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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빌4:11-13 * 자족이 감사의 원동력이다.

빌4:11-13  자족이 감사의 원동력이다.

 

노자 <도덕경> 제33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지족자부”(知알지.足족할족.者놈자.富부자부)-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자라는 뜻입니다. 만족하면 넉넉하고 부요하다는 말입니다. 노자는 남을 아는 것을 知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明이라 했습니다. 남을 이기는 것을 有力이라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强이라 하며 스스로 足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富者라 하였습니다. 노자는 또 제44장에서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라고 했습니다.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래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족의 중요성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제일 부자는 가장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지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름대로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이 처음 이루어졌을 때 행복이란 것을 인간에게 미리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품고 불행하게 살아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천사들이 회의를 열어 인간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버리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빼앗은 행복을 어디에 감춰두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천사가 제안하였습니다. "저기 저 바다 속 깊은 곳에 숨겨두면 어떨까요?" 천사장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인간들의 머리는 비상하오. 바다 속쯤이야 머지않아 뒤져서 찾을 거요." 다른 천사가 제안하였습니다.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숨겨두면 어떨까요?" 이번에도 천사장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인간들의 탐험정신은 너무 강하여 제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두어도 찾을 거요." 궁리하고 궁리한 끝에 천사장이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복을 인간들의 각자 마음속 깊은 속에 숨겨두기로 합시다. 인간들의 머리가 아무리 비상하고 탐험정신이 강해도 자기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행복을 깨닫기는 좀체 어려울 것이오."

 

행복은 각자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교훈해 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족하고 감사할 때 우리 마음이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의 원동력, 행복의 원동력은 만족, 자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자족이 감사의 원동력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쓴 서신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도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자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서신서에서도 그는 자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전6:6-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히13:5-6절입니다.(바울 저작설을 근거로)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관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자족을 내가 하기 위해서는?

 

1. 배워야 합니다.

 

본문 11절, 12절에서 그는 삶을 통해 자족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몸으로 경험하면서 배운 자족입니다. 누구도 태어날 때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족하는 삶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자족은 배워 익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신의 주어진 것에 만족합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만이 만족할 줄 모릅니다. 음식만을 놓고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동물들은 자기 위(胃)의 70-80%만 채웁니다. 반면 돼지는 100% 채웁니다. 돼지가 동물 중에는 먹을 것에 욕심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사람과 자기 조절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기 위(胃)에 120%를 채웁니다. 돼지보다도 더 욕심이 많습니다. 사람은 배가 채워지면 또 다른 것에 욕심을 냅니다. 옷, 집, 차, 액세서리, 명예, 권력에 욕심을 냅니다. 또 일부에서는 육체적인 쾌락에 욕심을 내기도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습니다. 그 끝없는 욕심을 누가 채우겠습니까? 끝없는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있는 것에,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는 것이 삶을 더 행복하게 더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자족에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으며 개인의 경건에도 큰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처해 있는 상태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궁핍한 상황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족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족이 감사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반면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더라도 만족이 없고 감사가 없었습니다. 하늘 양식인 만나를 매일 내려주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그 하늘 양식 ‘만나’에 대해서 후에 불평까지 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먹을 양식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그들은 눈으로 기적을 보고 입으로 기적을 먹었습니다. 온 몸으로 기적을 체험을 한 것입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주신 귀한 양식입니다. 광야에서 견딜 수 있는 영양분이 풍성하게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싫증을 내고 결국 불평했습니다. 왜 입니까? 탐욕 때문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만족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만나로 만족했다면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자족이 없으면 아무리 귀한 것이 주어져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족이 있습니까? 탐욕이 있습니까? 자족이 있어 감사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12)-가난 속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으로 인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매도 수 없이 맞았습니다. 돌로 맞기도 했습니다. 여러 차례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이곳저곳 정처 없이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야 되었기 때문에 때로는 더위와도 싸웠습니다. 때로는 추위와도 싸웠습니다. 또 배고프기도 했고, 목마르기도 했으며, 헐벗기도 했습니다.(고후11:24-27) 복음 때문에 이런 비천한 처지에 처했지만 단 한 번도 그는 ①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②불행하다 생각한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여러분, 불편함이 불행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편안함이 평안이고 행복이라 생각하십니까? 자족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니 불편한 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자기의 비천한 처지에 대해서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불행하다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입니까 자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가난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③를 지은 일이 없습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④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시위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리해서 시위대 사람들을 통해서 로마의 상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복음의 진보를 본 것입니다. 또 바울은 감옥 속에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여러 권의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빌립보서를 비롯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 네 권의 성경이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족하여 감사하면서 기록한 서신서 들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비천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울처럼 비천에 대처함을 배워야 합니다.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비천에 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성도들은 기도가 식고, 의욕이 줄어들고, 충성의 빛깔이 퇴색됩니다. 어렵다하여 하나님의 돈,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십일조는 손대면 안 됩니다. 무슨 유익이 된다고 하나님의 것까지 손을 댑니까? 결코 내 돈이 될 수 없는 돈입니다. 여러분, 비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시고 비천할 때 자족함을 배워 비천에 처할 줄을 아시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는 다음으로,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12)-부함 속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경험적으로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함이 주어졌지만 그 부함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풍부에 처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혹자는 비천에 처해 있으면서 비천에 처할 줄 아는 방법을 잘 배워 열심히 신앙생활도 합니다. 기도생활도, 십일조생활도 합니다. 그러다가 풍부에 처해지자 열심이 식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또한 물질이 좀 있다고 해서 교만합니다. 없는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풍부에 부끄러운 삶을 살고 죄를 짓는 삶을 삽니다. 더 소유하려고 말씀 밖에 삶을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천에 처할 줄은 아는데 풍부에 처할 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이 두 길을 다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잘 배워 비천에 처했을 때나 풍부함에 처했을 때나 자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였습니다. 이런 전천후 신앙, 성숙된 신앙이 여러분에게도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자족을 내가 하기 위해서는?

 

2. 주님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자족은 주님으로 인해 가능한 것입니다. 13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현대인의 성경은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상황에서도 자족할 줄 알고 부한 상황에서도 자족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은 ‘모든 곳에서, 모든 일에서’라는 뜻입니다. 매 사건마다 모든 일에서,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모든 일에서 자족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주님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 빈자리에 오직 주님이 계실 때 채워지고 만족해지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그 빈자리에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고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 예수님 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진 능력으로 그 어떤 처지와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자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13절 고백입니다. 모든 상황 즉 풍부한 상황이든 비천한 상황이든 이런 상황들을 모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배워 아는 것을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와 감사의 중요성을 체험을 통해 잘 알지만 주어진 상황의 무게에 따라 못하고 안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하나님 나라는 말과 지식이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 여러분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의 능력으로 배워 아는 바를 실천하시고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감사의 원동력은 자족에 있습니다. 자족하지 못하면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탐심을 내려놓고 자족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예수님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이 주신 능력으로 처한 모든 환경과 상황에서 자족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잘 배워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한 주간 열심히 기도하시면서 받은 은복을 헤아려 보시고 감사를 준비하시는 지혜롭고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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