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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욥4:1-11 공감하는 자

욥4:1-11 공감하는 자

 

우리 뇌에 거울신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 것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침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권투 선수가 상대를 가격하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가 울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퍼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공감능력이라고 합니다. 이런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대인관계가 좋고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업도 성공하고, 공감을 주는 책이 잘 팔리고, 공감을 주는 영화를 보고, 공감할 때 물건도 사고 공감할 때 마음의 문도 연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며느리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마치 자기가 환자인 것처럼 며느리 증상에 대해 의사에게 길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병원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다 받아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답니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워낙 예민해서 그런 것 같다고 며느리 탓을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환자와 단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잠깐 나가 계시라고 시어머니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말을 꺼냈습니다.

“시집살이가 힘드시죠? 저런 시어머니와 사시느라 숨이 막히시겠어요!” 그 말을 듣자 며느리는 눈시울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감의 힘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공감적 이해”(empathic understanding)라고 부릅니다. 마음이 힘들고 지치고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알아주고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인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할 때 가르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돼’ ‘이런 방법을 한 번 써봐’라고 말하면서도 방법과 비법을 알려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는 ‘저 사람은 나를 몰라’ ‘저 분은 나의 사정을 전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도와주려는 의도와 다르게 상대편은 오히려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보다는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진정으로 들어주면서 ‘예, 그렇군요.’ ‘그러시겠어요.’ ‘그런 어려움이 있었군요.’ 등의 공감적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공감은 상대편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제3자의 입장도 관찰자의 입장도 아닌 같은 입장에서 듣고 인정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친구 욥의 소식을 들고 친구 셋이 찾아왔습니다. 도착해서 모든 재산 다 잃고 10자녀 먼저 보내고 몸은 악창으로 말이 아닌 친구 욥을 보자 한 말을 잃었습니다. 그저 함께 할 뿐입니다. 수일이 지나자 그들은 입을 열어 욥을 공격했습니다. 욥의 세 친구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가 프레너미(frenemy)일 것입니다. 2013년 2월 17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국가 부주석 자격으로 시진핑(Xi Jinping)이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때 LA 타임스는 시진핑 부주석의 도착을 ‘frenemy’가 왔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뜻은 친구이자 경쟁자, 더 정확히 말하면 친구이자 적을 말합니다. 2009년 3월에 출간된 최종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정식 표준어로 사전에 수록된 단어입니다. frenemy(friend 친구+ enemy 적)의 합성어입니다. 친구이면서도 적이 될 수 있다. 동맹국이 적국이 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어제까지는 아주 다정하고 좋은 친구였지만 갑작스럽게 한 순간에 나를 시기하고 질시하고 나를 반대하는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동안은 좋은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적으로 돌변하는 관계, 이걸 프레너미(frenemy)라고 합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이야말로 frenemy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먼 거리에서도 고난당한 친구 욥을 위로해주러 찾아온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그들은 욥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적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욥의 친구들은 욥의 아픔을 공감하는 대신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욥을 가차 없이 가혹하게 공격하는지 그 내용이 우리가 읽은 4장부터 26장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욥에게 얼마나 가혹한 공격을 연발하는지 욥기는 갈수록 과격해집니다. 처음에 욥을 위로했던 고마운 친구들이 가면 갈수록 욥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내용이 전개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욥기의 문맥이 3단계로 진행된다고 정리해줍니다. ① 논의(discuss), ② 논쟁(debate), ③ 논박(dispute)입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논의로 시작합니다. 왜 욥에게 이런 아픔이 있는가? 부드럽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점점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마지막에는 잔혹한 논박으로 악화됩니다. 세 명의 친구들이 고통 중에 있는 욥을 몰아붙이는 모습이 마치 권투 선수가 그로기(groggy) 상태에 있는 상대방에게 펀치를 무차별 날리는 것 같습니다. 세 명의 친구들이 언어폭력으로 욥을 집단 구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욥을 도와주러 왔으나, 점점 더 욥에게 해를 끼칩니다.

 

오늘 본문 1절 보세요.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말하기 시작합니다. 맨 처음에는 최고연장자 엘리바스가 욥의 현실에 대하여 공박하기 시작하는데 엘리바스는 욥의 기개를 꺾으려고 4장, 15장, 22장에서 세 차례나 욥을 잔혹하게 윽박지릅니다. 그 다음에는 빌닷이 옛 성현들의 좋은 교훈을 인용하여 아주 유식하게 욥을 권위적으로 누릅니다. 이게 8장, 18장, 25장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소발이 가장 단호하면서도 독선적으로 깔아뭉갭니다. 얼마나 잔혹하고 거세게 윽박지르는지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11:6절 보시면 ‘너는 고생해도 싸다.’ 얼마나 가혹합니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충고해 주다가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위해 말해준다면서 오히려 상처를 줍니다. 그야말로 상처 난 부위에 소금을 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욥기의 구조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충고하다가 경고로 발전되고 나중에는 선고까지 갑니다. 하나님께서 왜 오늘 우리에게 욥기를 주셨을까요? 우리가 살면서 상처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지를 숙지하라는 깨우침의 메시지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가정으로 충고해주느냐 보다, 어떤 가슴으로 위로해 주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욥기에서 들려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가혹하게 공격하는 대신에 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함께 아파하고 같이 서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1. 약점을 건드리지 않고 칭찬할 때 공감할 수 있습니다.(3-6절)

