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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전1:18-25 *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고전1:18-25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일하던 중 피곤하여 밤나무 밑에서 잠을 자려고 누워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참 어처구니가 없단 말이야. 왜 아름드리 밤나무에는 조그마한 밤이 열리게 하고 새끼손가락보다 가는 호박 덩굴에는 큰 호박이 열리게 하셨을까?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호박 덩굴에는 밤만한 호박이 달리게 하고 밤나무에는 호박만한 밤이 열리게 할 텐데. 그것 하나 따가지고 삶아서 모두들 나누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투덜대다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잠을 자는데 갑자기 ‘딱!’ 하더니 알밤 하나가 이마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난 그는 이마에 떨어진 알밤을 보고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밤이 호박만 했더라면 제 머리가 박살났을 텐데, 밤을 작게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들판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주 맑고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온 산과 들은 파란 초록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종달새, 휘파람새, 갖가지 새들은 목청껏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들판 이곳저곳에는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밝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한 사람이 그 친구에게 말하였습니다. “아!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저기 저 새나 소를 좀 보게. 저런 것들을 보아도 우리 하나님의 그 오묘한 솜씨를 잘 알 수 있지 않는가. 여보게, 한번 생각해보게. 저 소도 처음에는 작은 송아지였을 건데 저렇게 커다란 소가 되지 않았나, 또 저 새를 보게. 저것도 처음에는 알에서 나온 것 아닌가? 참으로 생각 할수록 신비하고 오묘하네. 여보게, 안 그런가?” “정말 그렇고말고.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시네. 그런데 말이야, 나는 한 가지 모를 일이 있어. 뭔고 하니, 우선 저 새들을 좀 보게. 저 새들은 몸집이 작으니 뭘 별로 많이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저 소 좀 보게. 소는 몸집이 크니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살 수 있지 않나? 안 그런가?” “그야 그렇지 그런데 뭘 모르겠다는 건가?” “응, 다름이 아니라. 새는 작으니까 조금밖에 먹지 않아도 살고, 소는 몸집이 크니까 엄청 많이 먹어야 되지. 그런데 새에게는 날개가 있고 정작 날개가 필요한 소에게는 날개가 없다는 점이 나는 이상하단 말이네. 잘 생각해 보게. 새는 조금밖에 먹지 않으니까 주변에 떨어진 먹이로도 충분하니 날개가 그다지 필요 없네. 그러나 소는 많이 먹어야 하니까 이곳저곳 먹이를 찾아다닐 수 있도록 날개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다지 필요치 않은 새에게는 날개를 주시고 꼭 필요한 소에게는 날개를 달아주시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게야!”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구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의 머리에 새똥을 떨어뜨렸습니다. 새똥을 맞은 그들은 깨달고 “아하! 이제야 알겠다! 역시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고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짧은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의 깊고 오묘함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큰 지혜를 부분적으로 조금만 깨달아도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중 바다 한가운데에서 표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바다 위에서 헤매던 이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그러자 갑자기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화가 났습니다. ‘안 그래도 곧 죽을 것 같은데 더 빨리 죽이려는가 보다...’ 그러나 이내 비바람이 잦아들고 다시 태양이 내리 쬐었습니다. 그는 목이 말라 보트에 가득 차 있던 빗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으로 움직인 보트는 육지 가까이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비바람이 이 남자를 살린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지혜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고백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2005. 10. 17. 바다에서 실종되셨습니다. 시신을 찾기 위해 실종 되었던 바다 밑을 해경에서 다 찾았습니다. 헬기로 폭넓게 해상을 수색했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배로 인근 바다를 다 찾아보았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 당시 한 주에 하루, 이틀 꼴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조류의 흐름과 바람 때문에 시신을 더 찾기 힘들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7일 만에(11월 2일) 할머니 네 분이 사는 ‘미역섬’이라는 곳에서 고기 낚시 간 한 할머니의 의해 발견되어졌습니다. 발견된 곳은 어떤 물체가 모이는 장소가 아닙니다. 섬은 조류의 흐름과 파도에 의해 해상의 쓰레기나 물체가 쌓이는 곳이 있습니다. 아버님 시신이 발견 된 곳은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를 위해 바람을 불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삶에서 느끼고 체험하여 알게 된 인간과 하나님의 지혜의 차이를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차이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베드로를 통해 보겠습니다.

