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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갈6:17 흔적

갈6:17  흔적

 

친구가 맹구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면 자네 부부처럼 늘 부부싸움 한 번 없이 평화스럽게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자 맹구가 대답하기를 "사소한 일들은 모두 아내가 결정하고 중요한 일들은 모두 내가 결정하지. 그렇게만 하면 서로 간섭할 일도 없고 말다툼도 없지."  "아하~ 그렇구나. 그러면 자네 집사람은 어떤 일들을 결정하는데?"

"우리가 어디로 이사할지, 재테크 자금 1억은 어디에 투자할지, 상가는 누구 명의로 사야 하는지 등등..." 조금 헷갈리기 시작한 친구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저네가 결정하는 중요한 일들은 대체 뭔가?" "누가 유엔 사무총장이 돼야 하고, 누가 IMF 총재가 돼야 하는지, 세계평화를 위해 우리 식구들은 지금 뭐를 해야 하는지 등등 아주 중요한 사안들이지~"

참 대단한 집이네요.

 

오늘은 ‘흔적’이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흔적’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즉 소유의 흔적을 말합니다. 주인이 자기 것이라는 표시로 소나 양에게 찍는 낙인(烙印), 즉 불도장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노예나 포로에게도 낙인을 찍어 자기 소유임을 표시했는데요. 이것을 ‘흔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전적 의미는 명사로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로 정의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흔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적을 통해 그 사람이 무엇을 한 누군 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대선 후보들을 본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동안 어떤 길을 걸어오면서 어떤 자국과 자취를 남겼는가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껏 엉터리로 살다가 선거 때면 나와 어떻게 하겠다고만 약속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표를 주시겠습니까? 믿고 줄 수도 있습니다. 결과는 한 번 더 속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독교인으로 나라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하시고 투표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내게 남아 있는 흔적과 내가 남겨야 할 흔적 두 가지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1. 내게 남아 있는 흔적

 

한 어린 여자 아이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마마자국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의 놀림으로 인해 창피함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딸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네가 태어날 때 마을에 천연두가 돌아 많은 아이들이 죽었는데 너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살려주셨단다. 너의 얼굴에 있는 그 마마 자국이 그 흔적이란다.” 어머니의 말씀을 알아들은 아이는 평생 열등감에 사로잡혀 비참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셔서 살려주셨다는 사랑의 흔적, 은혜의 흔적으로 자랑하며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 살면서도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으며 유학을 가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그런 얼굴로도 잘생긴 유망한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뉴욕 최대의 퀸즈 한인교회 한진관 목사님의 사모님인 김태열 사모님입니다.

남아 있는 마마자국을 은혜의 흔적, 사랑의 흔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습니까?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니면 부모님으로부터, 그 어떤 누구로부터 받은 사랑의 흔적, 은혜의 흔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가 언젠가 탕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부모님에게 진한 사랑 받은 기억 하나쯤 가슴에 있는 자식은 그것 때문에 잘못되지 않고 그 사랑 기억하며 세상을 행복하게, 힘든 세상 힘내어 살아갈 수 있다고.”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사랑 받은 흔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하나님의 손바닥에 내 이름을 새기셨습니다. 새겼기에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소중하면 손바닥에 새겼을까요? 그 손길로 우리를 세상 끝 날까지 잡아주시고 도와주시며 지켜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계20:15) 하나님의 사랑은 듣기 좋으라고 말로 하는 형용사가 아닙니다. 이 사랑은 눈에 보이게 나타난 동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9,10)

 

화목제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가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입니다. 이 십자가가 우리 안에 흔적으로 있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행동으로 삶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 들려 광인이 되어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제 정신으로 사는 그 자체가 은혜의 흔적, 치유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는 감사하며 예수님과 12제자를 따라 다니면서 섬겼습니다. 제자들은 다 흩어져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의 흔적, 치유의 흔적, 은혜의 흔적이 있다면 감사, 감격하시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간 업소에서 묘기를 하는 청년이 저녁에 차를 몰고 업소로 가다가 불심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이 트렁크를 열어 보니 칼이 여러 자루 들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수상히 여겨 잠시 내리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자기는 야간업소에서 칼을 한 번에 여러 자루를 던져 돌리면서 묘기를 부리는 전문 곡예사라고 설명했으나 경찰은 믿어지지 않다며 시범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차에서 내려 칼 네 자루를 공중으로 돌리면서 손으로 받는 멋진 묘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때 뒤 따라 오던 차가 멈추어 서더니 그 모습을 보고 운전자가 하는 말이 “술 끊기를 잘 했지, 갈수록 음주 테스트가 어려워지네.”

