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생활의 습관을 기르자
마 4:4-11
경영전문 잡지인 [Dong-A Business Review]에 실린 서진영 박사의 “일류와 이류를 가르는 습관의 힘”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는 인생을 일류와 이류 그리고 삼류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중에 떠도는 일류, 이류, 삼류의 구분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힘들 때 우는 것은 삼류고, 참는 것은 이류고, 웃는 것은 일류다.
명품을 만드는 나라는 일류고, 짝퉁을 만드는 나라는 이류고, 짝퉁도 못 만드는 나라는 삼류이다.
자기 능력만 사용하는 사람은 삼류고, 남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류고, 남의 지혜를 사용하는 사람이 일류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일류고, 그것을 따라 잡으려는 사람이 이류고,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이 삼류이다.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일류이고, 기회는 또 온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이류고, 기회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은 삼류다.
어려움이 닥치면 그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일류고, 누구 또는 무엇에 그 핑계를 대는 사람이 이류고, 하늘을 원망하고 운명을 탓하는 사람이 삼류다.
그러면서 자신은 일류와 이류 그리고 삼류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남다른 습관을 가지고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사람이 일류고, 의지와 꿈은 가지고 있지만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이류고, 아무런 의지와 꿈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삼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세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삼류인생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 끌려 다니며 모든 것을 다 운명 탓으로 돌리며 아무런 꿈도 의지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이에 비해 이류인생은 그 주어진 상황을 극복해 보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룰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일류인생이 있습니다. 일류인생은 남다른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남다른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남다른 습관입니다.
저는 우리 신앙인들도 세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삼류신자가 있습니다. 교회는 다닙니다. 그런데 열심히 믿어볼 의지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풍성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꿈도 없습니다. 바쁘면 빠지고 힘들면 쉬고 생각나면 교회에 나옵니다.
다음으로 이류신자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에 나옵니다. 열심히 믿어볼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깊어지지 않습니다. 늘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일류신자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 삶이 풍성합니다. 그 신앙생활을 들여다보면 남다른 거룩한 습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습관의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일류신자의 구체적인 본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본을 통해 우리에게 믿으려면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직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마귀가 세 차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첫째는 금식 후 굶주리실 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다치지 않게 해 주실 테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시험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천하만국과 모든 영광을 줄테니 자기에게 절하라고 시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시험을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방법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바로 말씀입니다.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시면서 성경말씀을 외치셨습니다. 마귀는 그 말씀을 듣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물러섰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 말씀들을 암송하고 계셨을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그 상황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실 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성령의 역사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성령에게 이끌리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의 자리에 성령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물리치는 과정에서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상시 말씀생활을 습관으로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셨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계셨고, 또 그 말씀대로 살려고 늘 힘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해도 평상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이 텅 빈 사람들에게 말씀의 역사를 나타내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류신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바로 말씀생활의 습관으로 그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 이류신자들은 나름대로 말씀을 가까이 하려고 애쓰지만 그 심령에 말씀이 충만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물론 삼류신자들은 평상시 말씀을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 심령이 텅 빈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일류신자가 되려면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말씀생활을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심령이 말씀이 충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말씀생활을 어떻게 습관화할 수 있을까요?
첫째, 말씀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신 6장을 보면 소위 “쉐마”라고 알려진 내용이 나옵니다. 모세가 출애굽 2세대들에게 반드시 지키도록 당부한 말씀입니다. 7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 이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지켜왔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 손목에 그리고 미간에 말씀을 담은 작은 상자를 붙이고 다니게 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있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테필린’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설주에 말씀을 담은 상자를 걸어놓았습니다. 집에서 밖에 나갈 때 그리고 밖에서 집으로 들어올 때 말씀을 읽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메쭈자’라는 것입니다.