 

욥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친구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그동안 욥이 훌륭하게 살아온 점을 칭찬하기보다는 야단부터 칩니다. “욥아, 너 정말 대단하다. 이런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있니? 참 대단하구나! 우리 같으면 그렇게 못할 텐데.. 역시 너는 대단한 신앙인이야”, 이렇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가혹하게 나무랍니다. 지금 욥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욥이 신앙적으로 조금 약해졌어요. 흔들리고 있어요. 이 모습을 보자마자 욥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3절 내용입니다. 그 동안에는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상담해주던 네가 욥 아니야, 그런데 이제는 너에게 힘든 일이 생기니까 스스로 맥을 못 추는 약골이 되었다고 나무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5절)

욥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짓밟은 것입니다. 그들은 욥이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더욱 가중시키고, 정신적 고통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오늘 우리도 칭찬보다 책망을 먼저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잘한 것을 칭찬하지 않고 잘못한 것부터 지적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때로) 작은 잘못을 너무 난도질하여 그 사람이 더 큰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기를 꺾어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은 실수를 눈감아 주기보다는 침소봉대(작은바늘을 큰 몽둥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서 말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장점이 85%이고, 약점이 15% 밖에 안 된답니다. 그런데 약점 15%가운데 10%는 전혀 문제 삼을 것이 아니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점을 무시하고, 장점을 활성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잘 못하는 것을 지적하기보다 잘하는 것을 칭찬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소아시아의 7교회에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잘못과 약점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저들이 잘한 것을 칭찬하십니다. 네가 이런 저런 일을 참 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잘못이니 고치라는 것입니다. 선 칭찬, 후 책망입니다.

우리는 비난(sarcasm)보다는 받쳐줌(support)이, 이론(logic)보다는 사랑(love)이, 충고(advice)보다는 인정(affirmation)이 필요합니다. 약점을 지적하기보다 장점을 칭찬해주는 따뜻한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비지심보다 긍휼지심이 풍성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점을 건드려 절망감을 느끼게 할 것이 아니나, 아픔을 공감하므로 희망을 품게 해주는 가슴 따뜻한 위로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세워 줄 때 공감할 수 있습니다.(7-11절)

 

욥의 친구들은 욥이 겉으로는 경건한 체했지만, 남모르게 죄를 범한 것이 있어서 천벌을 받았다고 정죄합니다. 그들은 모두 색깔이 똑같은 안경을 끼고 욥을 심판하기 시작합니다. 욥이 당한 패가망신은 그가 남모르게 지은 죄 때문에 심판받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과응보의 법칙”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욥을 정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슬(언행 따위가 독이 올라 날카로운 기세)이 퍼런(얼굴이 아주 푸르스름한 것) 하여 욥을 사정없이 때려잡기 시작했습니다. 욥의 가슴에 비수를 꽂습니다. 그들은 고통 중에 있는 친구를 동정하고 위로하기보다, 그를 마음껏 깔아뭉갰습니다. 그들은 상상과 가정으로 욥을 정죄하며 죄를 뒤집어 씌었습니다. 욥에게 남아 있는 기력마자 단칼에 베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쁜 충고일수록 상대방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기를 꺾어 버립니다.

 

이것이 욥의 친구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간혹 병원에 문병을 가든지 고통당하는 사람을 방문할 때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집사님, 이번에 입원하면서 마음에 가책되는 것이 있지, 뭔가 집히는 것이 있지, 이번에는 꼭 깨달아야 해!’ 심방 가서 자기가 선지자가 되어 가지고 잘 생각해 봐, 이번에는 이렇게 아프게 된 것이 뭔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시고 위로하는데 힘을 쓰는 가슴 따뜻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과 함께 성품개발을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보면 사역보다 사람됨이 우선이다. 일보다 인품이 더 중요하다. 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에게 먼저 심령이 가난한 성품, 애통하는 성품, 온유한 성품 등 복된 성품의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이 바로 산상 설교입니다. 우리는 정죄하는 대신 함께 아파할 줄 알아야합니다. 먼저 공감하고 동정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잘못을 비판하거나 심판하는 대신 오히려 긍휼히 여겨 주시고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공격대신 공감을 해주십니다.(요8:11절, 12:47-48)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율법에는 돌로 치라 했는데 선생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물을 때 죄 없는 자가 치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기를 원합니다. 사랑과 긍휼이 온유와 겸손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감하며 위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공감능력을 키워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약점을 건드리는 자가 아니라 칭찬하는 자가 되시고, 정죄하는 자가 아니라 세워주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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