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고린도전서13:1~7
2005년 11월27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낮예배 설교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설교:
성도 여러분! 기독교의 정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이라고 답변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변하실 수 있습니까?
예전에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라고 노래했던 가수가 있었습니다. 아주 형이상학적인 표현입니다.
“사랑”이라는 우리말 단어는 그 뜻이 너무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단어의 정의가 한마디로 이것이라고 표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사랑,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
친구가 친구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
사람이 동물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
자기 직업이나 일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
이처럼 사랑은 그 형태나 방법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너무 광범위한 뜻을 갖고 있기에 또한 오해를 가장 많이 불러 올수도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 어떤 부교역자님이 담당학생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OOO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자 메시지를 우연히 그 어머니가 봤습니다.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분이 제게 찾아와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뭐라 했겠습니까? “아니 집사님,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그것이 뭐가 잘못 되었나요?” 했더니 얼굴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그제서 아차! 싶었습니다.
그분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제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과 개념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사랑을 이해를 시키고 다시는 그런 문자 보내지 말라고 하겠다고 하곤 돌려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라고 할 때 얼굴이 화끈 거리고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까? 그분은 뭔가 이상한 분입니다. 여기에 그럴 사람도 없겠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제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이상합니까? 거봐요. 아무 이상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여기서 공개적으로 하니 그렇습니다.
만약 제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어느 한분에게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했다면 그 사람은 당장 난리 나고 밤잠을 못 잘지도 모릅니다. 왜요? 그때 그 사랑과 이 사랑이 다르단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속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뭐 길래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 고린도 전서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우리 성경에서는 4가지 형태를 다 사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혈육정인 사랑인 스톨게 사랑,
또는 친구간의 우정을 말하는 필레오 사랑,
남녀 이성간의 사랑을 말하는 에로스 사랑,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향해 베푸신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 사랑을 다 사랑으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에서도 꼭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만을 사랑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스톨게 사랑, 필레오 사랑, 에로스 사랑도 사랑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베푸신 사랑도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인간이 어떻게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일까요?
그러려면 참 사랑이 무엇인줄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참사랑이 무엇일까요?
1. 참 사랑은 강력한 힘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이 땅에 보내 주셨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 이것은 성도의 힘의 근원이고 성도의 삶의 기초이며, 성도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 사람은 마치 전기 안 들어오는 전자제품과 똑같은 존재입니다. 전자 제품이 아무리 성능이 좋게 만들어 졌으면 뭐합니까? 전기가 들어와야만 힘을 발휘하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만약 우리나라가 3일만 전국이 정전이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모든 공장은 올 스톱되고 아파트 12층에 사는 분은 죽어날 것입니다. 물도 안 올라오지요, 엘리베이터도 stop이구요. 어디 그 뿐인 줄 아세요. 난방, 가스, 모든 것이 멈춥니다. 은행 전산망도 스톱이구요. 심지어 항공기도, 레이더망도, 모든 차량도 스톱입니다. 전기가 없다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통신망 마비, 생산망 마비, 은행망 마비, 한마디로 3일만 전국이 정전이 되면 나라가 망합니다. 인체로 말하면 심장마비 상태입니다.
그만큼 막강한 힘이 전기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단 3일만 멈추면 인류는 망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왜 망하느냐 구요? 사람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돌며 자전하고 공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이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내가 누리는 사랑이 아닌 내가 행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받고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을 받아 나누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서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 사랑은 가짜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충전기입니다. 하나님의 그 강력한 사랑을 받아 누리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남에게 베푸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있을 때 비로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 참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은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받았음을 알게 하고 이 마음을 통해 이 사랑을 남에게 나눌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이 넘치는 마음을 선한 마음, 또는 좋은 마음이라 하고 사랑이 인색한 마음을 나쁜 마음, 악한 마음이라 합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남편에게, 아내에게 평생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해 보지 못했습니다. 한번 해보라 하면 못합니다. 마음으로 하면 되지 뭘 말로 표현해야 아나? 합니다.
말로 잘 표현은 못해도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오히려 표현하면 이상한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여러분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그 마음이 좋고 나쁜 것은 사랑이 많으냐, 적으냐를 의미하고 동시에 사랑을 적절할 때 잘 베푸느냐 못 베푸느냐를 두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마음이 기쁘다는 것은 사랑이 있다는 것이고 마음이 기뻐하지 않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2: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뻐하는 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입니다.
또 마태복음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했습니다. 악하다는 것은 마음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하는데 실상 마음은 내게서 말다, 즉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사랑, 진정한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면 그 사람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 사랑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입술로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은 가짜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 사랑을 가지면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사랑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자기 자식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아 사랑한 것,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한 베드로를 사랑으로 품은 것, 이 모든 것은 그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한다면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입술로 사랑고백을 받으시기 원해서 우리를 시험해 보시기도 합니다.
3. 참 사랑은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행하려면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희생은 단순히 희생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기쁨과 감사, 그리고 보람으로 다가 오기에 힘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4절부터 7절을 보세요. 다같이 읽어봅시다.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는다 온유하다, 투기하지 않는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한마디로 희생하고 포기하고 손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아무나 못합니다. 이것을 사랑이 없이 하려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 사람은 이런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기쁨으로 행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어머님이 “아~ 나 되게 많이 희생한다.” 하시면서 참습니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아~아프다, 그래 참 나 되게 많이 참는다 하며 참습니까? 아닙니다. 참 사랑은 그런 희생을 희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참 사랑은 힘든데도 오래 참으면서 좋아하고 화가 나는데도 기쁨으로 생각하고 아무리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실망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사람은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랑을 사랑이라 하지 않고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배웁니다.
주님을 보세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견디어 내십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고통을 고통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도 그 사랑을 하나님께로 받고 그대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참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1)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던 그 사랑,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던 무리를 용서하신 그 사랑, 그런 위대한 사랑을 행하며 살수가 있게 됩니다.
2)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은 복을 동반합니다. 사랑이 행해지는 곳에는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행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미래에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행하면 우리는 우리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문제를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인생이 달라지고 결국 미래가 소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강력한 힘이며 사랑은 마음이며 사랑은 희생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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