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로마서15:1~7
2006년 1월 1일 신년주일 설교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설교:
새해 복많이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해에 첫 주일이자 첫날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으로 365일이 내내 은혜 충만한 한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 속한 성도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이 설교 글을 읽는 성도와 목회자 여러분과 J국의 화동 식구들과 인도, 필리핀, 브라질 그리고 J의 지교회 식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올 한 해의 우리 교회는 표어를 좀 특이하게 잡았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Not For Self)” 따라서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이 표어는 제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닙니다.
미국 명문 고등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의 건학이념이 이것입니다. 그 학교는 졸업동문 35명 중 1명꼴로 미국 명사 인명사전에 올라 있고 백만장자 비율도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최고의 명문입니다. 설립 200년 이상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이 학교의 건학 이념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Not For Self)입니다.
설립자인 <새뮤얼 필립스>와 <존 필립스>가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이 건학 이념을 정했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와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에서 영감을 받아 나 자신이 아닌 지역사회와 국가, 세계를 위한 교육을 목표로 했다고 합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우리나라 출신인 백악관 정책보좌관인 강영우 박사가 쓴 책을 읽다가 이 표어를 읽었는데 하나님이 제게 엄청난 충격을 주셨습니다.
“그래 오늘 우리 교회가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려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삶을 살아야 한다” 는 믿음과 확신이 물밀듯이 제게 밀려 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는 엄청난 복을 받기를 그토록 소원했고 그토록 간구했으나 실상 하나님 앞에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가 차고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지 않고 적당하게 감당 할 만큼만 주시는 것일 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많이 주시면 잘못될 가능성이 많기에 적당히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풍성하게 누리는 사람은 뭐입니까? 그들은 왜 그렇게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 것일까요?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대부분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얼마나 주위를 돌아보고 얼마나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왔는지,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삶,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예배와 섬김, 봉사를 얼마나 해 왔습니까?
하나님은 아무나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삶을 사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 놀라운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삶을 살 수 있는 것일 까요?
1.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사실 우리는 예배를 드려도 나를 위해 드렸고, 헌금을 드려도 나를 위해 드렸고, 봉사를 해도 나를 위해 드렸습니다. 매사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나 자신을 위해 살았던 삶이었음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 이 예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가 아닌 나 자신이 복을 누리기 위한 예배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이제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예배도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봉사와 섬김도 하나님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 선교사역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행하면 하나님은 넘치는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 성역 3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전부가 담임목사 칭송이고 모든 영광을 담임목사가 받는 모습을 봤습니다.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설교하는 이나 축사하는 이, 그리고 권면하는 분도 전부 담임목사 수고했다, 복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예배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무서운 행위입니다. 정말 축하 할 일이 있다면 기도해주고 축복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생일이나 돌이나 회갑 같은 예식을 예배로 드릴 때도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가 되어야지 사람이 영광을 빼앗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헤롯왕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려다가 벌레 먹어 죽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죽이지는 않을 지라도 복을 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한번도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세요.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새해에는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교회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으로 세운 교회 공동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려고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마16:18절 이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힘이 있고 이 교회는 우리를 영적으로 성숙시켜 주는 복된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교회가 우리 영적 생명의 근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 성도는 이 몸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이 몸에 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에 늘 붙어 있어야만 할뿐 아니라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되도록 교회를 위해 늘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제까지의 신앙생활은 교회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 힘쓰고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한 삶입니다.
이젠 바꾸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교회를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은 나를 위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고 우리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희생하며 교회를 내 몸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냥 계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우리 생활이 교회를 위한 삶으로 바뀔 때 우리는 우리가 예상치도 못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운 곳입니다.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피 값이 들어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교회를 무너트린 세력은 여지없이 망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귀히 여긴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든 복을 받습니다.
저 북한을 보세요. 공산국가들을 보세요. 저 이북을 보세요.
피 값으로 세운 교회를 얼마나 핍박하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목사와 성도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습니까? 그러니 저렇게 망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회교 국가와 우상국가들을 보세요. 주님은 그런 나라에 복을 주지 않습니다.
바울이 회개하기 전에 사울로서 예수쟁이를 잡아 감옥에 가두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다메섹으로 가서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가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이 “뉘시니이까?” 그때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직접 핍박하지도 않았는데 주님은 성도를 핍박한 것을 교회를 핍박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교회를 핍박한 것을 주님을 대적한 것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일평생 죽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주님을 욕하는 일과 교회를 대적하는 일은 절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그곳은 곧 하나님을 대적해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회를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물질을 사용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땀을 흘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주님의 교회를 위해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1~2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이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고 지식이고 부모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당연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가만히 보세요. 정말 그 가족 식구를 위해 삽니까? 혹시 그것 조차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까?
왜 많은 가족이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까? 왜 많은 사람이 가족 때문에 힘들어 합니까?
이유는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결혼하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돈 벌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식 기르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서 성격이 안 맞는다, 뭐가 어쩠다 하며 힘들어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찾는 기대 치 만큼 안 되면 헤어지고 다른 행복을 찾는 것 아닙니까?
이제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가정도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가정 공동체 식구들을 위해 꾸려나가야 합니다.
또 내가 보살펴야 할 이웃은 누굽니까? 내 주변에 어려움 당하는 사람, 내 주변에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바로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그 이웃을 섬기고 그 이웃을 사랑하며 그 이웃을 위해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나누는 그것이 여러분의 복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어항에 고기 세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 중 한 마리가 좀 못된 병이 있어 다른 두 마리가 힘들게 살았습니다. 결국 다른 두 마리가 생각을 모아 그 한 마리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나간 틈을 타서 그 고기를 공격하여 물어 띁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은 고기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어항주인은 한주간 동안 여행을 떠났기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머지 두 마리도 그 썩은 고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꾸며낸 이야깁니다. 우리를 못살게 구는 사람도 우리 이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이웃이 고통당하면 그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웃은 곧 우리 자신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장안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웃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예수를 알지 못하고 멸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많은 영혼을 돌아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요나가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기뻐하고 구경하려다가 하나님께 얼마나 망신을 당하였습니까?
그러기에 여러분 주변에 예수를 안 믿는 이웃은 전부 여러분의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주변에 친척에 이웃에 동창들, 회사원들, 친구들, 예수를 안믿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새해에는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 생명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더 귀하여 사명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것도 자신을 위한 일이나 더 크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사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던 국민교육헌장에 “우리는 민족 증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 났다”고 했는데 그보다 더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크게 널리 전파하는 그 일을 위하여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 가면 분명 여러분은 엄청난 복을 누립니다. 그러기에 이제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사명을 위해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이 표어를 이 한 해 동안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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