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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잠언17:17, 18:19 가족(식구)

잠언17:17, 18:19  가족(식구)

 

어떤 사람이 생선가게에서 조기를 사려고 싱싱한 것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조기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냄새를 맡자, 생선가게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멀쩡한 고기를 가지고 냄새를 맡고 야단이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귓속말로 바다 소식 좀 물어봤소.” 주인도 호기심이 생겨서 “그래 조기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래서 대답하기를 “바다를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어 최근 소식은 알 수 없다고 하네요.” 주인과 손님은 서로 마주보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단속 나온 교통경찰이 과속한 차를 잡아 세우고 “빨리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걸린 운전자가 재치 있게 “기다릴 줄 알고 빨리 왔습니다.”하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한바탕 웃고 그냥 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삶 가운데, 특히 이번 명절에 언짢고 기분 나쁜 일이 좀 있어도 예민하게, 짜증으로 받지 말고 재치 있는 유머로 웃어넘기는 여유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시시비비만 따질 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주 복잡합니다. 얽힌 사연도, 남모를 속사정도, 억울함도, 실수도, 잘못된 판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넉넉함, 덮어줄 수 있는 큰 사랑도 우리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해 봅니다.

 

‘추석’은‘달 밝은 가을 밤’이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추석의 다른 이름 ‘한가위’는 ‘한’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의 옛 말로 8월의 한 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추석의 또 다른 이름인‘중추절’은 여름의 초. 중. 말복처럼 가을도 초추, 중추, 종추로 나누는데 그 중 8월의 중추를 추석으로 정해 ‘중추절’이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추석 명절에 하나님의 은복이 여러분과 가정에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가족, 식구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가족은 위급할 때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잠17:17)

 

조선조 인조 때의 감사 정효성(鄭孝成)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품이 너그럽고 온화하였으며 마을에 사는 미천한 신분의 사람과 사귀어 친구처럼 대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의 아들 현곡(玄谷) 정백창(鄭百昌)이 "아버님께서 이런 사람과 대등하게 사귀시면 예모가 손상되오며 저희 자식들은 부끄럽사옵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정효성이 웃으면서 "예의에 어찌 지위를 따지려 하느냐? 그럼 한번 시험해 보겠느냐?"

마침내 두 부자는 밤을 틈타 아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 집으로 가 "우리 부자가 불행히도 살인을 하게 되었다네. 그 죽은 사람이 양반인데다 또 자식이 몇이 있어 지금 칼을 가지고 방방곡곡에 찾아다니며 '만약 숨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부터 먼저 죽이겠다.' 고 하니, 우리를 감히 받아줄 사람이 없다네. 그래서 평소의 우의를 믿고 감히 찾아 왔네." 그러자 그 친구는 ‘받아 주고 싶지만 집안에 일이 생겨서 다른 사람을 머물게 할 수가 없다.’며 거절하였습니다. 또 양반집 몇 군데를 더 가 보았으나, 모두 비슷한 말을 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정효성은 마지막으로 그 미천한 사람의 집을 찾아 가 먼저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즉시 안방으로 맞아들이며, 그의 아내에게 "이 어른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만약 그것이 알려지면 우리도 함께 죽는 것을 면할 수가 없다네. 먼저 술을 따끈하게 데워 놀란 마음을 진정하시게 한 뒤에 요기하실 밥을 차리게…"라며 그들을 정중히 모셨습니다. 이 때 정효성이 아들을 돌아보니 아들인 정백창이 매우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황금은 뜨거운 불 속에서 제련(製鍊)되며, 우정은 역경 가운데서 분명해 지는 법입니다. 아무 때나 사랑이 변함없는 사람,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사랑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인 것입니다.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17:17)

 

