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 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통계에 의하면 서양에서 사람이 세상 떠날 때 가장 많이 읽어준 성경이 시편 23편이라 합니다. 성경의 어느 말씀이 능력이 없겠습니까마는 시23편은 아주 신비한 능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고통 중에 있을 때도, 고독한 가운데 있을 때도, 외롭고 적막할 때도, 심지어 인생의 마지막 떠나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이 말씀을 읽어주고 들려주면 영혼의 평안이 생기고 고통 가운데서도 천국을 내다볼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생기는 겁니다.
[Houston 제일연합감리교회를 섬기셨던 Charles Allen(찰스 알렌)목사님께서 쓰신 ‘God's Psychiatry’(하나님의 마음 치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사업을 시작해서 큰 회사로 성장시킨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장은 성공의 가도를 달려와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한 가지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긴장에 쌓여있었고, 염려와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던 중 목사를 좀 만나보라는 권고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Allen 목사님은 이 사람에게 처방을 써주었습니다. 그 처방이란 바로 앞으로 1주일 동안 하루에 다섯 번 시편 23편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깊이 있게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번,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식사 후에 그리고 잠자리에서 들면서 한번 시편 23편을 정성스럽게 읽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한꺼번에 몰아서 다섯 번 읽는다든지, 혹은 2,3일 해보고 이제는 잘 아니까 적당히 외워서 넘어간다든지 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간 맞추어서 약을 먹듯이 꼭 처방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런 처방을 하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처방대로 하다가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사업가는 얼마가지 않아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며 제네바 대학 교수였던 폴 투니어 박사는 훌륭한 상담자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가 다양한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기술 중의 하나는 시23편 말씀을 암송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시23편을 반복하며 암송하고 묵상하다 보면 그처럼 심각했던 정신적인 질환들이 놀랍게 치료되더라는 보고입니다. 시23편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시23편을 가리켜서 시편의 나이팅게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23편은 병실의 환자, 외롭고 고독한 사람, 실패한 사람, 염려하는 영혼, 역경과 좌절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회복케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마음에 평화가 임하고 여유가 생기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이 놀라운 축복을 자주 체험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내가 누구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나와 함께 하는 그 분이 누구냐를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돌보시고 나를 지키시는 목자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 크게 3가지로 말합니다.
① 왕과 백성-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
② 아버지와 자녀- 하나님은 아버지 우리는 그의 자녀,
③ 목자와 양- 하나님은 목자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오늘 아침에는 목자로서의 하나님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목자와 양, 여러분은 이 표현이 와 닿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나 특별히 다윗은 들판에서 목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양 떼를 잘 지키고 먹이고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다윗 자신을 그렇게 섬세하게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때로는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절묘하게 돌보아 주셨음을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 다윗은 오늘 시편 23편에서 자그마치 “나” 라는 말을 열일곱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신앙고백은 잘 모르겠지만, 다윗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분명히 나의 목자이시다는 겁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심을 믿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시23편의 문장은 완벽한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 한 때 도와주셨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과거에만 함께했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 나의 모든 사람의 여정에서 여전히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돌보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오늘 나의 목자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목자로서 어떤 일을 해 주실까요?
1. 목자로서 풍성하게 공급하신다.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어떤 목사님이 어느 교회 헌신예배 설교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사무직원이 전화를 한 겁니다. 목사님! 설교 본문과 제목을 가르쳐주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전화로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라고 하니까 사무직원이 그 제목이 이상하게 들렸는지 묻습니다. 목사님, 그것이 설교제목의 전부입니까? 목사님이 맞는다고 그게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이 다시 반문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제목의 전부입니까? 다시 물으니까 목사님께서 짜증이 나셨는지, 소리를 높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면 다 됐지, 뭐가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이때, 전화로 설교제목을 듣던 그 자매가 아주 큰 감동을 받은 겁니다. 그래 맞아,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목자시라면 다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할렐루야!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라면 그것으로서 전부이지 뭣이 더 필요하겠는가?
오늘 이 아침 여러분도 그런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풍성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공급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굶기거나 배고프게 하지 않습니다. 오늘 2절 말씀보세요. 푸른 풀밭과 시원한 냇가로 수시로 인도하면서 풍성하게 공급해주는 것이 목자가 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양들은 배불리 먹지 않으면 눕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계속해서 공급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필요를 넉넉히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공급자이십니다. 아멘.
예수님은 자신의 입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풍성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풍성한 능력을 주십니다. 넘치는 사랑을 주십니다. 은혜가 충만하게 하십니다. 모든 좋은 것을 오늘도 아낌없이 저와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나의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빈핍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색하신 하나님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넉넉하신 하나님, 능력이 넘치시는 하나님,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우리에게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을 저는 믿습니다.
