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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욘3:10-4:11 * 하나님의 마음 (2)

욘3:10-4:11 하나님의 마음 (2)

 

한 농부가 아들을 너무 심하게 농사일을 시키는 것을 보고 이웃 농부가 이렇게 핀잔의 말을 했습니다. “이보게, 아니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아들을 그렇게 심하게 일을 시킬 필요가 있는가?”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농작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닐세. 아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네."

 

이렇듯 서로의 본심을 모르면 오해를 낳고, 오해는 서로 간의 신뢰를 깨트리고, 그러다 보면 같이 살아야 할 사람, 같이 협력해야 할 사람이 서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 또한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하나님을 품을 떠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예수님을 믿고 좋은 일이 생기면 괜찮은데 크고 작은 사건과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질 때면 그만 하나님의 본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들이 우리 둘레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좋으시고 절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본심은 우리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애3:33) 재앙도 아닙니다. 평안과 장래에 소망을 주는 것이고(렘29:11)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민6:24∼26) 이런 하나님의 본심을 절대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는 사람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①요나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인 니느웨로 보냅니다. 그러나 요나는 두렵기도 하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불순종하고 배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풍랑을 보내시고 요나는 결국 바다에 던져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준비해 놓은 큰 물고기로 요나를 삼키게 하여 삼일 동안 물고기 배속에서 그는 회개하면서 살려 달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용서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어 니느웨로 보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전하라고 한 대로 가서 외칩니다. 마지못해 가서 마지못해 외칩니다.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멸망하리라” 그런데 뜻밖에도 니느웨 사람들이 그의 외침을 듣고 대대적으로 회개를 합니다. 심지어는 왕도 왕복을 벗고 잿더미 위에 앉아 금식까지 하며 회개합니다.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리게 해서 전국적으로 모든 백성과 짐승들도 회개운동에 동참시킵니다. 그들의 회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심판이 아닌 자비와 용서를 베푸십니다. 이것을 지켜 본 요나는 화가 납니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하나님을 향해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합니다. 안가겠다는 사람 억지로 보내어 외치게 해놓고 왜 자기가 외친 대로 이루어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왜 저 불의한 니느웨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고 마땅히 심판 받을 사람들인데 왜 용서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죄를 회개한 자를 한없는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죄를 향해 죽이기까지 무서운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버리시면서 까지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 모두 있는 것입니다. 이 공의와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 자유와 구원을 준 줄 믿습니다.

따지고 보면, 요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불순종의 대가로 바다에 던져졌고(공의) 회개와 용서를 통해 살아났습니다.(사랑) 그러면서도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는 화를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죄의 문제가 아닙니다. 회개와 용서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해결하시기 위한 유일한 길을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를 대신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따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가 치를 떨 정도로 악한 니느웨도 회개하므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길을 따라 지은 죄를 회개하면 누구든지 죄 용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죽여 달라 화를 낸 요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박 넝쿨을 급속하게 자라게 하여 넓은 잎들을 펼쳐서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로 인해 너무 기뻐합니다. 이번에는 벌레로 박 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고 뜨거운 바람을 불게 하여 다시 덥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너무 괴로워하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합니다.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나이다”(9절)

네가 심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고 그저 하룻밤 사이에 나타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저 박 넝쿨로 인해 성을 내느냐? 고 묻자 아주 독이 오를 대로 오는 요나가 하나님께 합당하다고 외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십니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10-11)

너도 박 넝쿨을 아까지 않았느냐, 나도 이 큰 성읍에 좌우를 분변할 줄 모르는 백성 12만 명과 많은 육축을 아끼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죄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면 용서하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요나는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면 요나처럼 철부지가 됩니다. 하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심이 하나님의 마음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눅15:7)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출애굽 한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가까운 길을 버리고 먼 길인 홍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전쟁을 보면 두려워 애굽으로 되돌아갈까 하여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전쟁을 피하는 길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출13:17) 그러나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모르고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들의 추격소식을 들고 두려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리로 이끌어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게 하려고 애굽에서 구원하셨을까요? 그들의 말처럼 홍해 앞을 장지 삼아 죽이려고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을까요?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본심을 몰라줍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기 싫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의 칼에 죽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살리고 구원하시는 분이 아닌 죽이고 멸망시키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새워 울고 원망합니다. 거친 광야에서나 약속의 땅에서나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시고 죽게 내버려 두신 하나님 정도로 그들은 믿고 있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불신의 결과는 심판입니다. 결국 광야에서 모두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곳에 오래된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 이 나무 위에는 매들이 날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었고 나무 밑에는 산돼지들이 새끼를 기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매들이 떨어뜨리는 나뭇잎과 찌꺼기들은 밑에 있는 돼지들의 먹이가 되었고 돼지들의 찌꺼기는 매의 먹이가 되었으므로 이들은 서로 공생하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이들의 사이가 샘이 난 여우가 이들을 갈라놓기 위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여우는 곧장 매에게로 달려가 "나무 밑에 있는 돼지들은 너희 매를 잡아먹으려고 매일 나무 밑둥을 갉아 먹고 있다. 얼마 못 가서 나무가 쓰러지면, 네 새끼들은 떨어져서 돼지의 밥이 될 것이다. 이따금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더냐? 그게 바로 밑둥이 넘어지려는 징조다!" 그리고 이번에는 돼지에게로 달려가서 "나무 위에 있는 매들은 너희 돼지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항상 기회만 노리고 있다. 어미 돼지가 먹이를 구하러 멀리 가면 그때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 이따금 어미 매가 내려와서 너희 집을 기웃거리며 먹이를 찾지 않더냐? 그게 바로, 매가 새끼를 노릴 때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매와 돼지의 생활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매는 모이를 구하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나간 사이에 나무가 쓰러지면 새끼들이 돼지에게 잡혀 먹힐 것을 생각하니 꼼짝 못하고 항상 새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는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이를 구하러 가지 못하고 매와 돼지는 서로 경계하면서 새끼들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매도 돼지도 굶주려서 죽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면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 독생자를 죽이시면서까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바울의 외침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주님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7,28)

하나님을 향한 불신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장래를, 자녀를, 모든 일을 맡기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본심을 알고 이제는 확신 속에 맡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③바리새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고 오해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바리새인들입니다.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마19:3)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다시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신명기24:1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어주고 그를 자기 집으로 내어보낼 것이요.” 이 구절을 근거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답변하십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본심은 이혼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말2: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혼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십니다.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것은 이혼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명령하여도 인간이 이혼을 합니다. 너무 많이 이혼을 하니 당연히 사회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회 문제가 된 이혼문제의 해결 차원에서 이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아내 된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주지 않고 내어버려 그 여자를 노예나 창녀로 전락시키는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자의 인권을 보호해주려고 피치 못할 경우 이혼장을 써서 정식으로 이혼을 하라고 허용한 것입니다. 사사로이 그냥 여자를 내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본심을 그들은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장만 써주면 된다고 생각하여 이혼장 하나 써 주고 이혼을 쉽게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본심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면 요나처럼 철부지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고 원망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말씀을 잘못 오해하고 해석해 말씀 밖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항상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요,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요, 손해가 아닌 유익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어떤 일을 만나거나 어디에 있든지 소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아름답게 선하게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좋고 선하신 하나님의 본심을 붙잡고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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