 

2. 내가 남겨야 할 흔적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화장실 문구입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과학 수사대에서 쓴 문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기가 큰 증거물에만 신경을 쓸 때,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Edmond Locard, 1877~1966)는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증거물에 주목했습니다. 옷에서 나온 작은 실밥이나 어디선가 묻어온 듯 보이는 먼지 같은 것들, 그는 다들 무시해 버리는 작은 증거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미세한 먼지와 흙, 금속 파편 등을 감정해 범인이 현장에 있었고 피해자와 신체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입증했습니다. 그 뒤 리옹대에 세계 최초로 법과학감정소를 세웠고 전 세계는 로카르의 성과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앞 다투어 리옹대 법과학감정소를 벤치마킹한 법과학실험실을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를 그런 이유로 설립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로카르의 법칙(Locard's Principle)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수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인은 시를 남기고 화가는 그림을, 작곡가는 많은 곡을 남기며 운동선수들은 기록을 남깁니다. 성도로서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첫째,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전도서 7장 1절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보배로운 기름이란 무엇일까요? 값비싼 향유 같은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많은 재산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질’보다는 ‘아름다운 이름’이 낫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서를 통해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22:1)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도 “오델로”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내 지갑을 훔치는 것은 내 쓰레기를 훔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이름을 훔치는 것은 내 목숨을 훔치는 것이다.”

 

재산은 반드시 소멸되지만 이름은 오래 갑니다. 그러므로 재산보다 명예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발’은 부자였지만 어리석었습니다. 그의 재산은 그가 살아 있을 때까지였습니다. ‘바울’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2000년이 지낭 지금까지도 그 이름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가하면 나쁜 이름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판 가룟유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그는 을사오적 중에 한 사람으로서 망국노, 매국노의 대명사입니다. 이와 달리 안중근, 유관순 같은 이름들은 아름답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엄청난 고난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이완용과 달리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여러분, 값비싼 향유보다 이름과 명예를 더 귀히 여기시고 좋은 이름을 남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좋은 행적을 남겨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하신다면 한 번 쯤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①나의 남은 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태어나 가는 것은 정한 위치입니다. 건강해서 80까지 산다면 80에서 현 나이를 빼면 이 땅에 내가 살 수 있는 연수가 나옵니다. 저는 37년 남았습니다. 그리고 ②나는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입니다. 존 번연(1626-1688)이 쓴 성경 다음으로 사랑 받는다는 책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에 등장한 진충씨가 자기의 여행을 거의 마칠 무렵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나의 상처와 흔적을 주님을 사랑한 증거로서 나에게 상급을 주실 그분 앞으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얼마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는지 낙타무릎처럼 튀어나왔습니다. 그는 낙타무릎을 가지고 예수님께 가겠지요.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채찍에 맞고 돌에 맞은 흔적을 ‘예수의 흔적’이라 고백하며 그 흔적을 예수님께 가지고 가겠지요.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고 무엇을 이 땅에 남겨두고 가야 할까요? 고민해야 합니다.

 

모은 돈은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쓰는 돈은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법입니다. 선한 말도 선한 행위도 누군가의 마음에 분명 남을 것입니다.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 후에 그 흔적이 내가 누구였는가를 말을 해 줄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처럼 마지막 날 나를 땅에 묻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아브라함 링컨 당신은 잡초를 뽑고 꽃을 심다 떠난 사람이다." 말을 듣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잡초를 남기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꽃을 이 나라에, 교회에, 가정과 일터에, 고향에도 심어 남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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