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주일(막10:13-16) 2011.5.1(일)
자녀, 하나님의 꿈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옛날 로마시대에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코르넬리아라고 합니다. 한번은 그 집에 서너 명의 귀부인들이 놀러와서 차를 마시며 자기들의 보석을 자랑했습니다. “이 목걸이는 다이아인데 어떻습니까?" “이 사파이어 반지는 어때요? 이 금팔찌는요?" 코르넬리아 부인은 그들의 자랑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중 한 부인이 “부인, 부인도 좋은 보석이 있으면 우리에게도 보여주시고 자랑도 하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코르넬리아 부인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양 팔에 무엇을 안고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쌍둥이 아들이었습니다. 귀부인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아이들이잖아요? 보석은 어디 있어요?" 그러자 코르넬리아 부인이 말했습니다. “나의 보석은 이 두 아들입니다." 이 아들들이 자라서 흣날 로마의 큰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로마 건국의 기초를 놓은 그라쿠스 형제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최고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자녀입니다.
자녀에 대한 관한 정의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녀는 보석함이다” 하는 것입니다. 보석함에는 온갖 좋은 보석이 담겨 있습니다. 보석함 자체는 혹시 보잘 것 없을 수 있습니다. 낡고 투박한 그릇일 수 있습니다. 평범한 항아리일 수 있습니다. 땅에 감춰져 흙에 묻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보석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가 윈스턴 처칠의 어릴 때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키도 작고 땅달만해 그리 잘 생긴 소년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소년이 장차 2차 대전에서 영국을 구할 수상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석은 그 안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보셨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가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팔려 눈물을 흘리며 애굽으로 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노예로 죄수로 고생했습니다. 이 소년이 애굽을 살리고 이스라엘을 살린 총리 요셉입니다. 팔려가는 작은 소년속에 위대한 요셉의 보석이 반짝거리고 있는 것이 보이나요? 베들레헴에서 양치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막내였습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아버지 심부름하는 일, 형들을 대신하여 늦게까지 양을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다윗속에 앞으로 골리앗을 쓰러 뜨리고 이스라엘을 구할 위대한 왕의 보석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속에도 이 위대한 보석들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가장 큰 보석이라는 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어떻게 우리 자녀를 보석처럼 키우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자녀가 우리의 희망이 되고 이 나라의 소망이 되고 하나님이 꿈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할 수 있는 존재로 키워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아이들이 예수님께 달려 왔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바쁘게 사시고 그 날도 갈 길이 바쁜 데 아이들이 예수님 길을 막고 서자 제자들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제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14절입니다. 막10: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이 얼마나 급하셨으면 노하기 까지 하셨습니까? 옛날 성경에는 예수께서 “분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이 분까지 내셨다면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어린이는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용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용납입니다. 격려입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격려받고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고치려고 하면 안고쳐지고 바꾸려고 하면 안 바꿔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한다고 하면 잘하고 못한다면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피그말리온 효과” 라고 합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기대를 가진대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 시원찮아” 하면 그는 계속 나에게 시원찮은 존재가 됩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해” 하면 이상하게 그는 나에게 좋은 존재가 됩니다. 좋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좋다고 기대했기 때문에 좋아진 것입니다. 기대한대로 됩니다.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도 있습니다. 환자가 급하게 약을 찾습니다. 그런데 마침 찾는 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다른 약을 주면서 말합니다. “이 약을 먹으면 반드시 나을 것입니다”. 며칠 있다 보니 환자가 나았습니다. 약 때문에 나은 것이 아니라 의사의 말 때문에 나았습니다. 이것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약이나 주면 안됩니다. 문제는 신뢰입니다. 최고의 약은 신뢰입니다. 믿어주는 약이야 말로 가장 잘 듣는 약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지금 마음대로 꿈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속에 삽니다. 온갖 고생과 수고를 해야 겨우 대학가고 직장잡고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은 교육부 장관이 우리 나라에도 노벨상 받는 사람이 많아지기 위해 노벨상 프로젝트를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우리 나라에 노벨상 받을만한 천재 세 명만 보내주옵소서”. 그랬더니 하나님이 세 명을 보냈는 데 아인슈타인, 에디슨, 퀴리 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이들이 진전이 없고 노벨상은 그만두고 점점 평범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교육부 장관이 그들을 만났습니다. 