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강용규목사

그리스도인의 가치 기준은? 시편 73:1~3, 16~28

그리스도인의 가치 기준은?
  

▒▒ 성경 : 시편 73:1~3, 16~28

시편 73편은 아삽이라는 분이 지었습니다. 아삽은 73~83편까지 11편의 시를 쓰셨습니다. 아삽은 레위 지파 사람이었고 놋으로 된 제금을 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분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소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아삽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같이 믿음이 있다고 인정된 아삽이 자기가 ‘신앙적으로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오늘 73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항상 변함없이 잘하지 못하고 때로는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시편 73편에 아삽은 자기 경험을 이야기데, “나도 신앙생활 하다가 미끄러질 뻔 하였다. 그런데 이 미끄러진 데서 다시 바르게 서서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1~28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내용이 오늘 신앙생활 하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이 실족하고서도 다시 신앙을 바르게 세울 수 있게 하는 귀중한 말씀이 오늘 시편 73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우리의 신앙이 항상 반석 위에 굳건히 서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신앙생활 잘해서 주님 앞에 서는 날 칭찬받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삽이 어디에서 신앙의 실수를 하느냐 하면 3절 “나는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대개 올바르게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잘 안되고 악하게 사는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아시다시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명령한 빌라도는 예수님 돌아가시고 잠시 후 로마 총독에서 실락되고 맙니다. 이처럼 악을 행한 자는 한 동안은 잘 되지만 그의 말로가 비참하게 된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정반대로 악한 짓을 많이 한 사람이 일평생 잘 살다가 죽을 때마저도 너무나 편안하게 잘 죽는 것을 볼때 우리는 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 저 악한 것 죽을 때라도 괴롭게 죽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항의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삽 본인은 항상 깨끗하게 살아도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어려움만 겪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삽이 “도대체 하나님은 계십니까?” 항의하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보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미끄러지고 실족하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깨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의심, 불평과 원망이 쌓일 때 아삽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아삽은 성소로 들어갔습니다. 비로소 아삽은 그동안의 모든 의문이 풀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삽이 성소에 들어가서 무엇을 깨달았느냐?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고,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항변을 하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 똑같은 창조자의 입장에서 교만이 가득찬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 저는 우주의 우매한 어리석은 자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는 나름대로 깨끗하게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한없이 부족한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고백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 중요한 사실을 아삽은 깨닫게 됩니다.
세 번째 “복 있는 사람은 재물이 많은 사람이고, 출세하는 사람이고, 건강한 사람이고, 아들딸 잘 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이런 세속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시편 1편에 나오는 것처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는 성경적 가치관이 참된 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여러분, 뭐가 축복입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처럼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있다면 바로 여러분들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니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더라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삽은 성소에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고 나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물질, 명예, 건강, 이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최고입니다.”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봤던 모든 것들이 밤에 꿈꾼 것처럼 아침이 되면 꾼 꿈을 다 잊어버리듯이 일시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깨닫고 나서 아삽이 한 일은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입니다. 날마다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복인 줄 이 시간 고백합니다. 하나님 내가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겠습니다. 한신의 성도님들 하나님께 가까이 가셔서 하나님과 동행하셔서 일생을 복되게 사시고 또 주님 앞에 서는 날 선한 싸움 다 싸우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시고 주님과 동행한 에녹처럼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