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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하5:4-10 * 한계 극복

삼하5:4-10  한계 극복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집 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가 집에서 자랐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이란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말단 수비 장교로 변방 오지를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완전한 직속상관과의 불화로 수차례 파면을 당했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국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47세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23번 싸워 23번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하지 마라, 나는 임금의 끊임없는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12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왜적을 이겨냈다. 옳지 못한 방법을 쓰면서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20살에 적의 칼날에 아들을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전쟁터로 나갔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처럼 역사의 뛰어난 위인들이나 훌륭한 신앙인들은 자신의 불가항력적 한계를 뛰어 넘는 사람들입니다. 몽골제국의 영웅 칭기즈칸(ChingizKhan) 역시 자신이 당했던 가혹한 시련과 불가항력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마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는 10만명 백성이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도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것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 해야겠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도 살아나기도 했다.”

 

이렇듯 역사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모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입니다. 환경의 한계, 배경의 한계, 학벌의 한계, 건강의 한계, 재력의 한계, 재능의 한계, 실패와 시련의 한계, 상처의 한계, 그야말로 불가항력적인 한계를 뛰어넘었던 영웅들입니다. 우리의 영웅 다윗이 드디어 이스라엘 통일 왕국 시대를 펼치면서 예루살렘을 나라의 수도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한 복판에는 목구멍에 가시와 같은 가나안의 원주민 여부스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천혜의 요새인 시온산성에 떡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은 얼마나 난공불락의 요새인지 1000년 전 여호수아도 몰아내지 못해 1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들은 예루살렘 한 복판에서 자리 잡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 왕이 된 다윗에게 호언장담합니다. 6절 보세요.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5:6) 쉽게 풀어보자면, 다윗아, 너는 절대로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우리를 몰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네가 올라온다면 시온산성에 머물고 있는 우리 여부스 사람들 중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과 장애자들만을 통해서도 너희를 거뜬히 이길 수 있다. 그러니 올라올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교만을 떱니다.

 

여러분,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7절이 말해 줍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삼하5:7) 다윗은 단번에 그 시온산성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에게 주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난공불락의 성을 단 번에 점령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불가항력적인 한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본문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이아침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우리는 먼저 고정관념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팔, 다리 사지가 없이도 승리의 삶을 산 희망의 전도사 닉 부이치치(Nick Vujicic)가 말했습니다. “내 인생은 한계가 없다.(Life without Limits) 우리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한계를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계에 부딪힐 때 실패하는 사람은 구실을 찾아내고 구차한 변명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핑계를 대거나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언제나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냅니다.

지금까지 시온산성을 정복하는데 모두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무려 1000년 이란 긴 세월동안 어느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난공불락의 도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훈련된 군인이라 해도 성벽을 타고 올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생각이 달랐습니다. 다윗은 고정 관념을 바꾸었습니다. 외부로 못 올라가면 안으로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시온산성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그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수도가 있다. 그곳을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8절을 자세히 보세요.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삼하5:8) 다윗은 고정관념을 바꾸었습니다. 사고의 전환을 한 것입니다. 밖으로 가지 않고 수로를 타고 안으로 올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부스 사람들의 허를 찌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다보면 얼마든지 우리에게 길이 있다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지금까지 해 보았지만 안 되더라, 여러 방법 다 해보았다. 등 익숙해진 고정관념의 한계에서 벗어나야만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어느 조미료 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하루 조미료의 매출이 떨어지자 사내에서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우수한 사원들이 모여서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시험해 보았지만, 한 번 꺾인 매출은 전혀 상승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한 여자 직원이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조미료 통의 구멍 크기를 두 배로 하면 어떨까요?" 그 아이디어는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고 그 결과 매출이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오피스 빌딩의 주인이라면,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려서 불편하다'고 입주자들이 클레임(claim)을 제기할 때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① 엘리베이터를 새롭게 추가한다. ② 좀 더 큰 엘리베이터로 바꾼다. ③ 다른 업종의 사업자를 입주시켜서 영업 시작 시간과 마감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게 한다. 여러 가지 대응방법이 있겠지만, 위의 세 가지 방법은 모두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시카고의 한 오피스 빌딩 주인이 바로 이와 똑 같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려 터져서 업무에 지장이 많아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장 건물에서 나가겠어요." 그런데, 그 불평은 다음 날 바로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각 층마다 엘리베이터 옆 벽면에 큰 거울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늘려야 하나?' 라는 쪽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짜증나는 것을 해소할 방법이 없을까?' 쪽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체념과 포기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지난 1000년 동안 이스라엘이 시온산성을 점령하지 못했던 것은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단순히 난공불락의 도성이라는 이유가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체념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렸습니다. 아이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중앙으로 진격했습니다. 북부 도시부터 다 정복했습니다. 남쪽도 다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한 복판에 있는 시온산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포기하고 체념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1000년이 지나간 것입니다. 포기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여부스 사람들은 한계에 도전하는 다윗으로 하여금 체념하도록 합니다. 다윗아 네가 아무리 그 동안 전쟁터에서 싸움을 잘하고 승리를 많이 했지만, 이 성은 안 돼, 못해, 1000년 동안 누구도 못했던 거야, 여호수아도 못했고 갈렙도 못했고 사무엘도 못했고 사울도 못했고 다 못했던 거야 그러니 너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체념하고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겼습니다. 다윗 왕의 훌륭한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은 정신입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포기할 때 비로소 실패는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아름답고 멋진 시 두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요.