먼저 아인슈타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인쉬타인은 대학에도 못 들어가고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인슈타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수학을 잘하고 수학만 하면 신이 나는 데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대학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만두고 아르바이트한다”고 하더랍니다. 다음 에디슨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에디슨은 본래 대학을 안나왔으니까 잘 되었겠지” 했는 데 골방에 들어가서 육법전서를 읽고 있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에디슨이 발명은 많이 했는데 특허를 얻기가 어려워 특허 관계법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퀴리 부인을 만났습니다. 역시 놀고 있었습니다. 왜 놀고 있냐고 물었더니 “여자라고 교육도 안 시켜주고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도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놀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려웠지만 우리 자녀들은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납이 필요합니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막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왜 아이들은 예수님께 나왔을까요? 만져주기를 바래서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만져주는 장면이 떠오릅니까? 예수님이 부드러운 손과 사랑으로 어린아이를 안아 주었을 때 그들은 사랑받는 기쁨으로 “나도 할 수 있다. 나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야. 예수님이 함께 하시니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존파를 아십니까? 살인공장을 차리고 사람을 죽인 그들도 처음부터 나쁜 아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지존파의 두목이 사형 선고를 받고 죽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회고했습니다. 자기가 17년 전, 초등학교 다닐 때에 학교 선생님한테 한번은 미술 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호되게 꾸지람을 받았답니다. 그 당시 그는 너무 가난해서 크레파스 살 돈도 없었는 데 그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은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며 화를 내고 때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을 했는 데 이 말이 그를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준비물을 못 가져오면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할 것 아니야?”. 선생님의 이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나쁘게 바꿔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사람을 죽이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습니다. 받아주지 않고 용납해주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이 달라진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레이건 이야기입니다. 레이건은 일리노이주 시골 마을에서 구두 수선을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 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 몽고메리워드 백화점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떨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어깨가 축 쳐져 돌아옵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안됐구나”하고 생각하며 아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로널드야. 너무 낙심하지 마라. 오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 하나님은 나쁜 일을 통해서 선한 일을 만들어 낸단다”.
이 말이 어린 레이건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때부터 레이건은 낙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리노이에서 직장을 구하다 실패하고 아이오와 주까지 가서 구인광고를 보게 되었는 데 방송국에서 라디오 아나운서를 구한다는 광고였습니다. 레이건은 합격했고 6개월 후 지역 대표로 할리우드에서 개최된 회의에 참석했는 데 거기서 영화배우의 길이 열렸습니다. 레이건의 일을 회고하면 그때 백화점에 취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나운서가 되고 영화배우가 된 것입니다. 그 어머니 말이 맞습니다. “오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에게 그렇게 말해 줍니까? “오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 그리고 말합니까? “너는 할 수 있어. 네 속에는 온갖 보석이 있어. 나는 너를 믿는다”.
자녀를 용납하는 방법중에 안아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느 병원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쌍둥이중의 하나가 아파 인큐베이터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를 본 간호사가 쌍둥이 형제를 인큐베이터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것 서로 인사나 하고 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쌍둥이가 인큐베이터안에 들어가자마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한 쌍둥이가 아픈 쌍둥이를 향하여 팔을 뻗더니 그를 껴안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한참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자 아픈 아이의 심장과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돌고 온 몸이 활기가 돋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인큐베이터”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인큐베이터가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랑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안아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안아 줘야 합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가는 아이들, 안아줘야 합니다. 그러면 공부도 잘 합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 힘내라고 안아 주어야 합니다. 저녁에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남편, 안아줘야 합니다. 하루 종일 집안일 하느라 피곤한 아내, 안아줘야 합니다. 부부가 자주 안아주면 수명이 최대 5년이상 연장된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 우리의 부모님, 안아줘야 합니다. 교회안에 한 주일만에 만난 성도들, 서로 안아줘야 합니다. 안아주면 살아납니다.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음을 얻었습니다. 접촉의 기적입니다. 다시 예수님을 보십시오. 16절, 막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자녀를 안아주고 용납해서 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워야 합니다.
