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영일목사

[스크랩] 열왕기상 13:26-34 강해 24

열왕기상 13:26-34 강해 24

 

사마리아의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속여 하나님의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식사 후 하나님의 사람은 길을 떠났고 가던 도중 그가 사자를 만나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늙은 선지자는 접하게 됩니다. 소식을 들은 늙은 선지자의 말입니다.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붙이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6)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얼마나 불명예입니까? 그의 죽음은 늙은 선지자의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죽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볍게 여겨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말씀하지도 않았는데 지어내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거짓말을 한 늙은 선지자나, 하나님을 버리고 배교와 우상숭배에 빠진 여로보암 왕과 북 이스라엘은 어쩌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너희들도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그러니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무거운 메시지가 그의 죽음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은 이지선 양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가 사고 후 6개월쯤에 자기 얼굴을 보았을 때 외계인으로 보였다고 고백합니다. 40번의 수술을 하여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도 정상은 아닙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왜 살리셨나요? 살리셨으면 대책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입니까? 식의 기도를 할 때 “너는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딸이다. 암흑과 절망에 있는 자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라.”는 음성을 듣고 평안과 삶의 목적을 찾았다 고백합니다.

 

성도 여러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면 기적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병을 고쳐 주심에도, 고난 중에도, 살아 있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함에도, 평범한 일상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늘 낮은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27. 이에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안장을 지우매 28. 저가 가서 본즉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섰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떠들어 나귀에 실어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그를 위하여 슬피 울며 가로되 오호라 나의 형제여 하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저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늙은 선지자는 급히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시체 곁에 있던 사자가 시체도 나귀도 먹지 않고 긴 시간 시체 곁에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임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시신을 나귀에 실고 와서 장사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을 불러 부탁을 합니다.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합장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늙은 선지자가 왜 이러한 부탁을 자기 아들에게 했을까요?

 

①너무 미안해서일까요?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죽었으니 미안해서 그럴까요? 그럴 법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미안하다고 자기 뼈를 그 사람 곁에 묻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②존경하는 마음으로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 존경의 표시를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부탁을 하였을까요?

 

③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기 아들들에게 자기의 뼈를 부탁한 후에 늙은 선지자 입에서 나온 고백을 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32절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늙은 선지자는 죽은 하나님의 사람이 왕 앞에 와서 외쳐 말한 것 즉 나중에 유다나라에 요시야라는 왕이 등장해서 북쪽에 와서 이 단들을 다 훼파시키고 제사장들을 다 죽이고 먼저 죽은 제사장들의 뼈들을 다 추려서 이 단 위에 불살라 모욕을 당하게 만들 것이라고 외친 그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나란히 두면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선지자이지만 유다에서 온 진짜 레위사람이요, 하나님이 보내셔서 하나님이 말씀을 전한 진짜 선지자이므로 나중에 요시야 왕이 모든 제사장들의 뼈까지 불살라서 모욕을 줄 때에 이 선지자의 뼈는 불살임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불살임을 입지 않기 위해 뼈를 그 선지자의 뼈 옆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는 후에 일어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거짓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일어난 일들을 보며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믿은 대로 되었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23장 15절부터입니다.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 뼈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5-18)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살던 그 늙은 선지자의 뼈는 불살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수백 년 전에 그 늙은 선지자가 말씀을 믿고 이것을 깨닫고 자기 뼈를 유다 선지자 뼈 옆에 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붙잡고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이아침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1. 분별을 잘 해야 합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지어낸 거짓말인지, 성령의 역사인지, 악한 영의 역사인지 말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기도할 때 베드로를 청하라는 천사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는 지시대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대합니다. 베드로 역시 기도할 때 환상과 음성을 통해 그들의 청에 응하라는 확답을 갖게 됩니다. 그는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함을 보고 깜짝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주 중요한 일은 한쪽만이 아닌 양쪽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응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가서 먹고 마시라는 주의 말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늙은 선지자의 지어낸 말을 쉽게 믿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잠시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드렸어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다른 사람에게만 말씀하시겠습니다. 당사자도 알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분별하는 지혜, 영을 분별하는 성령의 은사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붙잡고 아브라함처럼 따라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창12:1, 4)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지만 따지고 보면 ‘오라’하신 말씀 위를 걸었던 것입니다. 히11장 믿음장에서 믿음으로 향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결국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 반면 실패한 사람들은 말씀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사울 왕도 말씀을 버렸습니다. 롯의 사위들과 처 역시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가볍게 여겼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리했습니다. 여로보암도 말씀을 떠났습니다.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구체적으로 여로보암은 금송아지와 산당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레위 족속 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보통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단이 갈라지는 예조와 자신의 손이 회복되는 기적과 나귀와 시체에 관심 없고 심판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기만 한 사자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늙은 선지자는 깨달았지만 여로보암과 그 백성들은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악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말씀을 버리고 우상숭배라는 큰 죄를 지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고 돌이켜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최후는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34) 무서운 심판, 멸망뿐입니다. 그러니 비록 잘못했더라도 죄에 대해 애통하면 살 길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마5:4) 인생은 누구나 연약하여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다윗처럼 회개하면 용서와 살 길이 있습니다. 변명과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다면 심판과 멸망뿐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결국 한 말씀만이라도 생명줄처럼 붙잡은 사람들은 믿음장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처럼 성공하지만 말씀을 버리거나, 떠나거나 풍성한 말씀 시대에 한 말씀도 붙잡은 말씀이 없다면 실패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붙잡은 말씀으로 기도해야 힘이 있습니다. 붙잡은 말씀 위를 걸어가야 안전하고 그 길의 끝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이제부터 말씀 붙잡고 말씀 안에서 기도하시고 응답 받으시고 붙잡은 말씀대로 당당히 살아 말씀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