                                클린턴 하웰

 

때때로 그렇듯

일이 잘못 될 때

앞에 언덕길만 계속되는 것 같을 때

주머니 사정이 나쁘고 빚이 불어날 때

웃고 싶지만 한 숨만 나올 때

근심이 마음을 짓누를 때

쉬어야겠다면 쉬세요.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아요.

때때로 그렇듯

인생이 풍파로 얼룩질 때

실패에 실패만 이어질 때

잘하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을 때

걸음을 늦추더라도 포기하지는 말아요.

한 번만 더 해보면

성공할지 모르니까요......

 

위대한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어떤 절망적인 상황, 사면초가의 상황,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설상가상의 악화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차이가 결국 그들을 평범에서 비범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편의 시입니다.

 

포기하지 마라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 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 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폐허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돌무더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거기에 풀과 나무 그리고 벌레와 짐승이 있고 다시 물이 고이고 거기에 다시 생수의 강이 흐를 수 있다는 한 시인의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마라의 쓴물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거기서도 우리가 체념하지 아니하고 거기서도 절망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우리 인생에는 엘림의 오아시스가, 엘림의 생수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믿습니다. 힘든 광야 길을 걸어가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60번이나 반복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바다(강) 저편으로 건너가자”(막4:35) 강 저편으로 가자, 저 너머로 가자, 저 지역으로 가자, 저 유대지역도 가자, 사마리아 지역도 가자, 두로 지역도 가자, 시돈 지역도 가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건너가자는 것입니다. 한계를 뛰어 넘어 건너가자는 것입니다. 이 경계선은 넘어 건너가 보자는 것입니다. 요단도 건너가 보자는 것입니다. 저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도 건너가 보자는 겁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장벽을 뛰어 넘자는 것이지요. 환경의 장벽, 신분의 장벽, 건강의 장벽, 상처의 장벽을 뛰어 넘어보자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산을 넘기도 전에 '나에게 너무 높아' 하고 주저앉는다면, 달리기도 전에 '내겐 너무 멀어' 하며 앉아있다면, 짐을 들기도 전에 '너무 무거워 보여' 하며 포기한다면 오늘의 월드컵도, 올림픽도, 노벨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만든 한계를 넘어 한 걸음 더 내딛는 용기가 새 길을 내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합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은 어렵다, 다 틀렸다. 더 이상은 힘들다. 더 이상은 못한다고 하는 포기와 체념에서 오늘 이아침 그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그 한계에 도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제일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이긴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10)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없으면 집을 세우자의 수고도 파숫군의 경성함도 모두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고정관념의 한계를 뛰어넘어보십시오. 체념과 포기의 한계를 뛰어 넘어보십시오. 시온산성이 정복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하셔서 한계를 극복하고 점점 강해지는 은복을 받으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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