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8:14-24 2012.7.1(일)
성령님은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느 정신 병원에 세 친구가 입원했답니다. 한 친구가 소리칩니다. “나는 왕이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소리칩니다. “나는 황제다”. 그랬더니 마지막 친구가 말합니다. “누가 너를 황제로 임명했느냐? 나 너 임명한 적없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기가 더 높다는 것입니다. 네가 왕이면 나는 황제고 네가 황제면 나는 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런 욕망이 무의식속에 있습니다. 남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싶은 욕망, 남보다 잘되고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욕망,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사람을은 저마다 힘을 찾습니다. 권력도 힘이고 학벌도 힘이 돈도 힘입니다. 진정한 힘이 무엇일까?
이번에 인도 선교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기도로 모든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인도는 분명 큰 나라인데 힘이 없었습니다. 인구 약 11억, 세계 인구를 60억으로 볼때 세계 인구의 1/6이 인도에 삽니다. 남한의 33배,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나라입니다. 세계 역사에 인도가 끼친 영향 또한 대단합니다. 주전 약 3천년전부터 시작된 인더스 문명, 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중의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인도가 세계 역사에 공헌한 것은 종교입니다. 동양 종교의 대부분이 인도에서 나왔습니다. 먼저 힌두교, 힌두교는 현재 인도의 주된 종교로서 인도의 문화, 유적은 대부분 힌두교와 관련된 경전, 문화유적입니다. 그리고 불교, 불교는 인도에서 나와 아시아의 주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크교, 자인교, 이 모든 종교들이 인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힘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합니다. 1인당 평균 소득이 한 달에 5-10만원입니다. 한달에 10만원이상을 벌면 괜찮다고 합니다. 그들의 찬란한 문화에서 볼 때 도저히 이해가 안된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한지 학생들이 한달에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 돈이 만원입니다. 우리 돈으로 만원이면 한 끼 식사비에 지나지 않는 데 그들은 그 돈도 없어 제대로 공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어느 목사님 자녀에게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배웅을 위해 따라온 분을 데리고 인도 재래 시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물어 물어 신발가게로 갔습니다. 자녀가 중학교, 초등학교 셋이라 우리가 흔히 신는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얼마나 기뻐하는지 자기 평생에 자녀들에게 운동화 사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켤레 다해봐야 우리 돈으로 3만원입니다.
거리에는 여기 저기 거지가 있었습니다. 몇년 전 캘커타에 갔을 때 보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테레사 수녀 무덤이 있는 캘커타 “사랑의 집”근처를 가면 저녁에 수많은 홈레스들이 누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깔대기를 깔고 어떤 사람은 깰때기도 없이 맨땅에 누어 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어린 자식 서넛을 데리고 맨 땅에 누어 있는 부모들입니다. 어린 자식들은 배고프다고 울고 부모들은 줄 것이 없고 참으로 눈뜨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 극빈자가 인도에 전 국민의 25%나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나라는 크고 역사도 오래 되었는 데 힘이 없을까?
하나님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힘이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술사의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선교를 하는 중에 마술사 시몬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시몬”인 것으로 보아 유대인일 것입니다. “시몬”이란 이름은 유대인 가운데 흔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의 직업이 마술사입니다. 여러분은 마술사를 아십니까? 이상한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마술사 말입니다. 언젠가 T.V에서 미국에서 왔다는 신기한 부부 마술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인상이 좋아보이는 이 부부는 눈을 가리고도 다른 사람이 칠판에 쓴 글씨를 금방 알아 맞췄습니다. 멀리 떨어져서도 돈에 쓰여 있는 번호도 다 읽어 냈습니다. 커다란 상자 속에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놓았는 데도 뚜껑을 열어보면 이미 상자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무슨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마술사 시몬은 아마도 이들과 비슷한 기적을 행했는지 모릅니다.
