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영일목사

[스크랩] 삼상23:1-5 다윗의 사랑과 신앙

삼상23:1-5  다윗의 사랑과 신앙

 

어떤 독수리 나라에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독수리라고 생각한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하려고 벼랑에 모였습니다. 함께 자살하려는 순간 망에서 파수를 보던 영웅 독수리가 날아와선 "너희들 왜 죽으려고 하니?"라고 묻자 한 독수리가 "저희들처럼 못난 독수리는 살아갈 필요가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왜 못난 독수리인데?"라고 묻자 독수리들이 "전 매일 날기 시험에서 떨어져요. 저 같이 멍청한 독수리는 없을 거예요.", “전 매일 윗 독수리에게 얻어터지면서 살아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나아요.", "전 사랑하는 독수리에게 버림을 받았어요. 저 같은 바보는 살 필요가 없어요." 이유를 다 들은 영웅 독수리는 "너희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무런 상처 없이 태어나자마자 영웅 독수리가 되어 있는 걸로 생각하는구나." 그리곤 날개를 쭉 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 많은 상처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날기 시험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고, 이건 윗 독수리에게 얻어터진 상처란다. 하지만 이것들은 눈에 보이는 상처일 뿐, 가슴 속에 묻힌 상처는 더 크단다. 세상에 상처 없는 독수리가 어디 있겠니? 그건 아마 태어나자마자 죽은 독수리일거야.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 없이, 고통 없이 어떻게 살겠니. 그런 것들로 해서 이 세상은 살아 갈만 하지 않겠니?"

 

여러분은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것들로 인해 숨조차 못 쉬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것쯤이야 하면서 기도와 믿음으로 이기며 자기만의 영웅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오늘은 영웅 독수리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다윗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다윗은 장인인 사울 왕을 피해 모압에 도피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갓 선지자가 유다 땅으로 가라는 권면을 합니다. 그러자 그는 받아들여 유다 땅 헤렛 수풀에 거하게 됩니다. 유다 땅의 경계선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그에게는 사울 왕의 세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모압이 더 안전하겠지만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유다 땅 헤렛 수풀에서 숨어 지낸 것입니다. 다윗 입장에서는 힘든 순종을 한 것입니다.

 

얼마 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마당을 탈취한다는 소식을 전해 줍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당시에 밀 추수를 하고 나면 보통 편편한 바위 위에서 이삭을 까부르는 타작을 합니다. 도리깨질이나 발로 밟아 밀 이삭을 까부른 후에는 공중으로 날려서 가벼운 겨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무거운 알곡은 편편한 바위 위로 떨어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타작한 알곡들을 타작마당 곁에 모아 두었다가 곳간에 들이곤 하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바로 이때 그 타작마당을 습격하여 곡식을 빼앗아 갔다는 말입니다. 1년 농사를 다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겠습니까?

 

그 소식을 접한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합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2) 

 

1. 사랑 때문에

 

다윗은 무모한 기도, 무모한 질문을 하나님께 하게 보입니다. 이성적으로, 합리적, 상식선에서 생각을 한다면 답은 금방 쉽게 나옵니다. 불가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세가 더 딱하고 어렵습니다. 오비삼척(吾鼻三尺)입니다. 내 코가 석자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저쪽은 1년 농사만 없어졌지만 다윗은 다 드러내고 전쟁을 하다간 사울 왕에게 잡히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상대는 군권을 가진 한 나라의 왕입니다. 또한 저쪽은 1년 수확은 빼앗겼어도 살 집이라도 있습니다. 자신은 수풀 속에서, 동굴에서 살며 자는 처지입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생각한다는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2) 

 

이는 동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긴 시간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지? 자신입니까?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입니까? 자녀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해, 모세는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위해, 에스더는 동족을 위해 금식까지 하며 기도했습니다. 왜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비유 가운데, 여행 중에 자기 집을 찾아 온 친구를 위해 밤중에 다른 친구 집을 찾아가 떡 세 덩이를 달라 강청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구했습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문제라면 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가 찾아왔기에 염치 불구하고 밤중에 찾아가 구한 것입니다.(눅11장)

 

