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0. 2 영역 1/십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부르라
출 20: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마 22장에서 가르쳐주신 두 계명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두 계명은 사실 십계명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4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5-10계명을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하여 말씀해 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5-10계명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명만 살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계명들이 십계명의 1-4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다른 신을 두지 말아야 하고, 둘째로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고, 그리고 셋째가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넷째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십계명 중 셋째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간략하게 계명 형태로 축약해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적극적인 형태로 바꾸어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원어성경을 보면 “샤웨”(Shaweh)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망령되게”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의 원 뜻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망령되이 부른다는 것은 ‘없는 것처럼 부른다.’, ‘함부로 부른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명을 내리셨느냐 하는 점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고 섬길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점입니다.
창 12: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신 18:19를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시 69:3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면서 저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풍조를 지적하셨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믿음은 없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마음으로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서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믿음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를 향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또는 사람들 들으라고 함부로 “주여!”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오랜 기독교 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서양에서는 욕이나 한탄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god damn”(빌어먹을) “Oh! my God!”(세상에나) “Jesus”(맙소사!) 우리가 이런 표현을 장난 삼아라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도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 전 한 부동산 중계업자에게 한동안 시달렸습니다.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낯선 전화라 망설이다 받았습니다. 다짜고짜 목사님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느 교회 권사라는 것입니다.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고, 돈 벌면 개척교회를 세우려는 비전이 있고... 한참 자기 신앙을 자랑합니다. 그러더니 경기도 어디에 좋은 땅이 있는데 한 번 보시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노후를 위해 자기가 성심껏 돕겠다는 것입니다. 1차로 3000만원만 투자하면... 하면서 저를 괴롭게 합니다.
처음에 정중하게 사양하고 끊었습니다. 얼마 뒤에 또 전화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여섯 번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나중에는 따끔하게 거절했습니다. 알고 보니 기획부동산 홍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체로 목사들이 어리숙하니까 아예 목사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사기를 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인들 가운데 신앙도 없으면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직함을 얻어가지고는 표를 얻기 위해 교회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 가운데 교인을 상대로 명함에 교회 직분을 새겨가지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는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레 19:12을 보면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못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거짓 맹세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즘도 심심치 않게 그리스도인들이 범죄 혐의를 받고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신앙인임을 내세워 자기의 진실성을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런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심지어 어떤 분은 로비 사건으로 연루되어 검찰에 불려가면서 이렇게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절대로 그런 일을 저지른 일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분들이 대부분 구속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일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데 그저 이름만 있는 존재로 여겨서 그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라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름 짓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부르는 것이 피조물들의 이름이 됐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도 사람이 지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만든 우상의 이름들도 다 사람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이름들도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이름입니다. 그 중에 가장 특별한 이름이 바로 하나님 당신 자신의 이름입니다.
출 3:13 이하를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이름을 여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 1: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를 통해 낳게 될 아기의 이름을 직접 지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과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이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알려주신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우리를 창조하신 이름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내신 이름입니다. 장차 우리를 저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영원복락을 주실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우리에게는 정말 특별합니다. 생명보다 귀하게 간직해야 할 이름입니다.
시인 김소월의 [초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임이 죽었습니다. 그 임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 이름을 잊을 수 없어 가슴에 사무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우리는 나를 창조하신 분의 이름, 나를 구원해 주신 분의 이름, 그리고 장차 나를 천국에서 영원복락을 주실 분의 이름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습니까?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 그 귀한 이름, 여호와 그 놀라운 이름 소중히 생명처럼 귀하게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예배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기뻐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찬양 안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김춘수라는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시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간단하지만 강렬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한갓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꽃이 이름을 불러 준 뒤에 내게 와서 꽃이 되고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된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나와 무관한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분을 믿고 그분이 내게 알려주신 그 존귀한 이름을 부를 때 내게 오셔서 내게 하나님이 되시고 내 일생을 뒤 바꿔놓는 의미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도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역사상 위대한 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분을 믿고 그 존귀한 이름을 부를 때 내게 오셔서 나의 주님이 되시고 내 일생을 뒤 바꿔놓는 의미가 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 귀하신 이름을 부르며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해 주셨습니다.
요 14:1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롬 10: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해 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막 16: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귀신과 맞설 때 귀신이 쫓겨나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런 약속의 말씀들은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행 3: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성전 미문 앞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구걸하고 있습니다. 이 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 앞을 지나다가 이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걷고 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라는 이 존귀한 이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의 능력을 통해 놀라운 이적들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예수 그 존귀한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며 앞을 향해 나가는 자는 그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갈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던 것처럼 우리도 주의 이름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이름을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 됩니다. 그 이름을 존귀하게 불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이름을 내 안에 생명보다 귀하게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이고, 그 이름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추천 설교 > 박봉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천국에서 크니이까? 16. 10. 17. 영역 4/복음서 (0) | 2017.01.07 |
---|---|
16. 10. 9. 영역 4/토라나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 (0) | 2017.01.07 |
16. 9. 25. 영역 4/기타고난 어떻게 받을 것인가? (0) | 2017.01.07 |
16. 9. 18. 성숙한 신앙 성숙한 기도 (0) | 2017.01.07 |
16. 9. 11 영역 1/십계명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 (0) | 2017.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