축복받는 존재로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또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16절 보십시오. 막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해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좋은 말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말을 넘어 섭니다. 유대인들은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축복 받기를 소원합니다. 매주 금요일 밤, 안식일 저녁이 되면 식사 전에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이 아들이 요셉의 아들들 같고 아론의 후손들 같게 하옵소서”. 그리고 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이들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같고, 리브가같고, 라헬, 레아같이 되게 하옵소서”.
유대인들은 그 부모가 자녀를 위해 축복하면 그대로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야곱과 이삭의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이삭은 때가 되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별미를 준비하게 했습니다. 들사람 에서는 직접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고 집사람 야곱은 어머니가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축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야곱은 축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속였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축복받기 위해 자기가 에서인 것처럼 온 몸을 털을 붙였습니다. 그날 야곱의 태도는 축복은 커녕 저주도 할 말이 없는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잘못된 야곱의 태도를 성경 어디에서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야곱은 그 후에 더 많은 복을 받고 에서는 더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복을 받은 야곱이 옳았다는 것입니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열망의 문제입니다. 야곱은 잘못했지만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잘못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창25:34절입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며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옳고 그름의 차이란 하나님앞에서는 백지장 한 장 차이입니다. 하나님에서는 에서나 야곱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에서가 아무리 정직해서 야곱이 아무리 악해도 하나님앞에서는 그게 그것입니다. 문제는 열망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착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열망이 있는 사람이 선교도 하고 열망이 있는 사람이 교회도 부흥시킵니다. 정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자녀를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자로 키워야 합니다. 아무리 착해도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로 키우면 에서처럼 됩니다. 애굽에서 요셉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 있습니다. 두 아들을 위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에서 죽음을 기다라고 있을 때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창48:9절입니다.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당시 세계 최강의 애굽 총리 요셉이 무엇이 더 필요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원했겠습니까? 먹는 음식입니까? 입는 옷입니까? 돈입니까? 집입니까? 그런 것은 요셉이 이미 가졌습니다. 요셉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애굽 총리로서 없는 것이 없는 요셉이 그 아들들에게 무엇을 못줘서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겠습니까? 야곱과 요셉이 사모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최고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사모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가장 큰 복입니다. 이것을 자녀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목회자의 안수를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 시골에 갔다 돌아갈 때는 항상 어머니가 말씀했습니다. “애, 너 목사님 기도받고 가라”. 시골 교회 목회자는 대부분 전도사님이었습니다. 신학공부도 제대로 못한 분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항상 시골에 내려가면 “너 전도사님께 인사했냐?” 그래 집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교회에 들려 전도사님께 인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선물은 준비 못해도 전도사님, 목사님 선물은 반드시 준비해야 했습니다. 맛있는 것 있으면 목사님 먼저, 첫 곡식, 첫 열매 나오면 교회 전도사님, 생일되면 “목사님 모시고 와라“. 어릴 때는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배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유학떠나기 전에는 이중표 목사님께 안수받았습니다. 무릎을 꿇었더니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기도가 지금 새롭습니다. “주님, 이 종이 유학을 떠납니다. 유학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 만나고 돌아오게 하옵소서”. 2005년, 5월, 양수리 수양관에서 저에게 한신교회 목회를 부탁하면서 안수하셨습니다. “주님, 이 종에게 기름 부으사 종이 못한 별세의 목회 이어가게 하옵소서”. 그때 목사님이 손이 떨렸습니다. 한신교회 부임 후 조용기 목사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더니 안수하셨습니다. “주님, 앞으로 한신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 한국교회를 인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지금 그때 받은 축복받은대로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다만 공부잘 하는 아이로 키우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받는 아이로 키웁니까? 다시 16절 보십시오. 막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해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가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받는 방법은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가정예배는 세 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축복입니다. 둘째 부모가 신앙으로 바로 서고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축복입니다. 셋째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가 잘 자라는 축복입니다. 예배할 때 아빠가 자녀 머리에 손을 얹고 엄마는 자녀의 손을 붙잡으세요. 생각해 보세요. 어릴 때 머리에 올린 아버지의 손과 옆에서 붙잡아 주는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는 자녀가 자라서 어떻게 잘못되겠습니까? 가정 예배를 드립시다. 오늘부터 드립시다. 자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자라게 해야 합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남을 위한 존재로 키워야 합니다
아이들을 받아주고 안아주고 축복해주신 예수님이 아이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말씀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아이들을 안아주고 만져주고 축복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착하게 자라라”. “공부 잘해라”. 아닙니다. 아마 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 살아라”.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많은 사람을 위해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남을 위한 일생이었습니다.
