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는 습관을 기르자
히 10:25
얼마 전 TV에서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습니다. 정어리 떼의 습성을 다룬 프로그램입니다. 비행기에서 바다를 카메라로 잡았는데 바다가 검은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바다의 넓은 부분이 검은 색을 띠고 있을까 궁금해 할 때, 이번에는 카메라가 바다 속의 장면을 잡았습니다. 수백 만 마리의 정어리 떼가 새까맣게 모여 있는 것입니다.
해설하는 분이 정어리 떼가 모여 있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여 있으면 덩치가 커 보여서 웬만한 포식자들은 덤벼들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또 하나는 뭉쳐서 떼로 다니면 포식자는 도대체 어떤 녀석을 공격 목표로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랍니다. 한 마디로 정어리 떼의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정어리들은 본능적으로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어리는 하나 둘 씩 모여 무리를 이루고, 또 무리가 모여 큰 집단을 이루고, 또 집단이 모여 수십 수백만 마리의 거대한 단위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카메라가 돌고래 무리를 잡아 보여줍니다. 돌고래는 이 정어리 떼를 공격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돌고래들은 나름대로 정어리를 공격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바로 정어리 떼 한 복판으로 덤벼들어서 그 무리를 흩어놓는 것입니다.
흩어진 정어리들은 바로 다시 모여듭니다. 돌고래들은 또 다시 흩습니다. 정어리들은 또 다시 모입니다. 이런 흩고 모이는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일부 정어리들에 무리에서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이 때 기다렸다는 듯이 돌고래들은 그 낙오자들을 잡아먹습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영적인 싸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시절부터 성도들은 모이기에 힘써왔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모여 교제했습니다. 그 가운데 성령이 임하셨고 성도들은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탄은 이 모임을 흩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모이기를 폐하게 하고 이것을 하나의 습관이 되도록 해 왔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든 성도들이 하나씩 둘씩 모임에서 이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나갔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
오늘 본문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에 성도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초대교회 당시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 아직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이방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참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잘못된 습관 뒤에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방해하려고 하는 사탄의 몸부림이 있습니다. 사탄이 당시 유대인들이 지켜온 잘못된 습관을 부추겨서 성도들이 함께 모일 수 없게 했고, 이것이 먹혀들어서 초대교회 시절 큰 혼란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이런저런 이유로 성도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시험합니다. 핑계거리를 만들어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의외로 많은 성도들이 그 시험에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모이는 일을 게을리 하고 결국 모이지 않는 잘못된 습관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이런 일들이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이던 연합 모임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대규모 연합집회가 사라졌고, 그나마 지켜오던 부활절 연합예배도 그저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교회적으로도 4일씩 하던 부흥회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매주일 열심이던 철야기도회가 사라졌습니다. 저녁예배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개개 교인들도 점점 주일 하루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일 저녁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에 잘 참석하지 않습니다. 고작 주일 오전예배만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연휴가 되면 교회 나오기보다는 연휴를 즐기기 위해 성수주일을 어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많아지면서 어느새 교회출석을 중단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교회에 웃지 못 할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바로 ‘가나안 교인’입니다. ‘안 나가’를 거꾸로 읽으면 가나안이 되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서구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소속 없는 신앙’(believing without belonging) 또는 ‘교회 없는 크리스천’(unchurched Christian)이라 부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입니다. 대략 현재 우리나라에 이런 가나안 교인들이 무려 100만 명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한 통계조사를 보면 이 가나안 교인들은 초등학교부터 교회를 다녔다는 사람들이 46.7% 정도이고, 5-15년 정도 교회를 다녔다는 사람들이 43.2%이고, 교회를 다닐 때 나름대로 열심히 또는 어느 정도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90.3%나 되었습니다.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23.4%나 되었고, 30대 때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25%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교회를 안 나간 지 10년쯤 된 사람이 52.6%나 되었습니다.
교회를 떠난 이유도 가지각색입니다. 자신의 문제 때문에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42.2%였고, 자유로운 신앙생활이 좋아서 떠난 사람들이 30.3%였습니다. 목회자 때문에 떠난 사람이 24.3%이고 다른 교인들 때문에 떠난 사람도 19.1%나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사람도 53.3%나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주장합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과연 올바른 신앙일까요?