저는 고향교회와 노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섬길 수 있게 해 달라고. 가끔 혼자 생각하면 웃기는 일입니다. 나도 어려워 선교비를 받으면서 누구를 돕겠다고 하고 있는지. 받은 선교비 일부로 선교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그럽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랑 없으면 못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기에 그 심정이 이해되어 기도하며 나눕니다. 교회가 자립하면 돕는다는 논리는 맞는 것 같지만 상대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지금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성장해서 도움을 준다면 기회는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이 복음화 되면, 우리나라에 굶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고 돕는다면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복음이 들어오지도 원조를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 나를 위해 오랜 시간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면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정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이 묻자 “가서 동족 그일라를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가슴 역시 따뜻합니다. 사랑이십니다. 불쌍하고 어려움에 있는 동족을 어떻게 하든 도우라. 구원하라 합니다. 여러분, 선한 사마리아인이 누구입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강도 만난 사람을 돕고 살리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하인이지만 병들어 죽어 가자 예수님께 구한 백부장 역시 사랑 때문입니다. 내가 좀 불편해도, 낮아져 고쳐 달라 부탁을 하는 처지가 되어도 그 모든 것을 감소하는 것은 하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영광 다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낮아져 오셨고 죄인 취급 받아 사형을 당한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참으심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왜 죽이고 좋지 않는 일에 힘을 쏟습니까? 이익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축원합니다.

 

사자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하였습니다. 사자가 “어이, 거북이 가방 좀 내려놓고 뛰지~” 거북이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갑니다. 자기의 말을 무시하고, 묵묵히 달리기 경주를 하는 거북이에게 다시 한 번 사자는 "어이, 더운데 가방 좀 내려놓고 뛰지?" 거북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열심히 경주를 합니다. 그러자 자신을 무시하는 거북이에게 정말 화가 난 사자가 "야 임마! 등딱지 내려놓으라고!" 자신을 향해 크게 소리치는 사자에게 화가 난 거북이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합니다. "야, 머리나 묶어 이 oo놈아!"

 

상대를 너무 자극하거나 건드리면 안 됩니다. “사랑합시다”

 

♬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 중에 나는 나는 최고의 작품

제아무리 꽃들이 예쁘대도 내 모습만 못하시대요.

사랑의 하나님 나를 이렇게 아름답게(멋있게) 만드셨어요.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이렇게 만드셨어요.(찬양바람 520, 최고의 작품)

 

 

2. 신앙 때문에

 

다윗의 신앙은 자기 뜻대로, 자신의 맘대로 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는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분의 뜻을 알아 그 뜻대로 순종하려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이런 신앙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이고(잠3:6)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신앙인 것입니다.(살전5:17) 선택의 기로에서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내 생각을, 아니면 다수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까? 다윗은 하나님께 먼저 묻고 가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함께한 다수가 “유다에 있는 것도 두려운 일인데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는 일입니까?”(3) 반대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반대에 부딪치자 잠시 주춤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측근들처럼 말하거나 말리지 않으시고 가라 하십니다. 다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것을 잘 아는 다윗은 항상 묻고 순종하고 묻고 하나님의 뜻만 따랐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께 묻는 신앙을 소유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사역 초반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맙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큰일을 처리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멀리서부터 찾아온 나그네로 가장하고 이스라엘과 화해를 청하며 스스로 종이 되어 이스라엘을 섬기겠다고 하자 언약해 버렸습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분명 지적합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9:14,15) 이로 인해 2가지 불행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①우선 지도자가 백성들의 원망을 사고(수9:18) ②오랜 뒤의 세대에게 후환이 미쳤습니다.(삼하21장) 다윗의 시대에 3년 기근이 있었는데요. 기브온 사람들과 관련된 사건이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 묻고 어려운 순종을 한 다윗에게는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①전쟁에서 이겨 동족을 구하였습니다. ②사람들을 얻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400명 정도였는데(22:2) 순종한 결과 600면 정도로 증가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 동족을 구원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인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은총이 더 하였습니다.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14) 하나님께서 특별 보호와 지키심으로 인하여 사울은 인간적으로 매일 찾았지만 하나님의 지켜주시고 보호하심에 대책이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웅 독수리처럼, 나도 어렵지만 사랑과 신앙으로 영웅의 스토리를 다윗처럼 써 갑시다. 힘내어 전도의 열매를 드리기 위해, 추수감사절을 준비하여 크게 감사하기 위해 11월에 힘써 기도합시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