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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삿8:1-3 지혜로운 말

삿8:1-3 지혜로운 말

 

강국이 소국을 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국 왕은 싸워보아야 쑥대밭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사신을 보내어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막으라고 명하였습니다. 사신은 “무슨 말을 하여야 강국 왕이 전쟁을 그칠까?”고민하면서 강국으로 갔습니다. 강국 왕 앞에 선 사신은 “왕이시여! 내가 보니 우리 왕은 초승달 같고 대왕은 보름달 같은 왕이십니다. 보름달 같은 대왕이 초승달 같은 왕을 쳐서 무엇 하시겠습니까? 보나 마나 우리가 지오니 전쟁을 그만 두시지요.” 이 말을 들은 강국 왕은 기분이 좋아서 전쟁을 포기하였습니다. 전쟁을 그치게 하고 돌아 온 사신은 그대로 보고하였습니다. 왕은 수고하였다고 치하하면서 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상을 주자 말자 빼앗으면서 칼을 빼었습니다. “너는 전쟁을 끝낸 공로로 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를 무시한 죄는 사형이다. 저쪽 왕을 보름달로, 나를 초승달로 비유하며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그러니 너는 죽어 마땅하다.” 그 때 사신이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십시오. 보름달은 점점 작아지는 달이지만 초승달은 점점 커지는 달이 아닙니까?” 이 말을 들은 왕은 노가 풀렸습니다.

여러분, 말 한 마디로 전쟁을 그치게도 하고 말 한 마디로 노를 그치게도 합니다. 이런 지혜로운 말을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말을 잘 한 사람이 ‘말 잘한 사람’인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예수님 동상이 있습니다. 팔 하나만도 3톤이나 되는 큰 동상입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가 친선을 도모하며 평화의 상징으로 세운 예수님 동상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수님 동상은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팔을 벌리고 서 있습니다. 말하자면 칠레를 등지고 있는 것입니다. 칠레 정치가가 대중 앞에서 분노하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꼴입니까? 예수님 동상이 우리나라를 등지고 있습니다.” 군중들은 모두 분노하였습니다. 이 때 유명한 편집국장이 나서서 칠레 국민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조금도 노할 것이 없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은 잘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칠레보다 아르헨티나가 복음화가 덜 되었습니다. 더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칠레 국민들은 노를 풀었습니다.

 

세상에는 노를 품게 하는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품은 노를 풀게 하는 지혜로운 입술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운 입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주변에 미디안이라는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미디안은 얼마나 군사가 많은지 인해 전술을 썼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사사에게 300명 용사로 미디안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쫓겨 가던 미디안 군대는 에브라임 산지로 도망을 쳤고 기드온은 남은 적을 진멸시키기 위하여 에브라임 산지까지 추격했습니다. 이 때 그 곳에 살고 있던 에브라임 족속들은 그제야 전쟁에 동참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뛰어 든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를 베어 들고 당당하게 기드온 앞에 나와 하는 말입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삿8;1)

 

뒷북치고 있는 에브라임 지파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기드온은 이렇게 에브라임을 달랬습니다.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이 노여움이 풀리니라”(삿8:2-3)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에브라임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이 지혜로운 말씀을 통해 어떻게 말하면 상대방의 노가 풀리고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노한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화가 잔뜩 나서 두 방백 목을 들고 와서 말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기드온은 우리는 시작하였고 당신들은 잘 마무리하였으니 당신들이 더 잘했습니다. 라고 말해주었습니다.(삿8:2-3) 그들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이 말 한 마디에 에브라임 사람들의 노가 다 풀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나를 낮추면 감사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 분쟁과 다툼을 멈추게도 합니다. 항상 문제는 마음을 높여 내 중심이 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크린에게는 존경하는 스승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 스승은 학식도 많았습니다. 인격도 좋았습니다. 생활도 검소하였습니다. 그 스승 집에 들어가려면 문이 낮아서 머리를 많이 숙여야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프랭크린이 인사차 스승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들어 갈 때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가 프랭크린은 돌아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시간에 깜박 고개를 푹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나가다가 머리를 문에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스승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부딪치는 일이 많을 걸세. 그러나 스스로 머리를 푹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을 것일세.”

그 후 프랭크린은 인간관계에서 부딪칠 일이 생기면 늘 스승의 이 말이 생각이 나서 스스로 낮추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포용성이 있는 정치가로 소문이 나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상대방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자세와 말로 상대방의 노를 풀고 인간관계를 바로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가난한 심령을 원하십니다. 낮은 마음으로 주를 찾는 자를 기뻐 받으신 줄 믿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123번)

 

 

2. 상대방을 인정 해 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노하였을 때 그들을 인정 해 주는 말을 하였습니다. 뒷북치고 있지만 지혜로운 말로 그들의 작은 노고라도 알아주고 인정 해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에브라임도 알아달라는 소리이며 요구를 한 것 같습니다. 세상사가 알아주고 인정 해 주면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더 시끄러워지지만 기드온처럼 인정하고 알아주는 말로 품는다면 하나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남자(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민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를 알아줄 때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나 좀 알아달라는 부르짖음이 안 들리시나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꽃                         -김춘수(金春洙):1922-200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여러분, 오늘부터는 작은 고생이든, 큰 고생이든 수고하는 이들의 수고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감사하고 알아주는 따뜻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외롭고 힘들고 두려웠지만 견디어내며 아이들을 잘 양육, 교육시킨 어머니들, 무거운 짐과 마음의 상처로 지치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살아온 이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존심 상한 일들 많았지만 헛생각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신 분들, 사람들에게 치워 심신이 힘들지만 그래도 이기며 자기 길을 가는 분들, 장남으로서, 학생으로서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길 험하고 81번)

 

목회자와 성도 관계가 마찬가지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5:12, 13)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귀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제 부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하고 좋은 관계 유지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을 지혜로운 말로 노를 풀어 주었는데 이런 똑같은 일이 사사 입다 시절에 또 한 번 일어났습니다.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입다가 생명을 걸고 나가서 싸웠습니다. 그 때에도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가만히 있다가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자 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삿12:1)

 

입다는 달랐습니다. 기드온처럼 지혜로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입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삿12;2-3)

 

그리고 건방지다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 날 에브라임 지파 사람 4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 되게 만들었지만, 입다는 에브라임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 될 것인가? 싸울 것인가? 기드온이 될 것인가? 입다가 될 것인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럼, 우리 하나님은 어느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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