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드러나신 예수님! (막6:14~16)
예수님은 그의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나사렛을 떠나신 예수님은 갈릴리의 모든 촌을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도 어느덧 절반 가량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니셔야 할 마을은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각 마을로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열두 제자를 두 사람씩 짝지어, 갈릴리의 모든 촌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며, 각종 병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부도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뢰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탐심을 버리고,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때로는 배척을 받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더욱 당당해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그들도 가르쳤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신 대로, 그들도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갈릴리 사람들의 견해가 세 가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둘째, 엘리야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셋째,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물론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아니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지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전혀 합당치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예수님의 권능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어떠한 결론은 내려야 마땅했습니까?
막1:1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했습니다. 또한 요20:28 말씀처럼,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사람으로만 생각할 뿐, 하나님으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믿음은 나의 선택이며, 나의 결단입니다. 막9:24에서 귀신 들린 한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아뢴 것처럼, “내가 믿나이다”라고 먼저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으십시오. 그런 후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예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나에게 더하여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내가 믿나이다”라는 신앙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졌습니다(14절 상반부).
막6: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마14: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여기에 두 가지 사실이 등장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그 결과 헤롯 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열두 제자를 갈릴리의 각 마을로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그들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신 대로, 그들도 권능을 행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홀로 사역을 하실 때보다, 그 효과는 열두 배나 더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역을 한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그 좋은 실례가 나옵니다.
행3:1~2입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오후 세 시입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그의 몸은 기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메고 왔습니다. 그는 날마다 “미문,” 곧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했습니다. 그 곳은 사람들의 종교심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에 적합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구걸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6절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했습니다.
그러자 7절과 8절을 보면,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에게 새로운 발과 새로운 다리가 창조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게 놀라면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12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자신들의 권능으로 그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못 박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16절에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밝혔습니다.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갈릴리의 각 마을로 파송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습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막9:28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주지 아니하시면,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막9:29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합시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계속해서 기도합시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풍성하신 역사하심을 늘 체험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놀라우신 권능을 날마다 경험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어서 헤롯 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여러 명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들도 여러 명 등장합니다.
마2:1을 보면, 처음으로 헤롯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는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왕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를 가리켜서,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또는 헤롯 1세(Herod I)라고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었습니다.
헤롯 대왕에게는 모두 열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자연히 그에게는 여러 명의 배다른 자녀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죽고 난 뒤에, 그가 다스리던 영토는 네 지역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는 각기 다른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졌습니다.
이 네 명을 가리켜서 분봉 왕(分封 王)이라고 부릅니다. 헤롯 대왕이 다스리던 영토를 네 지역으로 나누어서 다스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 왕은 바로 이들 분봉 왕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분봉 왕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 대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갈릴리와 요단 강 동편, 곧 베레아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를 가리켜서,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라고 불렀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갈릴리 해변에 수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그 곳을 디베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공동묘지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곳을 부정하게 여기고, 그 곳으로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도 디베랴를 지나가셨다는 기록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디베랴 이외에도, 마캐루스(Machaerus)라는 곳에서 자주 머물렀습니다. 마케루스는 베레아에 속한 곳으로, 사해의 북동쪽에 위치한 요새였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마캐루스에도 왕궁을 만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한 동안 갇혀 있었던 감옥도 바로 이 마캐루스에 있었습니다. 아무튼 갈릴리와 마캐루스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동안 예수님과 분봉 왕 헤롯은 서로 접촉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이 갈릴리의 온 지역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분봉 왕 헤롯이 다스리는 갈릴리는 온통 예수님의 소문으로 가득했습니다. 자연히 헤롯 왕의 측근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그에게 보고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헤롯 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14절하~15절).
