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씨름
※ 성경 : 창세기 32장 22-32절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단순하게 그저 물질적으로 크게 부유하고 세상에서 명예 권세를 얻고 또는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 좋다는 것들을 다 얻으면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그것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첫째, 네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확신이 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나를 볼 때 매우 기뻐하신다는 확신이 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받는 대상으로 사랑을 주는 대상으로 나를 창조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은 내편이시다’ 라는 확신이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내편이시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실 세상에서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가진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고 ‘하나님은 내편이시다’라는 확신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도 해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안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 즉 내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상이고, 하나님이 내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까요? 이 확신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축복’은 내가 소유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에서가 먼저 나왔고 야곱이 다음에 나왔지만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들고 나왔으므로 시간차는 얼마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야곱이 되었는데 “발뒤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장자는 아버지의 재산 2/3를 받았고 또한 자손들을 축복하는 영적 권위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재산도, 영적 권위도 차남이라는 것 때문에 얻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삶을 보면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얼마 이 축복을 사모했는지 형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오는 길에 몹시 배고파하는 것을 보고 맛있게 팥죽을 끓여 장자권을 삽니다. 또 야곱은 에서의 영적권위를 받고 싶어서 어머니와 함께 형의 옷을 입고 염소의 털을 붙여서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별미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아들 야곱을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27~28) 야곱은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장자권의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한다면 야곱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기쁨,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부모님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소유로 하나님의 축복을 가늠하지는 않습니까? 소유에 만족하십니까?
둘째,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하란에 가서 20년 동안 살면서 많은 재산을 모아서 가족과 함께 고향 브엘세바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중에 자기 형 에서가 많은 군대를 데리고 야곱을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전 재산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보냄으로 형의 마음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우리 형을 만나거든 이 재물은 동생 야곱이 주는 겁니다’ 라고 꼭 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야곱의 모습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과 아버지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면서 영적인 권위를 몰래 빼앗은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야곱은 끝까지 자기의 힘과 의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야곱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나의 의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후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재산과 가족을 형에게 보내고 홀로 고민합니다. 이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서 씨름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야곱사이에 씨름이 시작되자마자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위골시켜버렸습니다. 야곱의 환도뼈는 야곱의 의지입니다. 더 이상 자기 의지로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가 깨어질 때 받게 됩니다.
내가 살겠다고 하는 의지가 깨어질 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열립니다. 야곱의 의지가 깨어질 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되는 브니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자권도 영적권위도 많은 재산도 야곱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바뀔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는 작심삼일(作心三日) 입니다. 그러므로 내 의지가 깨어지지 않고는 우리는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 마음을 철저하게 깨뜨려버립니다. 그리고 야곱은 깨어진 후에 그의 형과 화해하게 됩니다. 그는 형 앞에 무릎 끓고 절하면서 ‘형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20년 동안 쌓였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축복이 그 위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우리가 깨뜨려질 때 축복은 시작됩니다.
※ 성경 : 창세기 32장 22-32절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단순하게 그저 물질적으로 크게 부유하고 세상에서 명예 권세를 얻고 또는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 좋다는 것들을 다 얻으면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그것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첫째, 네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확신이 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나를 볼 때 매우 기뻐하신다는 확신이 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받는 대상으로 사랑을 주는 대상으로 나를 창조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은 내편이시다’ 라는 확신이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내편이시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실 세상에서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가진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고 ‘하나님은 내편이시다’라는 확신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도 해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안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 즉 내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상이고, 하나님이 내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까요? 이 확신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축복’은 내가 소유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에서가 먼저 나왔고 야곱이 다음에 나왔지만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들고 나왔으므로 시간차는 얼마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야곱이 되었는데 “발뒤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장자는 아버지의 재산 2/3를 받았고 또한 자손들을 축복하는 영적 권위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재산도, 영적 권위도 차남이라는 것 때문에 얻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삶을 보면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 얼마 이 축복을 사모했는지 형 에서가 사냥하고 돌아오는 길에 몹시 배고파하는 것을 보고 맛있게 팥죽을 끓여 장자권을 삽니다. 또 야곱은 에서의 영적권위를 받고 싶어서 어머니와 함께 형의 옷을 입고 염소의 털을 붙여서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별미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아들 야곱을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27~28) 야곱은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장자권의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한다면 야곱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기쁨,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부모님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소유로 하나님의 축복을 가늠하지는 않습니까? 소유에 만족하십니까?
둘째,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하란에 가서 20년 동안 살면서 많은 재산을 모아서 가족과 함께 고향 브엘세바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중에 자기 형 에서가 많은 군대를 데리고 야곱을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전 재산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보냄으로 형의 마음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우리 형을 만나거든 이 재물은 동생 야곱이 주는 겁니다’ 라고 꼭 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야곱의 모습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과 아버지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면서 영적인 권위를 몰래 빼앗은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야곱은 끝까지 자기의 힘과 의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야곱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나의 의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후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재산과 가족을 형에게 보내고 홀로 고민합니다. 이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서 씨름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야곱사이에 씨름이 시작되자마자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위골시켜버렸습니다. 야곱의 환도뼈는 야곱의 의지입니다. 더 이상 자기 의지로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가 깨어질 때 받게 됩니다.
내가 살겠다고 하는 의지가 깨어질 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열립니다. 야곱의 의지가 깨어질 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되는 브니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자권도 영적권위도 많은 재산도 야곱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바뀔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는 작심삼일(作心三日) 입니다. 그러므로 내 의지가 깨어지지 않고는 우리는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 마음을 철저하게 깨뜨려버립니다. 그리고 야곱은 깨어진 후에 그의 형과 화해하게 됩니다. 그는 형 앞에 무릎 끓고 절하면서 ‘형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20년 동안 쌓였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축복이 그 위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우리가 깨뜨려질 때 축복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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