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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53:4-6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

사53:4-6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

 

미국 장로교 잡지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어느 분의 간증담입니다.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천국을 이리 저리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정말 신비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1860년 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찍 온 셈이지요. 나는 바울 시대에 로마에 살았습니다. 나는 예수를 잘 믿고 있었습니다. 네로가 나를 잡아 기둥에 매두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굶어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지나도 죽지 않으니까 내 위에 장작을 쌓더니 불을 질러 나를 죽였습니다.”, “그 때 얼마나 무서웠었습니까?”, “아니요. 도리어 기뻤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내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나도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때 한없이 기뻤었습니다.”천국을 구경하던 그는 자기 신앙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또 한 사람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귀하는 어디서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 “나는 하늘나라 이곳에 온 지 수백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 남해 에로망가 섬에서 왔습니다. 식인종 민족입니다. 죤 윌리암 선교사가 그 섬에 와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왜 그렇게 확실하게 믿어지는 지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는 그 후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종족들이 선교사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도 잡아서 나무에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기진맥진할 때까지 팼습니다. 그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와서 보니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빠갰습니다. 그리고 나를 요리하여 먹었습니다.”“저런 끔찍한 일이 있나?”, “아니요. 당신이 보기에는 끔찍하여도 나는 기뻤습니다. 윌리암 선교사는 나에게 예수님은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으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때 믿음을 끝까지 당당하게 지킨 것을 나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윌리암 선교사와 같은 분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였습니까?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신 예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헌신하며 살고 계십니까?”그는 이런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있었습니다. 그렇게 물어 본 이는 슬픈 얼굴을 하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몇 시간동안 울면서 회개하면서 자기 생활을 점검하여 보았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헌금 드리는 데는 인색하였고 좋은 옷을 사는 데는 아낌없이 돈을 쓰지 않았는가? 나는 놀러 다니는 데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예배드리는 데 시간을 얼마나 바쳤는가? 나는 육적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것이라면 다 사먹으면서 영적 건강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였고 영적인 책을 사보았는가?”

 

특별한 꿈이 준 영적 성장이었습니다. 저도 2주 동안 아프면서 바쁘고 건강할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했습니다.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의 편지를 보면서, 그들의 귀한 고백을 글로 보면서 그 안에 있기에 보았고 느꼈고 깨달아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밑바닥에서 홀로 있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유익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우리는 아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고난주일, 종려주일입니다. 내일부터는 고난주간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일은 부활절입니다. 먼저 고난의 십자가가 있어야 고난의 열매인 영광의 부활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고난은 대속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나 허물 때문에 당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죄인 된 여러분과 저를 위해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5, 6절입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나’입니다.

그가(예수님이) 찔림은 우리의(나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예수님이) 상함을 우리의(나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나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나는) 나음을 받았도다”(5절)

우리는(나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나의) 죄악을 그에게(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도다”(6절)

 

맞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바로 나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나에게 평화와 나음을 주시기 위한 대속적 고난입니다. 허물과 죄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도끼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도끼로 나무를 패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날아가 지나가던 사람 머리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것이 허물입니다. 같이 도끼로 사람을 죽였어도 일부러 죽인 것은 죄이고, 실수로 죽인 것은 허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허물도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내 대신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모두 나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고난주간에 나를 위해, 나 때문에, 나를 살리려 내 대신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시고 그 은혜를 마음 깊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대신                  박영일 목사

 

내가 느껴야 할 무거운 죄의 짐을

내 대신 주님이 느끼시며 고뇌하셨나이다.

 

내가 밤새워 받아야 할 심문을

내 대신 주님이 힘들게 받으셨나이다.

 

내가 맞고 맞아야 할 채찍을

내 대신 주님이 온 몸에 맞으셨나이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 길을

내 대신 주님이 피땀 흘리며 걸으셨나이다.

 

내가 받아야 할 수치와 모욕과 멸시천대

내 대신 주님이 모두 다 당하셨나이다.

 

내가 죄 값으로 죽어야 마땅하나

내 대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나이다.

 

나를 살리려 주님이 대신 그리하셨나이다.

 

 

2. 예수님의 고난은 자청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은 자초한 고난입니다. 힘이 없어서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고난은 스스로 당한 고난이라고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7-18)

 

예수님은 자청하여 찔리셨습니다. 가시 면류관에 찔리셨습니다. 창에 찔리셨습니다. 채찍에 찔리셨습니다. 못에 찔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위해 자청하여 찔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청하여 상하셨습니다. 가시 면류관으로 머리가 상하셨습니다. 채찍으로 온 몸이 상하셨습니다. 못이 박힘으로 손과 발이 상하셨습니다. 창으로 찌름으로 옆구리가 찢어져 상하였습니다. 그가 상함은 바로 나의 죄악을 위함입니다. 나의 자범죄와 원죄 때문에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징계를 받았습니다. 빌라도에게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가야바에게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로마 병정들에게 끌려가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자청한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약 3시간동안 채찍에 맞으시고 약 9시간동안 피가 흘렀습니다. 이는 우리 병을 고쳐 주시려는 고난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고난은 우리를 위해 자초하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그 무리들이 (복음성가)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밖았네 녹슨 세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눈물로 기도했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비 웃는 저 무리들 주의 옷 벗긴 후에 주님 몸 깊이 찔렀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때 구원을 이루셨네

마지막 피 한방울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시골 농부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부인은 늘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에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 닭장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는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글쎄 이게 웬일인가? 그 암탉이 죽어 있었습니다. 농부가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저 머리에 난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이 암탉이 몸에서 피를 다 빨아먹었는데도 이 닭은 족제비가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죽었습니다.”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저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느라고 십자가 고통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는데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이며,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에 나를 위해 고난을 대속하시고 자청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고난이 전부 나를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이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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