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영일목사

[스크랩] 민14:1-12 8주 ‘감사와 전도’⑦

민14:1-12 8주 ‘감사와 전도’⑦

 

감사로 기적을! 감사로 전도를! 전도로 부흥을! 인사합시다.

진짜 감사 잘하는 성도(목사)님 되세요.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사건은 하나의 결과로서 그 전후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를 가리켜 인과율(因果律)이라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행복한 일에 대해서는 원인을 생각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네가 이렇게 행복한데 이 행복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어떻게 되어서 내가 평안하고 복되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반면 불행할 때에, 아플 때에, 실패할 때에, 고통을 당할 때에는 원인을 곧잘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원인을 어디로든지 돌려보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원인을 나 자신에게 돌릴 때에는 후회가 따릅니다. 이것은 내 잘못이다, 그때에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더 열심히 할 것을,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미 사건은 굳었습니다. 심어놓은 것이니 거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원인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결과는 부득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후회라고 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런가하면 원인을 나 아닌 다른 사람, 이웃에게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원망이 나옵니다. 누구 때문에 내 생이 망쳐졌다, 누구 때문에 내 팔자가 이 모양이 되었다, 아무개가 원수다 하면서 늘 원망합니다. 이것은 증오로 이어집니다. 일생을 두고 이를 갑니다. 말끝마다 원수, 원수하며 삽니다. 원인을 나 아닌 이웃에게 귀속시키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원인을 사회로 돌리는 것입니다. 어느 개인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적인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원망하고 사회를 탓합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기 좋아합니다. 내가 잘못된 것은 다른 사람 탓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그 사람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나의 불행은 그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는 것이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성격 탓이며 그들이 게으르고 악하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귀속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성향입니다.

 

여러분, 원망이라는 것은 ①상승작용을 합니다. 나의 조그마한 사건에 대해서 원망하다보면 형제를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데까지 올라갑니다. 모든 원망은 하나님께 도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상승작용을 합니다. 또한 원망이라는 것은 ②확산 작용을 합니다. 자꾸 퍼져 나갑니다. 내가 저를 원망하면 저도 나를 원망합니다. 원망에 대한 응답은 또 다른 원망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원망 대신 감사를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원망하지 않고 감사를 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안타까운 장면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로 최대의 영광을 누리던 루시엘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영광을 못 받는다는 것을 불평하였습니다. 마침내 반역을 꾀하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마귀가 되었습니다.

사14:13~14에 보면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지음을 받은 천사장이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탐욕을 품고 원망, 불평하다가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습니다. 천사장이라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갖고 불평을 합니다. 여러분, 탐욕이 있는 곳에는 불평불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족이 있는 곳에는 감사가, 감사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만약 천사장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만족하며 감사하였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좋았을까요? 탐욕 대신 만족하시고 불평 대신 감사를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② 아담과 하와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하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와에게 접근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하나님이 왜 너희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느냐. 너희들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샘을 내어서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이 거짓말에 흔들립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였구나.’ 전혀 부족함이 없을 곳에서 욕심이 생기고 은근히 불평이 생깁니다. 그들은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준 모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먹지 말라하는 선악과 하나에 욕심을 품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마귀는 우리에게 불평과 원망을 심기 위해 없는 것들을 들먹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있는 것들에 자족하고 감사하는 성숙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농부가 타작을 하면서 “금년 채소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하나님이 왜 채소 농사를 망하게 하셨느냐!” 불평을 하니까 친구가 있다가 “자네 감자 농사도 망했나?”라고 묻자. 그 농부는 “아니야. 잘됐지.” 그럼 “벼농사는?” “풍년이지.” “옥수수 농사는?” “잘되었지.” 그러자 친구가 “그런데 왜 자네는 잘된 감자 농사, 벼농사, 옥수수 농사는 감사하지 아니하고 꼭 안 된 채소 농사만 가지고 원망, 불평 하는가? 자네 그러다가는 다른 것도 다 뺏길 걸세.” 그 말을 듣자 농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야 되겠다.’고 표정을 바꾸고 잘되고 있는 것들을 감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불평하다가는 다른 것도 다 뺏길 걸세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일에 들려 준 예화 생각나실 것입니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 부잣집에서 머슴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별명이 있습니다. 늘 감사한다고 하여서 ‘감돌이’입니다. 무슨 일을 시켜도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엇을 주어도 받으면서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여서 사람들은 좀 모자란 푼수라고 생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고 진실하고 정직하여서 사람들은 그를 바로 된 청년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인도 이 감돌이의 성실에 놀라며 늘 사랑을 주었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공부도 못 하고 가난하게 살았기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목축을 하다가 소나 돼지가 비실비실하면 주인이 말했습니다. "다른 것도 병들지 않게 버리게." 그러면 자기가 갖다가 잘 기르면 모두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인은 그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자네 내 외동딸과 결혼하여 내 사위가 되어 주게." 그는 또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부잣집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주인인 늙어 세상을 떠날 즈음에 조용히 사위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 재산을 모두 자네에게 상속하겠네."