 

어부와 농부들은 정말 부지런합니다. 어부 베드로 역시 밤이 맞도록 나가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병든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당겼는데도 물고기 한 마리 구경을 못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자식들과 병든 장모님을 생각하면 한 숨만 나왔습니다. 그래도 다음을 기약하고 배를 저어서 해변으로 와서 이곳저곳 찢어진 그물을 깁고 그물을 씻고 정리하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해변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앞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베드로 앞까지 오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성큼 올라타시고 배를 육지에서 좀 띄기를 청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두말하지 않고 배를 육지에서 좀 떨어지게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배가 강단이 되고 수많은 군중은 해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베드로도 별수 없이 피곤하고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말씀인지는 우리는 모르지만 그 말씀에 베드로는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설교를 끝낸 예수님은 베드로를 바라보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아이디어를 주신 것입니다. 그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고 그물을 당겼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자기 배에 가득히 채우는데 가득 차서 더 이상 실을 수 없게 되자 동료 야고보와 요한의 배를 불러서 동료의 배에도 가득히 채웠습니다. 베드로는 놀랐습니다. 그는 기뻐하고 감사하기보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며 회개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눅5:11)

우리는 고기를 두 배 가득 잡았다는 것에만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베드로처럼 그 안에 있는 주님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분명 주님의 지혜가 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둘째, 나아만 장군을 통해 보겠습니다.

 

나아만은 시리아의 굉장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승리하고 성공했습니다. 왕과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장군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문둥병이 걸려서 그의 속은 썩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들리는 희망의 소리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에 엘리사 선지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를 해 주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 낫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장군을 아끼는 왕의 도움으로 수레에 많은 선물을 싣고 장엄하게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궁을 찾아가서 자기의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하자 임금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시리아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는구나.' 그래서 분노하고 탄식을 하고 있을 때 엘리사가 "그 사람을 내게 보내십시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알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아만 장군은 수레의 방향을 돌려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엘리사가 거룩한 옷을 입고 나와서 종들과 함께 허리를 숙이고 자기를 정중하게 대할 줄 알았는데 엘리사는 나타나지도 않고 그의 종이 문 밖에 나와 고작 하는 말이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그는 격노했습니다. 나아만의 마음은 분노에 떨었습니다. 그는 분개해서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자기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종들이 붙잡고 매달립니다. "주인이시여, 이런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해도 주인이 병 낫기 위해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요단강에 목욕하라고 하는데 못할 게 무엇입니까?" 그는 자기 종들의 간청에 못 이겨서 요단강으로 갔습니다. 흙탕물이 도도히 흐르는데 그 흙탕물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오니까 순식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의 온 몸의 문둥병은 사라지고 몸 전체가 어린아이의 살같이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깨끗하게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이디어,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지혜대로 했더니 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사야55:8-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의 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만큼이나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풀기 힘든 사건과 문제들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이런 귀한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십자가를 통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 하나 구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이 인류의 ‘구주’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18-25)

여러분, ①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레17:11, 히9:22)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피 흘림 없이는 우리의 죄 용서는 없는 것입니다. ②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그러므로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능력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너무 많아서 참고 죽으신 것입니다.

 

내 대신

                                                                          박영일 목사

 

내가 느껴야 할 무거운 죄의 짐을

내 대신 주님이 느끼시며 고뇌하셨나이다

 

내가 밤새워 받아야 할 심문을

내 대신 주님이 힘들게 받으셨나이다

 

내가 맞고 맞아야 할 채찍을

내 대신 주님이 온 몸에 맞으셨나이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 길을

내 대신 주님이 피땀 흘리며 걸으셨나이다

 

내가 받아야 할 수치와 모욕과 멸시천대

내 대신 주님이 모두 다 당하셨나이다

 

내가 죄 값으로 죽어야 마땅하나

내 대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나이다

 

나를 살리려 주님이 대신 그리하셨나이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비싼 값을 지불하셨기에 그를 믿는 자는 값없이 공짜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또 어느 누구도 구원에 있어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구원에 있어 어느 누구도 어떤 공도, 의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은혜, 선물, 공짜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와 구원을 은혜로 주신 예수님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주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도바울이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전도여행을 통해 가서 전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했습니다. 그는 전도를 통해 많은 영혼을 주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가서 전할 때 구원 받기로 작정 된 자들이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으셨습니까?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서가 아닙니까? 전도는 미련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러분의 전도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을 믿을 줄 믿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차이가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지혜를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모하며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혜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신, 성령 충만이 지혜 충만 입니다. 또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지혜의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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