자, 그러면 그렇게 신비한 기적을 행했다면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술사 시몬은 아무리 봐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자기 보다 강한 빌립의 능력과 자신을 늘 비교합니다. 자기의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마술입니다. 마술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 재미있어도 그 안에는 다른 신이 있습니다.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보면 요가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운동하다보면 명상하게 되고 명상하다 보면 그 신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심령과학, 유령, UFO, 도, 명상, 점성술, 운세, 초능력, 기, 단학, 마인드 콘트롤, 이런 것들이 다 신의 세계에 관련있습니다. 건강으로 시작한 것이 영적 실체인 악마와 사탄과의 교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에 인도에서 힌두교 사원을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염소를 끌고 사원앞에 길게 서 있습니다. 왜 서 있나 보았더니 염소를 잡아 재앙을 없애려고 서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작은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왔는 데 보니까 어린 아들의 얼굴과 머리에 불긋 불긋 반점이 나고 아들은 아파서 크게 울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병을 치료하려고 염소를 끌고 온 것입니다. 힌두 제사장이 칼로 염소의 목을 쳤고 곧 붉은 피가 쏟구쳤습니다. 그때 제사장은 엄마와 아들의 이마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신이 그들에게 당부한 말씀도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격적인 교훈도 없습니다. 그저 재앙만 면하면 됩니다. 재앙을 면하기 위해 염소를 잡고 돈을 주고 받으면 끝입니다. 그들의 신을 믿음으로 오는 영적인 기쁨이나 성숙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웃과 세상을 향한 소명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그저 생존을 위한 인간적 몸부림, 그것을 위해 돈 몇 푼과 염소를 바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없는 종교적 악순환이 그들에게 영적 공허와 혼란을 부추끼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없는 종교, 하나님없는 나라는 이렇습니다. 인간의 문제의 가장 깊은 본질에는 영젹 공허, 영적 빈곤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령받지 않은 신자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이들은 빌립을 통해 전도를 받았습니다. 세례로 받았습니다. 셰례는 예수님 믿으면 받습니다. 행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빌립이 했던 기여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세례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사마리아사람들이 세례는 받았는 데 능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세례는 받았는 데 능력은 없을까? 왜 예수님은 믿는 데 힘이 없을까? 원인이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믿긴 믿고 세례도 받았는 데 성령체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두 사도를 보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에 와보니 과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받았으나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능력이었습니다.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5절입니다. 행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왜 그렇게 했습니까? 16절입니다. 행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에게 들어서 복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들어서 지식으로 알고 있었으나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임을 몰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오순절 전에는 지식으로 예수님을 따르다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고 고기잡으러 떠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 받고 보니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임을 알았습니다. 관념이 아니라 힘임을 알았습니다. 차거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받게 하기를 위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정한 날이 오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을 하나씩 나오게 해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7절입니다. 행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그때부터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두 종류의 신앙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는 사마리아인의 신앙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의 신앙입니다. 사마리아인의 신앙은 귀로만 듣는 신앙입니다.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관념의 교실에 가둬 놓고 조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신앙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 이상을 믿지 않는 신앙입니다. 매우 논리적이고 지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때문에 거룩한 영향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도 답답하고 남도 변화 못시킵니다. 이것이 사마리아인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신앙은 능력의 신앙입니다. 다만 머리로 아는 신앙이 아니라 체험하는 신앙입니다. 성령이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신앙입니다. 예수믿고 세례받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16절을 경계해야 합니다. 행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뿐이었더라“. 세례만 받아서는 안됩니다.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이번에 인도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인도 교회에서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된 새 신자들이 귀신들을 쫓아내 지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답니다. 이제 갓 예수 믿고 교회 나온 새 신자들이 어느 집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데, 한 힌두교도가 찬송 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중 귀신들린 사람이 하나 있는 데우리를 괴롭게 한다. 우리를 좀 도와 줄 수 있겠느냐?”. 새신자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가서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귀신이 나갔답니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 80명 가량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새신자는 성경도 잘 모르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몰라도 믿고 기도하니까 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었으나 우리가 그것을 전도와 선교에 쓰지 않으니까 능력이 안 나타납니다. 전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안에 이미 주신 능력이 나타납니다. 새신자라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누군든지 믿고 구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겸손히 사도들의 말을 듣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행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고 사도들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님은 가장 큰 힘입니다.
이때 사마리아인이 성령받은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입니다. 그가 18-19절에 사도들 앞에 이렇게 말합니다. 행8:18-19,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마술사 시몬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기왕에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힘은 마술의 힘이었습니다. 그 힘만으로도 그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습니다. 더 큰 힘을 가져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돈을 주고 살수만 있으면 어떤 능력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다가가서 자신이 돈을 줄테니 성령의 능력을 팔기를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잘못 되기 시작하는 시초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잘못 이해한 사람은 자신이 그 능력의 소유자가 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능력앞에 자신을 복종시키기 보다 자기가 그 능력을 복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능력에 의해 소유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력을 소유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이 여러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마술사 시몬은 불행하게도 성령을 소유하기를 원했습니다. 20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여기서 “산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랍바네인“, 곧 ”획득하다. 취하다“는 말입니다. 돈주고 성령을 사서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기왕에 가지고 있던 능력에다 조금 더 센 성령 하나 더 추가하여 자신의 능력 재고량을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믿는 여러분 성령을 받았습니까? 잘했습니다. 누구나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받은 것과 성령을 소유한 것은 다릅니다. 20절을 다시 보십시오. 행8: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이 무엇입니까? 주는 자의 의지에 따라 주는 것입니다. 아무 대가없이 주는 것입니다. 돈받고 주는 상품이고 돈 안받고 주면 선물입니다.
