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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영일목사

[스크랩] 시119: 67, 71 고난이 유익입니다.

시119: 67, 71 고난이 유익입니다.

 

한 왕이 유명한 역사학자들을 다 불러 모아 "세계사를 한권으로 압축해서 올려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역사학자들은 모여서 열심히 세계사를 압축하여 한권의 책으로 갖다 놓으니 왕이 보시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이것은 너무 두꺼워서 읽을 수가 없다. 반으로 줄여라." "아이고 누가 이것 다 읽겠느냐. 또 반으로 줄여라." "이것도 너무 두꺼워서 못 읽겠다." "또 줄여라" 그래서 나중에 종이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또 반으로 주려. 또 가서 반으로 줄였습니다. 또 주려라. 그리고 자꾸 줄이니까 나중에 세계 역사가 한 줄이 되었습니다. 그 한 줄이 뭔지 아십니까? “인류역사는 고난의 역사였다.”학자들이 종국적으로 임금님에게 바친 축약된 역사기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을 사는 우리 인생은 여러 가지 고난으로 인해 가슴에 아픔과 상처, 사연 하나씩 다 담고 살아갑니다. 굽이굽이 사연들이 있고 듣고 있으면 내용은 구구절절 합니다. 무게와 크기가 좀 다를 뿐이지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상처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조개 속 진주입니다. 진주는 땅 속에서 파내는 것이 아닙니다. 조개껍질 속에서 자라나는 보석입니다.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은 여인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모래알 같은 딱딱하고 조그마한 이물질이 조개 속에 들어오면 조개는 너무 아파서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조개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개는 자신의 몸속에서 나오는 유체(流體)로 그 이물질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한 겹을 감싸고 나서 그것이 굳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또 한 겹을 덮습니다. 이렇게 해 가면서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그 아픔의 유체덩어리가 바로 아름다운 진주인 것입니다. 고통이 주는 유익, 고통이 주는 축복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아픔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고난이 유익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시련과 아픔이 찾아올 때 ‘내가 지금 값진 진주를 만들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당하는 시련이 크면 클수록 ‘내가 만들고 있는 진주는 더 크고 값지겠구나!’라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흘리는 아픔의 눈물이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진주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맹자도 깨닫고 말하기를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한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힌다.” 맞습니다. 성경 잠언17:3절에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인생의 마음을 고난을 주어 연단하십니다. 우리는 이 연단을 통해 지혜를 얻기도 하고 예수님 닮은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모난 부분은 잘라내시고 다듬어 아름다운 성품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소망이 있는 것은 상처 난 풀잎이 향기로운 법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도 향기 있고 아름다운 성도, 주님을 닮아가는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이아침 고난이 어떤 유익을 주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난은 나를 알게 해 줍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의사인 폴 투르니에가 저술한 ‘창조적 고통’이라는 책에서 그는 많은 환자들, 특별히 정신과 환자들을 상담하고 한평생을 지내면서 깨달은 것을 말합니다.

"현대 환자들의 중증은 바로 자기상실감이다. 용기부족이다. 어느 사이에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돈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명예를 잃어버린 게 아니고 건강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기 상실감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왜 자기를 잃어버렸는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나'라고 하는 존재를 찾게 해 줍니다. 내가 당한 고난이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 바로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눅 15장에 등장한 탕자가 고난 받기 전에는 자신을 모릅니다. 부자 아버지를 둔 잘 나간 둘째 아들 정도입니다. 그는 아버지 돈만 있으면 다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아버지께 유산을 요구합니다. 마침내 아버지를 이겨 유산을 챙겨 먼 나라로 떠납니다.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삽니다. 돈이 다 없어지고 흉년이 찾아 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자기 힘으로 이겨 낼 수 없는 고난을 받게 됩니다. 능력 밖의 일을 만났습니다. 이제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돼지보다도 못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고난을 통해 형편없고 죄 많은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비가 오면 어느 곳에서 비가 새는가를 알 수 있듯 고난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유익인 것입니다. (유산 된 조카를 위해 고난주간에 지은 시)

 

나로 보게 하소서! / 神前 박영일 목사

 

하나님!

아픔을 통해

홀로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음성 듣게 하시며

이제껏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하소서!

 

아버지!

고난을 통해

높은 마음 평지 되게 하시고

허탄한 자랑 버리게 하시며

내가 쌓아 올린 바벨탑은

무너지게 하소서!

 

주님!

눈물을 통해

모든 것이 진정 소중하고

주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으며

하늘 아래 여전히 인생임을

알게 하소서!

 

주여!

골짜기를 통해

주님의 선한 뜻을 보고

참 좋으신 하나님 만나며

인생을 배우는 작은 나를

보게 하소서!

 

고난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벗기고 지혜를 얻게 합니다. 혹자가 말하기를 “역경이 지고 물러날 때는 돈보다 귀한 지혜라는 선물을 남겨주고 간다.” 고난은 우리로 높은 마음을 낮추어 겸손하게 만듭니다. 자아가 깨어지고 부서집니다. 고난은 우리로 인생임을 알게 하고 우리의 인격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정금 같게 만듭니다. 고난은 인격에 흔적을 남깁니다. 또한 고난은 신앙을 아름답게 합니다. 고난은 나로 회개케 하여 하나님을 찾게 합니다. 고난을 통과한 사람의 말과 인격은 분명 다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2. 고난은 나로 복을 받게 합니다.

 

옛말에도 바가지가 있는 거지는 얻어먹어도 빈 손든 거지는 얻어먹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뭘 얻어먹으려고 해도 그릇을 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면 나로 그릇을 먼저 준비시킵니다. ‘나’라는 그릇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이끌기 위해서 하나님은 거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릇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40년 동안 고난의 학교를 통해서 그릇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신명기 8장 16절입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고난이 안겨 준 선물이며 고난 속에 핀 꽃이며 축복입니다.

(고난 속에 핀 꽃-261, 주님의 위로-232)

 

잘되고 성공하고 싶습니까? 고난을 피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통과의례입니다. 성공이 값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복을 동반 합니다. 고난을 참고 이겨내며 마침내 복을 받게 됩니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듭니다.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나를 알게 하고 찾게 합니다. 나로 정금 같은 신앙과 정금 같은 인격을 갖게 합니다. 나로 복을 받게 합니다.

 

이제 고난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고난을 상처와 아픔 정도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유익으로 보시고 사명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식으로 인한 아픔이 있으면 그 때문에 해야 할 사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아픔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배우게 해 주는 사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난의 아픔이 있는 사람은 없는 이들과 나눌려는 사명이 속에서 꿈틀거립니다. 이별의 아픔 때문에 그런 이들을 위로하고 상담해 줄 수 있습니다. 깨어진 거울로 예술품을 만드는 사명, 아픔을 품고 진주를 만들어 내는 사명이 아픔을 먼저 겪은 사람들에게 사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픔 때문에 잠시 울지만 마지막에 웃으면 되는 것입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주 안에서는 아픔도 눈물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아름답게 승화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선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아픔과 눈물이 내일에는 사명임을 잘 기억하시고 끌어안고 기도하며 고난에게 지지 마시고 끝내 이겨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도전, 선한 영향을 주는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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