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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막2:1-5 전도합시다.

마가복음2:1-5 전도합시다.

 

오늘 말씀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친구의 영육을 살리는 참 좋은 친구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친구(親舊)란 뜻을 한자어로 풀어보면 친할 친(親)자와 옛 구(舊)라는 단어로 ‘오래도로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란 뜻입니다. 친할 친(親) 자의 의미구성을 보면 ‘나무(木) 위에 서서(立) 지켜봐 주는(見)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친구란 멀리서도 세심하게 지켜보다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다가와 주는 자’라는 뜻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베프’라고 합니다. 베스트 프랜드(Best Friend)

 

사람 속에 살지만 사람이 없고 친구가 있는데 친구가 없다 합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 진정한 친구가 많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인생 똑바로 잘 산 것입니다. 라 퐁텐느는 “친구란 이름만큼 흔한 것이 없고, 진솔한 친구만큼 희귀한 것도 없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잠18:24)

 

진정한 친구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요.

당신의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을 보더라도 당신이 가장 좋았을 때를 결코 잊지 않는 사람.

실제의 당신보다 당신을 더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

몇 시간 동안 함께 대화할 수도 있고, 몇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성공을 당신만큼 기뻐하는 사람

자신의 진심을 말해줄 정도로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

당신보다 더 많이 알려고도, 더 현명한 척 하려고도, 훈계하려 하지도 않는 사람.

 

이처럼 진정한 친구는 속이 깊으면서도 가슴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진정한 친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친구는 중풍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들이 일으킨 감동적인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기적, 어떻게 일어날까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1. 사랑으로 연합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경영학자들이 분석하듯이 20세기까지는 경쟁의 시대(competition)였다면 21세기는 공동체의 시대(community)입니다. 실리콘벨리의 전설적인 벤처투자가로 유명한 존 도어(John Doerr)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컴팩이나 넷스케이프를 태동시킨 인물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세상에는 기술이나 자본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훌륭한 팀은 정말 찾기 어렵다.”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팀워크를 통해서만 성공이 가능한 시대라는 말입니다. 운동경기에서 선수들이 실력이 좋은데도 득점보다 실점을 많이 하는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선수들이 팀플레이어로 경기하지 않고, 스타플레이어가 되려는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혼자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멀리 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함께하면 서로 힘이 되어 주며 멀리 갈 수 있는 법입니다. 연합의 힘인 것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지방에 작은 개미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개미들이 떼를 지어 행진하게 되었는데, 그 행진 대열의 길이가 10여 리나 되었습니다. 모든 짐승들이 이 움직임을 보고는 무서워 떨며 그 앞에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짐승 중에 제일 큰 코끼리는 숲으로 달아났고, 겁이 없는 밀림의 맹수 사자조차 그 광경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숲으로 피한 코끼리가 '작은 개미를 어찌 무서워 하겠는가마는, 저 개미들이 떼를 지은 곳에 들어갔다가는 수만 마리가 몸에 붙어 살을 뜯어먹을 것이고 영락없이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것들 중의 하나가 개미입니다. 이 작은 개미의 힘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합에 있습니다. 미미한 벌레라도 힘을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자연히 강해지는데 믿는 이들이 연합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십시일반-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여럿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쯤은 도와주기 쉽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사랑으로 연합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넷이서 한 팀이 되어 친구를 침상 채로 메고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한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네 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했습니다. 누군가가 힘들고 아플수록 서로의 협력적 케어(care)가 필요합니다. 즉 돌봄과 보살핌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사랑의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마음 한 뜻으로 친구를 고치고 살리는 일로 예수님을 감동시켜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던 네 명의 친구들처럼 우리도 서로 서로 한 마음을 다해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랑으로 모험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크게 감동하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들의 계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들은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게 되자, 남의 집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침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그들은 친구를 고치기 위해서 지붕 값을 지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기와지붕 값은 물어내면 되지만,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기 때문에 기꺼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사랑은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합니다. 계산을 초월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깝지 않은 것이요,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주고, 희생을 감수합니다. 그래서 사랑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특별한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자신의 백성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왕국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하나님은 모험에 동참하고자 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 일에 우리가 예로 동참하면 상상을 초월할 기적을 체험하고 큰 업적을 남기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뜻에 모험적 신앙으로 예로 동참하니까 그 홍수 가운데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모세가 모험을 감행하니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유명한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그의 책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모험입니다. 우리에게는 매일 새 날이 주어집니다. 매일 새로운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여러분들 아닙니까? 여러분에게는 모든 것, 즉 성공과 실패, 고난과 영광, 기쁨과 슬픔, 승진과 해고 등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지휘하셔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인생은 모험이지만, 하나님께서 지휘하시는 모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지휘하십니다. 인생의 지휘자인 하나님께 인생의 키를 맡깁시다. 그러면, 실패도, 슬픔도, 고난도 다 유익하도록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인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길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 하다가, 길 가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은 빵을 주는 것이나 옷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물에서 건져주는 것입니다. 내가 건질 수 없으면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구조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문제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랑은 구원자 되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한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3절) 찾아가서 데리고 같이 와야 합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한 친구로 예수님을 만나게 했습니다.(4절) 가장 큰 사랑은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풍병자는 주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가장 큰 사랑입니다. 주님을 몰라 영적인 중풍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네 명의 친구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칭찬을 하십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강조하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연합된 믿음이 병든 친구를 고침 받게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시기 전에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능력을 보면 주님을 믿겠다고 하지만 주님은 믿음을 보이면 능력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조건을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자신이 대신 형벌을 당하시므로 죄 사함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을 때 구원을 얻는 것처럼 병 고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건강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춰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믿음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것이 믿음 때문이듯 우리의 일상생활과 영적생활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우리 믿음을 보신다는 것이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우리 행위를 보시고, 우리 공로를 보신다면 구원 받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나 공로를 보지 않으시고 믿음을 보시는 것이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을 보시고 병도 치료해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 명의 친구들이 모험적인 사랑으로 친구를 치료했듯이 영육을 살리는 일에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모험적 사랑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오직 치료받게 해야겠다는, 오직 영혼을 구원 받게 해야겠다는 그 모험적 사랑으로 아직 믿지 않는 가정, 친구, 이웃들을 전도하시는 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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