지난주에 논산훈련소 연무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군목목사님으로부터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당 앞에서 어떤 병사를 만났답니다. 명찰에 ‘김모세’라고 붙어있더랍니다. 당연히 교회 나오는 병사인 줄 알았더니 법당으로 들어가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그 병사와 이야기를 해보니 아버지가 교회 장로이고 어머니는 권사인데 자기는 절에 다니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청년부를 다니다가 상처를 받아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사귀는 자매가 절에 가보자고 해서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에 젖어들면 안 됩니다. 그 영혼이 구원에서 떨어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모이는 습관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반대로 모이는 습관을 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점점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말세가 깊어져 갈수록 더욱 모이는 습관을 키워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모이는 습관을 길러야 할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회로 모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특히 민 28장 이하에 보면 성회로 모이라고 강력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18절에 유월절 명령을 말씀하시면서 성회로 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절에 칠칠절 명령을 말씀하시면서 또 성회로 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째달 초하루에도 성회로 모이라 명하셨습니다. 대속죄일에도 성회로 모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장막절에도 일곱 째달 열다섯째 날에 성회로 모이라 명하셨습니다. 매 안식일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사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특권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되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회로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무라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열일 제쳐놓고 달려와 지켜야 하는 의무입니다.
군대에 가 보면 하루 두 차례 나팔이 울립니다. 아침 6시면 기상나팔이 울리고, 저녁 10시면 취침나팔이 울립니다. 기상나팔이 울리면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연병장으로 모입니다. 함께 모여 간단히 체조를 하고는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취침나팔이 울리면 모두 잠자리로 모입니다. 그리고 소등하고 하루 일과를 끝냅니다.
이것이 명령입니다. 병사들은 이 명령을 들으면 개별적 행동을 중단하고 모입니다. 그리고 함께 행동합니다. 이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명령을 철저히 지켜야 적과의 전투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 훈련된 군대는 병사들이 나팔소리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기상나팔 소리가 들리면 잠이 부족하더라도 자동적으로 기상하는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취침나팔 소리가 들리면 자고 싶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취침하는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흩어져 제각기 자기의 일을 하며 삽니다. 그러다 교회에서 나팔소리가 나면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거룩한 모임인 성회로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이 함께 교제합니다.
잘 훈련된 성도들은 성회로 모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주일에 되면 교회로 달려오고, 교회의 예배나 모임이 있으면 교회로 뛰어오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성회로 모이라고 하셨을까요? 물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우선 모이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성회로 모이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행 2장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 성회로 모여 있었습니다. 저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 때 저들이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됐습니다. 바로 성령 강림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저는 오랜 가뭄에 저수지가 바닥이 들어난 것을 본 일 있습니다.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마음이 산산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로 비가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단비였습니다. 저수지에 물이 고입니다. 논에 물이 가득 채워집니다. 논에 심겨진 벼들이 춤을 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농부들이 정말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예배 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립니다. 교인들 가운데 심령이 거북등처럼 갈라진 채로 성회로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 도중에 단비가 내리듯이 은혜의 단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예배를 인도합니다.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이 하늘로부터 내리는 풍성한 은혜를 받는 것을 꿈꾸며 예배를 준비하고 인도합니다.
다음으로 모이면 서로 힘을 얻습니다. 행 2:42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성회로 모인 성도들이 함께 말씀을 같은 들었다는 것입니다. 성회로 모인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고 떡을 나누어 먹었다는 것입니다. 성회로 모인 성도들이 함께 기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 가운데 성도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함께 성전에 모였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집으로까지 가서 함께 떡을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며 함께 있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게다가 자기 가진 것을 나누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서로 믿음을 격려하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갔습니다. 또한 서로 나누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갔습니다. 결국 이런 과정 속에서 함께 모이는 것이 믿음의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그 어떤 세력도 저들을 갈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인 중 한 사람이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교인이 하는 말은 꼭 교회 가지 않아도 자기는 어디서나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지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 목사님은 그 교인을 심방하기 위해 집을 방문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교회 출석문제는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 교인도 의도적으로 그 말을 꺼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 목사님은 뜨겁게 타오르는 난로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조개탄 하나를 부젓가락으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난로 모래 위에 던져놓았습니다. 얼마 안가서 그 조개탄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불이 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이 교인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잘 알았습니다. 다음 주에 꼭 교회에 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성회로 모이는 것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많은 조개탄이 함께 난로 속에서 불에 타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영적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성회로 모여 함께 할 때 성령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회에서 이탈되면 영적으로 식습니다. 영적인 역사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소멸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최근 한국교회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가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영적인 열기가 식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실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 가운데서 더욱 오늘 본문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이는 습관을 길러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주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였습니다. 눈이 오는 날도 있었고, 한파가 몰아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저 남쪽 분당에서 새벽마다 나오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저 북쪽 송추에서 새벽마다 나오셨습니다.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큰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더욱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모이는 습관을 더욱 키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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