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도록 명했을까요? 한 마디로 저들이 말씀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습관이 우상이 가득한 저 가나안 땅에서 저들의 믿음을 지켜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길러왔습니다. 손목에 말씀을 달고, 머리에 말씀을 이고, 집 문에 말씀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말씀 속에서 눈을 뜨고 말씀과 함께 집을 나섰고, 말씀과 함께 하루를 살고, 또 말씀과 함께 잠들었습니다. 이것이 저들의 평생을 지켜준 습관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군대 입대할 때 일입니다. 제 모 교회 목사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뒤에 작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포켓성경입니다. 군 작업복 상의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의 성경입니다. 신약과 시편이 기록되어있었습니다.
제가 이 성경을 몸이 지니고 군에 갔습니다. 훈련소에서 이 성경을 훈련복 상의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훈련 도중 쉬는 시간에 짬짬이 읽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읽었고 또 저녁에 잠자기 전에 읽었습니다. 논산훈련소 4주간 신약과 시편을 1독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며 지난 이 훈련소 생활은 정말 힘든 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자대 배치된 뒤에도 계속 이 성경을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군 생활 내내 지니고 있었습니다. 읽고 또 읽었습니다. 몇 독을 했는지 잘 모를 정도입니다. 군 생활 내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평안하고 강건하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가질 때 힘든 이 인생길을 거뜬하게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매일 하루에 1장이라도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성경이 여러분의 손 때가 묻도록 하십시오. 그 손 때 묻은 성경이 여러분의 신앙을 지켜줄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일류신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시 1편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묵상이라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해 깊이 그리고 계속 생각하며 작은 소리로 읇조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을 깊이 그리고 계속 생각하면서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말씀이 내 마음 속에 스며듭니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일은 말씀을 머리로 알게 해 줍니다. 그러나 아직 그 말씀이 내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들지 못해서 그 말씀을 깊이 깨닫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말씀을 마음으로 알게 해 줍니다.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을 사랑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내 마음을 이끌고 지배하게 됩니다.
시 1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담긴 말씀이 염려나 근심을 물리쳐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담긴 말씀이 불안이나 두려움을 물리쳐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담긴 말씀이 우리를 평안하게 해 주고 늘 소망을 갖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담긴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엄청난 복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 내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마음속에 담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매일 하루에 적으면 세 번 보통은 다섯 번 정도 다시 반복해서 암송해 보십시오. 새벽에 묵상하면서 말씀을 마음에 담았다면, 아침 먹고 오전에 시간을 내서 다시 암송하십시오. 그리고 점심 먹고 또 오후에 시간을 내서 다시 암송하십시오. 그리고 저녁 먹고 늦은 시간에 다시 암송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에 다시 그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는 말씀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에 여러 차례 시간을 내서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지켜줍니다. 그 말씀을 우리 마음을 주님을 향하도록 해 줍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라는 이 시대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TV,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빼앗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생각과 마음에서 하나님을 품을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방해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묵상은 특히 오늘과 같은 현대에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묵상을 통해서 그 생각과 마음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을 일류신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눅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잡이를 했지만 헛수고를 했습니다. 조업을 마무리하고 그물을 정리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시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어부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물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미 여러 차례 그물을 내렸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귀히 여기고 지키려는 그 태도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후에도 베드로는 늘 말씀을 지키는 습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이해가 안 되도, 때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베드로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 반드시 지키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아이들 시험 답안지를 보면 엉뚱한 답을 쓴 녀석들이 참 많답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은?”이란 질문에 “죽었음”이라고 답을 한 녀석이 있답니다. “불행한 일이 겹쳐서 일어난 것을 네 글자로 써보시오. ‘설( )가( )’” 라는 질문에 “설사가또 ”라고 답을 한 녀석이 있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요?”라고 물었더니 답이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답을 했답니다. 어떤 아이는 시험 답안을 절반만 풀었답니다. 그래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답이 가관입니다. “1학년 학생 수준에 문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절반만 풀었습니다.”라고 답을 하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제 멋대로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제 멋대로 말씀을 판단해서 지키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말씀을 지키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우선 주님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설교말씀을 통하여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다음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믿어지면 일단 그 말씀을 순종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히 여기시고 소중하게 대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지키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 지 듣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여러분은 기왕 신자가 되려거든 일류신자가 되십시오. 일류신자는 말씀생활의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깊이 생각하며 읇조리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말씀을 지키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내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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