그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감돌이는 "감사로 모든 것을 다 먹었다."

 

계속 불평하면 다른 것도 다 뺏깁니다. 반면 감사하면 모든 것을 다 먹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그늘진 곳을 찾으려면 나무 밑에도 그늘이 있고 다리 밑에도 그늘이 있고 지붕 밑에도 그늘이 있고 사람 옆에도 있습니다. 그림자를 찾으려면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반면 햇빛을 찾으려면 광장에서도 햇빛이 비취고 길거리에도 햇빛이 비취고 집밖에도 햇빛이 비취고 산비탈에도 햇빛이 비취고 햇빛은 어딜 가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늘이라는 불평을 찾아다니시겠습니까. 아니면 햇빛이라는 감사를 찾아다니시겠습니까. 개개인의 몫입니다. 원망불평보다는 감사를 선택함이 우리의 행복인 줄 믿고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우리는 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그들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해방과 자유를 주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원망을 했습니까?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들을 보고 우리를 ‘장지가 없어서 이곳에 장례 지내려고 데리고 왔느냐?’고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건너게 해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수르광야에 들어가서 사흘을 걸었는데 물이 없으니 우리를 목말라 죽이려고 데리고 나왔냐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쓴물을 나뭇가지를 꺾어서 던져 달게 만들어서 마시게 해주셨습니다. 신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은 만나를 보내어서 배불리 먹게 해주었습니다. 르비딤에서는 또 물이 없다고 불평하자 하나님은 바위를 처서 물이 나오게 해주었습니다. 디베라에서는 악한말로 불평하고 고기가 없어 영양실조가 되어 못살겠다고 불평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메추라기를 보내어서 다 고기를 배불리 먹게 해주셨습니다. 그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12정탐꾼을 보냈는데 사십 주, 사십 야 정탐하고 와서 10명이 무시무시하게 그 땅을 악평해서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반역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처에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들은 오늘 말씀을 보니 밤을 새워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셔서 인도, 공급, 예비, 도와 주셨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만 일일이 찾아서 하나님 앞에서 원망, 불평,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을 참지 못할 정도로 원망불평으로 하나님을 괴롭혀서 심판을 받아 결국 버림을 당하고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다 죽고만 것입니다. 이처럼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민14:27~30)

 

어느 장군이 전쟁준비를 잘하였는데 당일에 그만 비가 와버리는 바람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잔뜩 화가 난 장군은 "비를 오게 한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졌다. 하나님을 향해서 화살을 쏘아라!" 하고 장병들에게 명령했습니다. 하늘을 향해서 쏜 화살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되돌아와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원망불평의 대가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훈련의 땅, 광야에서 힘들겠지만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감사에 실패했습니다. 여러분은 광야에서 감사에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항상 불평을 유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불평을 하게하여 하나님의 노하심을 당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불평과 원망을 굉장히 미워하십니다. 멸망할 정도로 싫어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9~10)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감사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를 기쁘게 만들고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부르지만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의 능력, 말씀의 능력을 믿고 감사로 승부를 걸고 말씀을 이루시고 기적과 은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