최근에 강영우 박사가 또 한 권의 책을 썻습니다. “원동력”이란 책입니다. 이 책에서 강영우박사는 두 아들, 진석이와 진영이를 어떻게 키웠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주는 교육입니다. 그래서 한 것이 자기의 생일과 같은 날 태어난 세계적인 인물을 조사해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진석이는 생일이 4월 23일인데 같은 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진석이에게 “네 생일이 셰익스피어와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너를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인으로 쓰시기 위해 같은 날 태어나게 하셨다”. 말해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동생이 샘이 나 자기 생일인 6월 15일에 누가 태어났나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찾아보았더니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 너는 왕같은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 했답니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해서 자기 부부도 찾아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강영우 박사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날, 그 아내는 케네디 대통령과 같은 날 태어났답니다. 이를 통해 강영우 박사 가족은 “우리 모두는 이 땅에 귀하게 태어났다. 우리는 귀한 존재다“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찾아 보십시오. 제가 찾아보니까 제 생일에 나폴레온이 태어났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세상을 정복한 나폴레온, 저는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자존감,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살도록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진석이는 아버지 눈을 뜨게 해주겠다고 의대에 가고, 진영이는 약한 사람을 돕겠다고 법대에 갔다는 것입니다. 둘이 들어간 학교가 미국 최고의 명문 사학 필립스 아카데미란 고등학교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학교의 교훈이 "Not for self"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이란 뜻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남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 학교의 연간 수업일이 150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220일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습니다. 공부도 아침 8시에 시작되면 오후 2시15분에 끝납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대통령, 국무장관, 공직자, 가장 많은 부자가 나왔습니다. 미국 저명인사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이 학교 출신입니다. "Not for self"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 말라“. 이 믿음이 인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공부가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과 가치관이 인물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으로 자녀를 키우겠습니까? 세상적 가치관으로 자녀를 키우겠습니까? 세상적 가치관으로 키우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예수님의 가치관으로 만들어집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키우면 자녀를 성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치관으로 키워야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적 가치관은 “Only for myself”, “오직 나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은 only for others",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Jesus first, 예수님 먼저, Others second, 다른 사람 두 번째, You last, 나 마지막의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자기를 위해선 땀을 흘려라. 이웃을 위해선 눈물을 흘려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선 피를 흘려라“. 이런 사람이 인물입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이 묻혀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이 질문을 받고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대한 유전을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답은 무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덤에는 자신의 가능성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죽은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보석함인지 모르고 하루 하루 살다가 그 찬란한 보석함을 무덤속에 묻은 사람들이 누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덤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오면 그 위대한 자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오면 그 위대한 보물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로 가면 인물이 되고 하나님께 쓰임받게 됩니다. 다시 13절을 보십시오. 막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여러분의 자녀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까? 그 분이 만지면 그 자녀가 위대하게 될 줄을 믿습니까? 자녀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주일(막10:13-16) 2011.5.1(일)
자녀, 하나님의 꿈
할 수 있는 존재로 키워야 합니다.
막10: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막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막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축복받는 존재로 키워야 합니다
막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해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창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며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48:9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막10:16,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해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남을 위한 존재로 키워야 합니다
강영우 박사, “원동력”(책)
필립스 아카데미의 교훈, "Not for self"(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막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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