내가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형제입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함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피 섞인 사람, 형제입니다. 가족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 가운데 잘못 알고 실수하는 성도들이 가끔 있습니다. 하나님만 잘 섬기면 100점짜리인줄 알고 사는 그런 성도들 말입니다. 성경은 이런 분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을 못 본 체하는 사람이 있다면 ①교인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고 ②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악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계명인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대로는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와 가족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도 힘써야 됩니다. 반대로 이웃 사랑은 잘 하는데 하나님 사랑을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순서가 바뀌면 성도는 안 됩니다. 하나님 섬기는 성도이니까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의 순서와 이 말씀에 균형 잡힌 성숙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가족끼리 분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잠18:19)이 말씀을 읽은 면서 마음으로부터 아멘이 되었습니다. 정말 틀림없는 소리입니다. 형제간에,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틀어지면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견고한 성 하나를 취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했습니다. 분쟁이 일어나면 산성 문빗장처럼 마음의 문빗장을 걸어 놓고 열지를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을 보세요. 축복기도 때문에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 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삼촌 집으로 도피합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나 잘못한 동생 쪽에서 화해를 시도합니다. 형 에서는 산성의 문빗장처럼 굳은 마음의 문빗장을 걸어 놓고 화해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400명을 거느리고 동생 야곱을 만나려고 옵니다. 환영하기 위해 400명을 거느리고 오겠습니까?

이렇게 형제간에 분쟁이 일어나면 다시금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관계가 악화된 후에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처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노력하고 주의 하는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에서의 걸어 잠근 문빗장이 어떻게 풀렸습니까? 동생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께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마음의 문빗장을 거두어 열도록 하신 것입니다.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왕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움직이고 이끄신다는 말씀입니다. 원수라도, 형제라도, 왕이라도 하나님께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전도만 놓고 생각해도, 절대 믿지 않을 것 같이 마음의 문빗장을 걸어 잠근 사람들도 마음 문 열고 예수님 믿고 집사 되고, 권가, 장로 되지 않습니까? 상대의 마음은 하나님께 맡기고요, 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요셉에게서 그 답을 찾겠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서 죽이고자 하는 미움을 받았고, 마침내 이스라엘 사람에게 팔리어 애굽 땅에 팔려 큰 고난을 당하였습니다(창37:18-28, 39:1-20)  그러나 13년 이 흘러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 그는 그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창45:-8)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큰마음과 큰 사랑으로 용서한 것입니다.

 

살다보면 형제간에 이해 못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너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섭섭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조심해야 합니다. 틀어지면 하나님 섬기는 사람으로서 이유야 어쩌든 간에 하나님께 죄송하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도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상대이든, 나든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을 때, 그 때에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죽음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아닌 일, 아주 사소한 일로 보일 것입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가도 보이게 될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저 경험에 의하면 ①섭섭함, 억울함을 묵상하면 눈덩이처럼 커져갑니다. 마음에 혼자 키워서 더 용서가 안 됩니다. ②사람이 악해지려면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고 선해지려면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선한 쪽으로 생각하십시오. 악한 쪽으로 자꾸 생각하면 진짜 나쁜 사람이 됩니다. ③용서 못하면 소인배처럼 느껴집니다. 큰 생각, 큰마음, 큰 사랑으로 이해와 용서 못한 자신을 보고 있으면 작다는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은 큰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의 관계도 원수 된 관계였지만 예수님을 통해 용서의 길을 여셨습니다. 집 나간 탕자도 거지 되어 돌아오자 아버지가 달려가 끌어안고 용서해 주고, 받아 주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 하나가 더 있습니다. 무조건 용서 앞에 상대의 진정한 회개와 용서 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탕자도 크게 뉘우치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예수님 믿고 나는 죄인입니다. 회개기도 했습니다. 요셉의 형님들도 요셉에게 잘못을 고했습니다. 무조건 용서와 자신의 잘못됨에 대한 인정과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형제간에 화목이 깨지지 않게 서로 크게 주의하시고, 내가 잘못해서 틀어졌다면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상대가 잘못했다면 무조건적 용서로 화해와 화목이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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