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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에베소서 2:1~10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 성경 : 에베소서 2:1~10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드시되 선한 일을 위해서 지으셨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창조된 목적은 선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시편 23편 3절 “여호와께서 나를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즉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과 죽음에서 건진 이유는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선한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씽은 어느 날 네팔 산맥을 넘어가다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여 등에 업고 산비탈을 내려왔습니다. 선다씽에게서 나는 열기가 얼어 죽어가는 사람의 몸을 녹여주어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버린 사람은 마을에 가까이 왔을 때 죽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선한 일을 하면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산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며 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게 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선한 일 하며 산다는 것은 “너희가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너희가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느냐? 이 세상 풍속을 따라 살았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에 의해서 너희들이 움직이며 살았다. 이제 너희는 거기에서 건져내어졌다.”는 말씀처럼 바로 과거에 내가 이 세상 풍속대로 사는 것에서 떠나서 앞에 있는 새로운 길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이 바로 선한 삶입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삶은 결코 선한 삶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자비를 베푸셔서 롯의 가족을 강제로 끌어내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쳐다봤습니다. 왜 쳐다봤느냐? 자기가 살던 곳이 어떻게 불과 유황으로 불타버리는지 호기심으로, 또 과거의 삶에 대한 애착 때문에 쳐다 본 것입니다. 여러분 뒤를 쳐다 보는 자는 앞에 있는 선한 일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뒤를 바라보면 절대로 앞에 있는 선한 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2장 1~10절에 하나님이 우리로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지으셨다고 말씀하면서 옛 것을 떠나서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뒤를 쳐다 보는 순간에는 절대로 앞에 있는 선한 일을 쳐다볼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은 앞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뒤를 쳐다보는 순간 우리는 절대로 앞에 있는 선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고 하는 집착에서 떠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다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수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에 대해서 율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율법이나 구약은 다 유태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구약이나 율법에 머물렀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유대교라고 하는 과거에서 뛰쳐나와서 세계 모든 민족이라는 미래를 위해서 복음을 증거 할 때 사도 바울은 2천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우리가 익히 아는 훌륭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모세가 출애굽기 32장 32절에 “하나님, 이 백성들이 금송아지에게 절해서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합의하시면 이 백성 살려주세요. 만약에 살리지 않겠다면 나를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이와같이 자기는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할 때 모세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존경받는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나에게 집중된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 자아집착, 자아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45~46절 “너희들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라. 그럴 것 같으면 너희들 살겠다는 자는 죽을 것이고 복음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나를 부인하고 내가 사는 길은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을 목회자를 통해서 부흥사를 통해서 수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십자가 진다는 것은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대로 그냥 순종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너희가 오늘 예배드리기 전에 너희 형제와 다툰 일이 있고 싸운 일이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려라.”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 가 마음속에 “주님 나는 적어도 그 사람하고는 화해를 못하겠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화해 못하겠어요.”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십자가 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은 저 사람하고 화해하는 것이 안되지만 “네가 오늘 예배드리기 전에 그 형제와 화해하고 와서 예배드려라.” 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한 것입니다. 십자가 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선한 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기 때문에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말씀을 자꾸만 마음속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외워도 좋고, 읽어도 좋고, 명상해도 좋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담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말씀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두 번 살지 않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 더욱 더 선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선한 말을 하고 한 가지 행동을 하더라도 선한 행동을 해서 우리 이 귀중한 인생이 선으로 가득찬 인생으로 채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선한 일을 행하시면서 나를 자아애착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앞에 있는 십지가 하나님 말씀에 “예”라고 순종하면서 살아가시는, 선한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