인도하시면 책임지시는 하나님, 후히 넘치도록 채워 안겨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 나와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으면 겨우 구원 받을까? 천국에 간들간들 들어갈까? 그렇게 우리를 빈약하게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 이름 믿고 한 번만 불러도 넉넉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풍성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만 풍성하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의 필요도 풍성하게 공급하십니다. 목자는 양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압니다. 딱 보면 다 압니다. 목자는 자세히 압니다. 내 이름을 알고 내 성품을 알고 내 필요를 압니다. 내 체질까지 아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행보를 아시기에 넉넉하게 풍성하게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을 체험하고 이런 감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넉넉히 채우시리라(빌4:19) 이렇게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목자로서 안전하게 보호하신다.(4절)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양에게는 목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안전한 보호와 인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양의 특성은 한 마디로 약하다는 겁니다. 쉽게 병들고 잘 넘어집니다. 또 양은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향감각이 없습니다. 양 떼를 그려놓은 그림을 보시면, 양들은 꼭 자기 친구 뒤꽁무니를 머리에 맞대고 따라다닙니다. 왜 그러냐면, 시력이 좋지 않아 놓치면 길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렁에 빠지던지 가시덤불에 걸리든지 때로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양은 자구책이 없는 동물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 인간을 이 양으로 비유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약합니다. 쉽게 치집니다. 쉽게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자주 침체됩니다. 자주 넘어지고 슬럼프에 빠집니다. 디프레스(낙담시키다. 우울하게하다)됩니다. 의욕을 상실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목자이신 주님은 지친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목자를 따라 먼 길을 가다보면 지치지 않겠습니까? 양처럼 연약하고 힘을 잃을 때마다 목자는 지친 영혼을 소생 시켜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아침도 예배를 통해 새 힘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다시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힘들어하고 아파할 때, 낙심할 때, 좌절하고 괴로워할 때, 여러 가지로 고통스러워할 때 날마다 우리에게 활력을 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소생시켜주시는 그 하나님을 체험하며 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또 뭐라고 하십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와 같은 슬럼프에 빠진다 할지라도 거뜬히 통과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영적인 슬럼프의 골자기, 아니면 여러 가지 실의와 좌절과 낙심과 자기 한계에 부딪혀서 절망의 골자기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때마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 계곡에 빠진 양을 잡아서 어께에 메고 올라오듯이 저와 여러분에게 날마다 새 힘을 불어 넣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골자기를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 얼마나 우리 하나님이 멋지신 분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뭐라 하셨습니까? 나는 선한 목자다. 예수님은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드리는 참 목자, 선한 목자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맹수들의 공격이나 침범을 막기 위해서 목자는 때때로 자기 몸을 방패막이로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납니까? 나는 양의 문이로다.(요10:7) 무슨 의미일까요? 중동은 양을 데리고 다니는데 저녁에는 춥고 또 맹수들의 위협이 많습니다. 하이에나, 늑대, 이리, 삵괭이 같은 것들이 양을 항상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을 보호하기 위해 돌담을 사방으로 쌓습니다. 그리고 양이 출입을 해야 하니까 입구를 만듭니다. 그리고 밤에 양 떼를 다 거기에 넣고 출입구에 목자가 누어서 자는 겁니다. 목자는 자기 몸으로 문을 삼습니다. 목자가 문 앞에 누워 자니까 어떤 맹수들이 양을 잡아먹으려면 그 출입구로 들어가야 하는데 목자가 문을 몸으로 막고 있는 겁니다. 바로 그 표현입니다. 내가 양의 문이로다. 나는 몸으로 막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뭐라고 합니까?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안전하게 돌보아 주신다고 합니다. 여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돌보신다는 의미가 또 뭘까요? 목자가 어느 날, 양들을 그 우리 안에 다 넣고 그 문 앞에 누워 자는데 그만 곯아 떨어져서 자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맹수들이 그 목자의 몸을 뛰어 넘어 우리 안에 들어가 양을 잡아먹었다고 다고 해 보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망신입니까? 야, 저 목자는 저렇게 책임감 없이 밤새도록 자빠져 자니라고 자기 양들을 다 잡아 먹는 것도 모르고 잠만 잤대, 그러면 얼마나 망신입니까? 바로 다윗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 명예를 위해서라도 자기 이름을 위해서라도 신약적 표현으로 말하면 주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돌보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모세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영광을 위해 진노를 내리지 말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출32:11-14 "모세가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도 사업도 성공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스려 주시고 지켜주심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을 체험한 다윗은 이런 뱃장이 생긴 겁니다. 그의 노래를 한 번 들어 보세요.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16:8) 안전한 보호자, 하나님은 나의 안전한 보호자 이십니다. 은혜의 방패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요동치 않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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