반복적인 노력을 통해서, 그리고 공동체의 격려를 받으며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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