갈릴리 사람들이나 헤롯 왕이나,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초점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권능을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헤롯 왕이 들은 예수님의 소문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그가 들은 소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막6:14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눅9: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우리말 성경은 헤롯 왕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마치 그가 입을 열어서 말한 것처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눅9:7 말씀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지금 헤롯 왕은 갈릴리 사람들이 말하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죽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되살아났다고 보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보았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세례 요한 사이에 비슷한 점이 더러 있긴 했습니다. 예컨대 서로 나이가 같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그 당시의 어떠한 종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죽은 세례 요한을 보고자 했던 주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그들은 예수님 속에서 일어나는 능력이 세례 요한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결론은 전혀 사리에 맞지를 않았습니다. 요10:41 말씀처럼, 세례 요한은 아무런 표적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능력 때문에,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연결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아울러 이 때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모두 다 권능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연결을 시키려면, 오히려 죽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에게 되살아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갈릴리 사람들의 첫 번째 견해는 완전히 불합리했습니다.
막6: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둘째,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왕 아합 때에 이스라엘의 타락을 신랄하게 꾸짖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왕상17:22 말씀을 보면, 그는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왕하2:11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그는 살아있는 채로 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다시금 이 세상으로 되돌아왔다고 보았습니다.
더군다나 말3:1과 4:5을 보면,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시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앞서서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 중의 더러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에 앞서 오도록 되어있는 선지자 엘리야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와 같이 가르쳤을 리는 만무합니다. 마11:13~14 말씀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엘리야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확증시켜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제자들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하는 권능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그들의 구주로 영접하지를 못했습니다.
막6:15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눅9:8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마16:14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셋째, 예수님을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눅9:8에 의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일례로 마16:14을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를 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선지자는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선지자 말라기 이래로, 이스라엘에는 근 사백 년 동안 아무런 선지자가 세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회개를 요구하셨습니다. 거역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게다가 예수님은 놀라운 권능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눅7:16 말씀처럼,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큰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은 예수님을 예레미야와 같은 옛 선지자 중의 하나처럼 크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직업과 예수님의 가족 관계를 거론하면서, 예수님을 비하하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예수님에게 우호적이기는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기는 그들 모두가 매일반이었습니다.
행여 나도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옛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여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모든 증거를 부정하며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예수님이 내 삶 속에 살아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셋째로, 헤롯 왕은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16절).
막6: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눅9: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헤롯 왕은 갈릴리 사람들 사이에 나도는 소문, 곧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결론짓기를, 자기가 목 벤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눅9:9 말씀이 밝히는 대로, 그는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
왜 헤롯 왕은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까? 그가 목 벤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을 그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시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눅13:31 말씀처럼, 그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을 뿐입니다.
헤롯 왕은 가룟 유다보다도 더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뒤에,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죽이더니, 이제는 예수님마저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헤롯 대왕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고자, 베들레헴의 사내아이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습니다. 분봉 왕 헤롯도 세례 요한을 죽이더니, 이제는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을 보면, 헤롯 왕은 자기가 원하던 대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눅23:6~7 말씀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이 소동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갈릴리는 분봉 왕 헤롯의 관할이었습니다. 때마침 유월절을 맞이해서, 헤롯 왕이 예루살렘에 와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자기의 책임을 회피할 셈으로, 예수님을 헤롯 왕에게 보냈습니다.
계속해서 8절 말씀입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난 뒤부터, 오랫동안 예수님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들은 소문대로, 예수님이 정말로 이적을 행하시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9절입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에게 여러 말로 물었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물론 헤롯 왕이 이와 같이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 사실은 10절 말씀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그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예수님을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말을 들으면서 헤롯 왕은 이와 같이 물었을 것입니다. “저 말이 사실이냐? 너를 고발하는 저 말에 너는 무엇이라 답변하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아니하시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헤롯 왕의 질문에도, 또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고발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11~12절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하면서, 예수님을 왕처럼 보이게 하려고 빛난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습니다. 이전에는 두 사람이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에 하나 되어,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전2:2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행4:12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예수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빌라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이십니까? 나에게 이것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절실한 질문은 없습니다. 나의 대답에 따라서, 나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답변에 따라서, 내가 천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지옥으로 가느냐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라는 증거를 충분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어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를 사함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합시다. “내가 믿나이다.” 그리해서 요3:16 말씀과 같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읍시다. 아울러 예수님의 역사하심과 예수님의 권능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풍성하게 체험하면서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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