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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 마 19:5-6

가정,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

 

마 19:5-6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이라는 책 내용 가운데 한 대목이 생각이 납니다. 이분은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정이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정이 마치 건물이 지진을 겪는 것과 같이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비유한 바가 있습니다.

   이분이 이 책을 쓸 때가 벌써 40년이 가까이 지났습니다. 현재 우리의 가정들을 살펴보면 이분이 예견한 대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마치 지진이 건물이 서 있는 땅을 뒤흔들 듯이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우리의 가정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정에 대한 생각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선 결혼생활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과연 결혼생활을 한 사람과만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혼률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년층의 이혼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꼭 결혼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싱글족’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꼭 동성하고만 결혼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성결혼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에 대한 생각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꼭 부모를 모셔야 하는가?’라는 생각은 이제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후에 독거하는 어르신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어쩔 수 없는 상황가운데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거하는 가족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더욱 주목할 것은 가정의 형태가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독세대 형태가 급증하고 있고, 혈연이 아닌 다른 여러 사유로 맺어진 가족 형태가  생겨나고 있고, 재혼가정들이 눈에 띠게 늘고 있고, 그리고 다문화 가정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가정 형태에 저마다 다양한 가정의 문제들, 가정의 갈등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과거의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참 많고 많은 문제들이 가정 안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가정이 파괴되거나 해체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 건물들이 흔들리며 큰 위기를 겪는 것처럼,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가정들이 흔들리며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과거 특별한 가정들만 겪던 심각한 가정의 문제들이 평범한 보통 가정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마다 크고 작은 몸살을 앓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도 이런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지진이 오면 그곳의 모든 건물이 다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 현대사회의 이런 위기상황은 모든 가정이 함께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들도 갖가지 힘든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같은 지진이 오더라도 어떻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피해 상황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 일본과 에콰도르에 각각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 강도는 일본이 7.3과 에콰도르는 6.8입니다. 일본의 지진 강도가 조금 더 컸습니다. 그러나 피해규모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 일본에는 사망자가 16명이 발생했는데, 비해 에콰도르에는 654명이 사망했고 실종자도 16,601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지진 강도는 일본이 더 강했는데 피해는 에콰도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진 대비 여부의 차이입니다. 일본은 철저하게 지진을 대비해서 건물을 지었고, 또 철저하게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을 훈련시켰습니다. 이에 비해 에콰도르는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그 피해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잘 준비된 가정은 위기가 찾아올 때 그저 감기 앓듯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가정은 위기가 찾아올 때 중병에 걸린 것처럼 큰 피해를 입고 심할 경우 가정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위기 상황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요?

 

1. 믿음의 기초를 세우자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남편과 아내로 짝 지어주신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부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선물로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가정의 기초가 될 때 가정의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건축법을 보면 ‘내진설계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지진에 대비하는 장치를 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3층 이상, 연면적 500제곱미터 이상, 높이 13미터 이상과 같은 건물은 반드시 내진 설계규정을 따라야 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진설계규정 가운데 가장 처음 나오는 조항이 바로 ‘지반 및 기초’ 부분입니다. 건물을 어떤 땅에 짓느냐와 기초를 어떻게 세우느냐가 내진설계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정의 위기를 잘 대처하려면 가정에 대한 기초를 튼튼하게 잘 세워야 합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가정은 ‘우연’이란 계기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우연이란 계기로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 위에 가정이 세워진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밀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틀림없이 그를 사랑했을 거야” 테레자가 그의 친구가 아닌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라기 보다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는데’에 근거한다.”... “그리고 절대 우연의 화신인 그 여자가 지금 그의 곁에 누워 깊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있다.”

  두 사람이 우연에 기초해서 사랑하고 있다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은 겉으로 볼 때 우연처럼 보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거기 그 사람이 있었을까?”, “왜 하필이면 내가 그 때 거기에서 그 사람을 보았을까?”, “왜 하필이면 우리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모두가 설명할 수 없는 우연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기초 위에 가정을 세웁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연처럼 보이는 그런 사건들 속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깊이 느낍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짝 지어주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가정을 세워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기초 위에 가정을 세웁니다.