오래 전에 한 목회자가 교회에서 기도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많은 체험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쓰러지는 체험이었습니다. 그가 손도 대지 않았는 데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여신도만 쓰러진 것이 아니라 남신도도 쓰러집니다. 한 사람만 쓰러진 것이 아니라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많은 사람들의 병나았다고 하고 간증도 했습니다. 분명 하나님 믿는 세계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후에 보니까 그때 쓰러진 사람중에 사람이 달라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몸이 쓰러진 것이 아니라 그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앞에 온전히 복종하게 것입니다. 마음이 복종하지 않고 몸만 쓰러뜨리려 하면 그것은장풍하는 사람들이 더 잘할 것입니다. 내 몸이 쓰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내 인격이, 내 삶 전체가 쓰러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에 몸은 쓰러졌지만 사람은 쓰러지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 일생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라마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군대가 라마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신이 급히 군대에게 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꼼짝 안하고 누어서 예언만 했습니다. 몇 번 군대를 보내도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사울이 직접 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직접 임했습니다. “임했다”는 말은 “돌격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돌격하자 사울은 힘없이 그 자리에게 쓰러졌습니다. 아마 그때 사울은 인간적인 의지로 일어나 보려고 애썻을 것입니다. 자기 부하들 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왕으로서 민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어찌나 그를 강하게 누르시든지 사울은 도무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도 상당히 강한 체구와 강한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는 데도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일어나기는 커녕 그 힘에 점점 압도되어 이제 옷까지 하나 둘씩 벗어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하루 종일 그렇게 누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9:24절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의 몸이 쓰러졌다고 마음도 쓰러졌나요? 그는 몸은 쓰러졌으나 교만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몸은 쓰러졌지만 욕심과 탐욕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어서 예언도 했고 신비한 환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미움과 교만과 욕심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떠 다윗을 잡으려고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불레셋 사람에게 쓰러졌습니다. 칼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성령으로 쓰러질 때 잘 쓰러질 것을 몸만 쓰러지고 자기는 쓰러뜨리지 못해 그만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크신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가 사모할 최고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 앞에 몸을 쓰러뜨린 자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쓰러뜨린 자에게 가장 큰 능력을 나타냅니다.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이 가장 강한 자입니다. 자기 욕심을 이기고 자기 탐욕을 정복하는 힘이 가장 큰 힘입니다. 미국 기독교 역사상 빌리 그래함만큼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유명해 지면서 세 가지 유혹을 받았다고 합니다. 첫째 상원의원에 출마해 달라는 유혹. 둘째 공화당 부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달라는 유혹. 셋째 세계적인 기독교 방송국을 세워달라는 유혹.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유혹을 모두 물리치고 평생 복음만 전했습니다. 잘나가던 사람이 세상적 유혹을 끊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성령이 이 일을 하게 합니다. 성령은 힘입니다. 잘 나가던 목회자가 가끔 교단 정치에 뛰어들어 영성을 잃고 교회를 어지럽힌 경우를 봅니다. 자기가 아니면 노회가 안되고 자기가 아니면 교단이 안된다는 생각은 엄청난 교만입다. 나를 과시하게 하는 힘이 아니라 나를 부정하는 힘이 가장 큰 힘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지배할 때 방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만이 아닙니다. 마귀입니다. 21절, 22-23절에서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에게 욕심을 가져다 준 것은 사단이라고 말하고 그 사단을 꾸짖습니다. 22-23절입니다. 행8:22-23, “그러므로 너의 이 약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속에 사단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성령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 사단에게 명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기 위해 종종 우리를 묶는 사단의 세력을 묶어야 합니다. 마귀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불법칩입자입니다. 불법칩입자는 다른 사람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쳐 들어온 사람을 말합니다. 가끔 남의 잔디에 텐트치고 캠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이 와서 나가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안나가면 경찰을 부릅니다. 가끔 남의 땅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고소하면 나갑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들은 자기들이 거주하는 사람의 몸을 자기들의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12:43-4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마귀도 우리의 몸에, 마음에, 영혼에 불법으로 칩입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경우에 사용하신 방법이 명령기도입니다. 마16:23,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님은 사단을 향하여 명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의 이름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강력한 무기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나사렛 예수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저는 슥4:7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추천 설교 > 이윤재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9:1-22 2012.7.15.(일) 바울이 받은 은혜 (0) | 2017.01.02 |
---|---|
출3:1-5, 히11:24-27 모세를 키우는 교육 2012.7.8.(일) (0) | 2017.01.02 |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행8:1-8 2012.6.24(일) (0) | 2016.12.30 |
행7:54-60 스테반처럼 승리하게 하소서 2012.6.17(일) (0) | 2016.12.30 |
눅5:1-11 말씀에 의지하여 2012.6.10(일) (0) | 2016.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