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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9:26-31 성숙한 교회

행9:26-31 성숙한 교회

 

어느 교회 사택에 도적이 들었습니다. 잠자던 목사님이 도적의 침입에 놀라 일어나 손을 들었습니다. 도적이 낮게 말했습니다. "손을 들고 꼼짝하지 말어!" 목사님은 손을 들고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순순히 말할 때 있는 것 다 내놔!" "가진 것은 보시는 바이고, 돈은 없습니다." 칼을 들고 위협하던 도적이 두리번거리며 살폈습니다. "목사 집이 왜 이렇게 가난해?" 투덜거리며 도적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손들고 있는 것이 안쓰러운지, 도적은 "손 내리고 앉은 채로 차렷!"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꼼짝 않고 손을 내리고 차렷 자세로 있었습니다. 도적은 목사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기도 하고 서랍을 열기도 하고 곳곳을 찾아 봐도 아무 것도 없으니까 실망한 듯 나가면서 이렇게 말을 던졌답니다. "나를 위해 좀 모아 놓고 사시오!" 도적이 떠나고 난 후 목사님은 무릎을 꿇은 채, 이렇게 회개 기도를 올렸습니다. "나는 오늘 밤 도적에게 꼼짝 못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주여, 평상시 내가 도적에게 순종한 만큼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얼마나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교회가 무엇 하는 곳입니까?" 교회가 무엇인가를 잘 모르면서 묻는 사람들에게 교회란 이런 곳입니다 하고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오늘은 이런 질문의 답을 본문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소는 뿔이 있습니다. 그러나 뿔이 났다고 다 소는 아닙니다. 교회가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말한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가 봉사도 하고 구제도하고 친교도 하지만, 봉사하고 구제하고 친교 한다고 해서 다 교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결과에 의해서나 외형적으로 나타난 모양에 의해서 교회됨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몇 가지로 오해가 있습니다. 에밀 브루너의「교회의 오해」라는 책에서도 여러 번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선, 교회를 학교(institute)로 오해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룹별로 여러 가지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배웁니다만 그것 자체를 교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공부와 교회는 별개입니다. 진리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서 교회를 학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헬라식의 판단입니다.

 

둘째, 친교(koinonia, fellowship)하는 곳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친교 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은 망상입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만, 이것이 결코 교회의 본질은 아닌 것입니다.

 

셋째, 교회를 자선사업 단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를 향하여 "도대체 교회가 무엇하고 있느냐?"고, 교회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야단을 합니다. 자신들은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교회가 돈을 쓰지 않고 무엇 하느냐고 원망인 것입니다.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는 구제할 뿐이지 구제를 위한 기관은 아닙니다.

 

넷째, 불의에 항거하는 어떤 저항 단체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세군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W. Booth)에게 어느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교회의 위험과 시련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교회가 중생 없는 용서를 전하는 철학적 기독교가 될 것을 가장 염려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대자대비를 논하자는 곳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중생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구원이 우선입니다. 철학적 기독교, 즉 진리를 지성화하고 지식화해서 추상화해 버리는 함정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숙한 교회됨의 본질적 의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중생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있으면 반드시 중생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담배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거나 술 먹던 사람이 술을 끊으면 중생 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게 변하기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장한 일로 봐 줄 수는 있습니다만, 그런 것이 중생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던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중생 했다고는 볼 수 없단 말입니다. 중생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의 예를 사도행전 9장에서 들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신봉한 사람으로, 자기가 아는 율법적 지식에 의해서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에 의하면 기독교인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예수 믿는 자들을 때려죽였고, 또 잡아들이기 위하여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까지 내려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히 극성스런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의 삶이 통째로 바뀝니다.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키가 작았다고 전해집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대단히 야무진 데가 있었습니다. 길 한복판에서 대단히 충격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이 경황 중에서도 그는 "주여, 뉘시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 때에 주님은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한마디 하셨고, 여기에서 그의 생각과 마음은 완전히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가진 율법 지식으로 예수님을 보았는데, 이제는 예수에 의해서 율법을 보고 예수에 의해서 세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중심의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니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극적인 변화로 그의 생각과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지금까지 먹던 것을 안 먹게 되었다든지 직업이 바뀌었다든지 또는 생활이 좀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믿지 않았고 박해했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구원자로 믿는 신비로운 생명의 변화가 중생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입니다. 과연 나는 중생했는가? 구원 받았는가? 지금 죽어도 천국 가는가? 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구원자로 진정 믿습니까?

 

우리가 ‘믿는다’ 함은 이런 의미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어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사도신경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탄생)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죽으심) 부활하신 예수님을(부활),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재림)을 믿어야 합니다. 먼저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믿는 바를 입으로 고백함이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 고백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진정 믿습니까?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믿었다면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①자기만의 주관적 확신이 있고 ②객관적 확신이 있습니다.

 

①주관적 확신

“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6)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십니다. 성령이 오셔서 인치시고 보증하시며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②객관적 확신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1-13)

 

말씀을 통해 확인하고 확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구원의 확신을 감정, 체험, 느낌, 신앙의 정도의 차이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정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 성도라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구원의 확신 가지고 신앙생활을 힘 있게 더 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도 구원이 선행, 행위, 날을 지킴, 안 먹고 안 마심, 어느 단체에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구원’에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 받게 하는 사역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며, 교회의 본질입니다. 예수님 진정 나의 구주, 나의 구원자로 믿은 구원 받은 성도들이 술, 담배를 합니다. 구원 받았을까요? 주일을 성수하지 못합니다. 십일도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삶이 거룩하지 못합니다. 구원 받았을까요? 신앙생활을 쉬고 있습니다. 구원 받았을까요? 구원은 예수님을 진정 믿으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천국 갈 때까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맞습니다. 성도답게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했으면 회개하면서 끊임없이 그렇게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매일 매일을 말씀대로 사시고, 예수님을 닮아 가기를 목표로 기도하시면서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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