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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후13:5-10 자신을 살펴봅시다.

고후13:5-10  자신을 살펴봅시다.

 

2000년이 시작되자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웰빙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과 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입니다. 웰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자는 것입니다. 요즘은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화두입니다. 힐링은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의미입니다. 더 설명을 하자면 마음의 상처나 스트레스 등으로 손상된 감정과 마음을 치유함으로써 온전한 심신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웰빙에서 힐링으로 옮겨진 이유를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①물질만능주의, 권위주의, 경쟁제일주의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심신이 지칠 때로 지쳐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힐링,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②힐링이 되지 않으면 웰빙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힐링을 보면, 일시적인 힐링에 그치고 있습니다. 근본적이지가 못합니다. 위로와 자기 위안 차원 정도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힐링을 위해서는 영적인 차원에서 치유가 함께 되어져야 합니다. 인간은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근본적인 치유를 받아야 진정한 힐링이 되기 때문입니다.

 

21C 신학의 주제는 영성입니다. 세계적인 통계전문회사를 이끌고 있는 조지 갤럽은 이런 정의를 했습니다. “20세기가 인간 밖에서 존재하는 공간에 집착하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인간 안의 공간에도 관심을 보이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인간 안의 공간, 영성에 관심이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우리들 대부분은 아마 영성의 의미를 흡족할 만하게 설명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성의 존재 그것이 있고 없음만큼은 다 안다.” 영성이 무엇인가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영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우리 영성이 향상될수록 풍성한 삶을 살고 내 영성이 결여될수록 공허하고 심령이 메말라가는 것을 삶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성이 빈약해지면 내 삶이 짜증스럽고 피곤하고 힘들고 메말라가지만 내가 영적으로 충만해지면 모든 것이 다 풍요롭고 심지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성이 무엇인가? 기독교 영성의 총론적 정의는 덴버 신학교 교수인 디마르스트가 가장 보편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영성이 추구하는 바는 우리의 내적 인격과 외적 행위를 성령님의 도우심과 협력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조금씩 그리스도 예수님의 형상을 점진적으로 닮아가는 것이다.”

 

영성은 기도원 한 번 갔다 오더니 목소리가 허스키해진 것이 영성이 아니라 갈수록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가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는 것, 이것이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영성이 떨어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험한다.’라는 말은 ‘자세히 조사하는 것, 살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확증하라’는 말은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진짜라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는 말은 현재 나에게 있는 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 영성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조사하고 살펴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즉시 고치고 바로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아침 바울이 영성을 잃어버린 고린도교회에 권면하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성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가?

 

오늘 본문 5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와 내 삶의 주인으로 믿었느냐 믿었으면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이고 믿지 않거나 믿지 못하면 너희 안에 계시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실하게 믿지 못하면 버리운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나오는 “버리운”이란 말은 ‘시험을 해서 불합격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 당시 동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검사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따라서 ‘버리운 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이 보시기에 가짜로 판명된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흉내만 내는 가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눅2장에 보시면 예수님을 모시고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마리아와 요셉은 집으로 돌아오는 그만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동행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룻길을 갔다가 예수님이 동행 가운데 없는 것을 알고 그제야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 속에 예수님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중요한 직분을 감당하고 있기에 당연히 예수님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장로, 권사, 집사, 그리고 기관장이기 때문에 자신은 당연히 예수님을 모시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처럼 당연히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고 계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당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이 사실을 깨닫고 때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죽음의 문턱에 가서 비로소 내가 버림받은 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에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믿음이 있는지,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골 마을의 이장이 동네 주민들을 모아 놓고 마을 발전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창 열정을 다해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청년 한 사람이 졸고 있었습니다.그러자 화가 난 이장은 청년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니께 외쳤습니다. '할머니! 그 청년 좀 깨워주세요!' 그러자 그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재우긴 지가 재워 놓고, 왜 날보고 깨우라고 난리야!' (이런 난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졸지 마세요.)

 

 

2.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고 있는가?”

 

영성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후13:7)라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바램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심혈을 기울여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후 고린도교회는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코 범해서는 안 될 죄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범하였으며, 사도 바울의 신앙양심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악들이 고린도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주님의 교회로서의 그 정체성마저 상실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교회사정을 알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로 다시 가서 그들이 범한 죄악에 대하여 엄하게 처벌하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결심한 것은 엄하게 책망하고 벌을 주어서라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회개시켜 악에서 완전히 떠나 선을 행하는 생활을 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시 고린도교회로 돌아가서 고린도교회의 잘못에 대하여 책망하고 벌을 주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고린도교회에 역사하여 그들을 회개시켜 선을 행하는 자로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선”이란 말은 “아름다운, 칭찬할 만한”이란 뜻입니다. 성경에서 “선을 행한다.”는 말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실 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합당한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며 바르게 산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는 누가 보든지 믿을만해야 되며, 인정받을 수 있어야 되며, 성실한 모습으로 신뢰가 가야 바른 신앙입니다. 올바른 신앙은 칭찬을 받고 덕이 되는 것으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삶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은 선을 행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에게 선을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구원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면서 살라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라면 아름답게, 은혜롭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내가 진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본문 8-9절 말씀에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후13:8-9)고 했습니다. 진리를 거스르며 사십니까? 진리 안에서 진리대로, 진리를 위해 사십니까?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며, 진리를 거스른 것은 사단 편에 서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를 거스른 삶은 결국은 파멸이요, 멸망임을 분명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진리를 거스른 자는 파멸과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삼고, 그 분을 위해 나의 삶 전부를 투자하는 것이 진리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의 영인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진리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을 통하여 내가 지금 진리 위에 서서 진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시험하여 확증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 좋아야 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그것이 진짜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자기도취에 빠져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한 외식에 빠져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여 지금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믿음을 지키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날마다 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고 잘못된 믿음을 바로 잡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삼서 3절에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요삼3) 가이오라는 사람은 진리 안에서 거하는 사람이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가이오처럼 진리 안에 살아 목회자를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의 축복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확실하게 예수님을 믿는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며 살고 있는지? 진리를 위해 살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여러분의 영성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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