   그런데 우연이라는 기초 위에 가정을 세운 사람들은 지진처럼 가정의 위기가 다가올 때 가정을 지켜낼 힘이 없습니다. 그저 우연에 가정의 미래를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고 많은 경우 가정이 붕괴되는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기초 위에 가정을 세운 사람들은 지진처럼 가정의 위기가 다가올 때 그 가정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 위기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과 시련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가정을 지켜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 속에도 하나님께서 가정 안에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의 하나를 만들자

   본문 6절을 보면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가족은 여럿이지만 하나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를 이룬 것을 말합니다.

 

  대나무는 다른 나무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대나무 뿌리에서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 뿌리는 ‘지하경’ 또는 ‘편근’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지하줄기’라는 뜻입니다.

  대나무 씨앗을 심으면 보통 짧으면 3년 길면 7년까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대나무는 땅 속에서 이 지하줄기를 뻗는 일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50센티나 1미터 정도 땅 속으로 파고든 뒤 수평으로 지하줄기를 뻗칩니다. 보통 나무 하나가 300평정도 이 지하줄기를 뻗친다고 합니다. 길이로 따지면 3킬로에서 6킬로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년 정도 후 때가 되면 지하줄기의 한 마디에서 죽순이 나오고 불과 한 달에서 두 달 만에 15미터 이상 자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지하줄기들이 서로 뒤엉킨다는 것입니다. 각 대나무의 지하줄기들이 뻗어가면서 서로 얽히고설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나무 밭은 수많은 나무들이 땅 속에서 거대한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나도 대나무 숲은 끄떡없습니다. 그래서 지진이 나면 대나무 밭으로 피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 됨’은 바로 이 대나무 숲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모 자식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이렇게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을 위기 가운데서도 든든히 지켜낼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 됨은 하나님께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요 17:21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가 되셨는데 그 하나 됨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가 하나 됨은 남편이 아내 안에 있고, 또 아내가 남편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녀들 안에 있고, 또 자녀들이 부모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기도할 때 남편은 아내 안에 있게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기도할 때 아내는 남편 안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부모는 자녀들 안에 있게 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기도할 자녀들은 부모 안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서로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갑니다.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대나무 지하줄기가 얽히고설켜서 거대한 하나를 이루는 것처럼 부부가 하나를 이루게 되고 가족이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게 될 때 어떤 위기가 가정에 몰려온다고 해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3. 헌신의 수고를 하자

   본문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둘이 하나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둘이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세상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1+1=2’가 세상적 이치입니다. 그런데 ‘1+1=1’이 되게 하라는 명령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하나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 기적을 봅니다. 십자가는 가로 막대와 세로 막대 둘이 하나로 합쳐져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둘이 하나 되려면 십자가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온전한 헌신의 정신으로 섬기신 그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 됨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일까요? 우선 가정의 달이 5월이니까 부부의 날을 5월에 두었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한데요 부부는 둘이지만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둘 하나 즉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의 날을 처음 주창한 분은 경남 창원에서 목회하시는 권재도 목사님입니다. 이 목사님은 1995년 어린이날에 TV 프로그램을 보는 중에 여러 어린이들이 소원이 무엇인지를 뭇는 질문에 ‘엄마 아빠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부부의 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먼저 1995년 5월 21일에 첫 번째 부부의 날 행사를 갖고 기독교인 가정을 중심으로 부부의 날 지키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좋은 뜻이 전해지면서 일반에게도 알려지고 확산되면서 ‘부부의 날 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가 2003년 12월 18일에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청원을 했고, 2007년에 국회가 본회의에서 결의하면서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 위원회가 부부의 날을 제정하면서 부부가 하나 되기 위해 힘쓰도록 권고할 내용을 십계명으로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이름 하여 ‘부부 십계명’입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두 사람이 동시에 화내지 마라

2. 집에 불이 났을 때 이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마라

3. 눈이 있어도 흠을 보지 말며 입이 있어도 실수를 말하지 마라

4.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5. 아픈 곳을 긁지 마라

6. 분을 품고 침상에 들지 마라

7. 처음 사랑을 잊지 마라

8. 결코 단념하지 마라

9. 숨기지 마라

10.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사랑으로 부족함을 채워주도록 노력하라

 

   이 내용은 한 마디로 말하면 부부가 서로를 위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희생하고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 됨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 됨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헌신처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 됨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가정이 하나를 이루게 될 때 가정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가정의 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 가정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가정의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고, 어렵지 않게 가정이 붕괴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우리의 가정을 잘 지켜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믿음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헌신의 수고를 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위기 시대에 우리 가정을 잘 지켜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더욱 든든히 서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