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주로 오신 메시야
요한일서4:7~15
2005년 12월 18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설교:
어느 교도소에서 전과 7범으로 복역한 사람이 형기를 마치고 출감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나와 이 직장 저 직장 구해 보려고 애를 섰습니다. 그러나 전과가 들어나면서 아무도 그를 써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너무 냉냉하고 아무도 그를 따듯하게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죄를 짓고 교도소로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교도소에 들어오셔서 설교한 목사님이 생각나서 수소문하여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목사님께 세상이 너무 야박하고 사랑이 없다,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직업을 구해달라고 요구했답니다.
그 목사님은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직장이 문제가 아니고 생각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편견으로 보는 그 생각, 세상은 다 썩었고 사랑이 식었다며 세상을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의 모습이 더 심각했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것을 고쳐주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가 고아원에서 자랄 때 누가 먹여주고 입혀주었으며, 누가 길러주고 가르쳐 주었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자신의 가족이 아님에도 키워주고 재워준 고아원 원장의 사랑을 떠올리게 되었답니다.
또 누가 낳아주어 태어났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고 조실부모하자 남에 집에 맡겨졌다가 고아원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부모님의 가슴 아픈 사랑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누가 고아원을 도와주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고아원을 때만 되면 찾아주었던 사람들, 후원해 주신 분들, 익명의 사랑의 손길과 후원으로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때 목사님은 세상이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 것 이 문제임을 알게 했습니다. 그는 그 엄청난 사랑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과 7범은 자신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임을 깨닫고 다시금 살아보겠노라고 하고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살맛이 없어지고 절망과 좌절 속에 살다가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어느 기관에서 학교의 문제 학생들을 조사해 보니 그런 문제학생의 원인이 사랑결핍에 있다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들, 선생님들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결국 自暴自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면 그 아이는 놀라운 학습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도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면 그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한분만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 확실하게 믿으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은 사랑인데 어떤 사랑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란 조건없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고 그 사랑은 어떻게 누려지는 것이며 우리는 그 사랑으로 누구를 사랑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탄절의 계절, 우리는 오늘 사랑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축하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참 사랑을 보여주고 베풀어 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聖誕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 자체가 참 사랑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7절~8절)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말을 쉽게 말하자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도 사랑이고 그 결과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에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을 모르거나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공의도 사랑하기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이 없으시다면 공의도 존재 할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어디서 발견하게 됩니까?
십계명에서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2계명에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왜 질투합니까? 사랑하기에 질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독하리만큼 편애적인 사랑입니다. 무조건 택한 백성만 위하시고 무조건 당신 백성을 편드십니다.
요즘 우리가 창세기 성경공부를 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독하리만큼 아브라함 편을 드십니다. 분명 아브라함이 잘못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시고 아브라함에게는 한마디도 책망치 않습니다. 창세기 후반에서 보게 되는 “이삭과 이스마엘” 그리고 “야곱과 에서”에서도 그렇습니다. 무조건 자기 택한 백성 편입니다. 똑같은 자식인데 하나님은 택자 편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유심히 보세요. 성경 전체를 도도하게 흐르는 맥이 하나 있다면 언약이라는 것이고 그 언약은 구원을 위한 언약인데 그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언약이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사이 애들 말로 하나님에게는 사랑 빼면 시체입니다.
2. 예수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임을 보여줍니다. (9절~10절)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정확하고 온전하게 보여 주는 곳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분명하고 정확하게 나타나있습니다.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독생자를 왜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왜 그토록 처참하게 죽이셨습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게 하셨고 모든 사람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 뒤집어쓰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제물이셨습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출발은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독하게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고통스럽게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우리 말로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외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외면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은 단순한 즐거운 절기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것을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라고 했습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탄은 모든 이를 위한 성탄이 아니고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즉 택한 백성들을 위한 성탄이라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 중의 평화라는 것입니다.
성탄이 뭐니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 성탄입니다. 왜 오셨습니까? 그가 오신 목적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를 지옥 보내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성탄 그 자체가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개미들을 살리기 위해 개미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애완견을 기르는 분들이 많은데 여러분이 아무리 개를 사랑한다고 그 개를 구하기 위해 개로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우리가운데 오셨고 그 사랑의 극치로 십자가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에 응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도는 사랑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11~12절)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성탄을 기뻐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시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이며 그런 사람은 그 참사랑을 받은 자이기에 그 사랑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고 했는데 누구를 사랑하란 말입니까?
1)성도간의 사랑입니다. -섬김와 친교가 필요합니다.
2)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전도와 영혼구원입니다.
3)약자를 향한 사랑입니다.-구제와 봉사입니다.
4)원수를 향한 사랑입니다.-용서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경제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정치 문제라고 합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윤리 도덕문제라고 합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사랑문제입니다. 이 시대에는 동물적 사랑만이 사랑으로 인정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 새끼를 향한 사랑, 내 가족을 향한 사랑, 내 이성을 향한 사랑만이 사랑으로 보여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조건적인 사랑을 하신분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조건 없는 사랑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도 그렇고 이웃을 향해, 약자를 향해, 원수를 향해서도 그렇습니다. 내게 어떤 급부가 돌아올 것이냐를 따지면 사랑이 아닌 투자입니다.
“저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면 나중에 알아주고 고마워하겠지”하는 사랑은 투자요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주님의 마음으로 조건없이 사랑하고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닮아 가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빌립보서2장5절에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낮아져서 사랑해야하고 죽기까지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탄절은 사랑으로 보답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어야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나눌 때 채워집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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