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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천국에서 크니이까? 16. 10. 17. 영역 4/복음서

누가 천국에서 크니이까?       

 

마 18:1-4

 

  얼마 전 EBS TV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인간을 심층 연구 분석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여러 가지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그중에 기억나는 한 가지 실험이 있었습니다.

  신입사원 면접이 진행됩니다. 면접관들의 손에 절반은 찬 음료를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따뜻한 음료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같이 한 사람을 면접을 했습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찬 음료를 손에 든 면접관들은 대체로 냉정하다고 보고 떨어뜨리려 한 데 비해서, 따뜻한 음료를 손에 든 면접관들은 대체로 열정이 있다고 보고 합격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면접관들은 면접 받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판단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현 상태를 중심에 놓고 판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몇 가지 실험을 하고는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붙였습니다. ‘사람은 우주의 중심에 자기를 놓고 세상을 본다. 사람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렇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결정적인 특징은 바로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온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던 천동설처럼, 자신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서서히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던 제자들은 자기 생각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되실 것인가?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의 열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른 뒤 자기들은 어떻게 되는가?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따른 뒤에 자기들에게 돌아올 이익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저들의 이런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들을 참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도 저를 비롯하여 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예수를 믿는다기 보다 자신을 위해 예수를 믿습니다. 헌신과 충성의 결과 자신에게 돌아올 혜택과 유익을 위해 예수를 믿습니다. 주님께서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십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큰 자가 되고 싶은 제자들

   1절을 보면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를 여쭈었던 것입니다.

   이 질문을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그 때에”라는 시점 부분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질문을 던졌던 때를 말합니다.

   본문 바로 앞부분을 보겠습니다. 세금 논쟁에 관한 부분입니다. 세금을 걷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왜 세금을 내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이 사실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임금이 아들에게 세금을 걷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세금 걷는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다투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해서 제일 먼저 잡히는 물고기 입을 열면 한 세겔이 나올 텐데 그 돈으로 예수님과 베드로 몫의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자기들은 예수님처럼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큰 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됐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는 정말 작은 자들이었지만 예수님 때문에 앞으로는 큰 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입니다.

   이 부분이 참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뒤를 따른 것입니다. 처음에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늘 이런 관심이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장차 큰 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들이 그 말씀에 솔깃했을 것입니다. 관심이 큰 자가 되는 일에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만을 생각하며 주를 따르던 사람들이 큰 자가 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 차례 임직식을 하면서 번번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임직 투표를 하는 과정에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많은 교우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임직 투표를 하게 되면서 이분들은 권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싶은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이 격려도 했고, 또 부축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크게 실망을 합니다. 그리고는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만 바라보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봉사하고 충성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큰 자가 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세워주셔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누가 크니이까?”라는 부분입니다. 이 말은 자기들 중에 누가 크냐고 묻는 말입니다.

   본문의 바로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 물고기의 입에서 발견한 한 세겔을 주님 당신과 베드로의 세금으로 내라 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다른 12제자들 가운데 자기는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자기가 가장 큰 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 이 두 제자는 베드로에 대해 견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베드로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자기들을 변화산 위에 데리고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자기들보다 앞 서 가는 것 같아 보이자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까지 동원했습니다. 어머니가 예수님께 자기 두 아들을 예수님 좌우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탁까지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두 아들을 가장 큰 자들로 세워달라고 청탁을 한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다른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이 이 일로 다투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등극하실 날이 가까웠다고 생각이 되자 자기들끼리 자리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논공행상을 벌였던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본격적으로 더 큰 자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더 큰 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큰 자가 될 수 있는지를 여쭈었던 것입니다. 이 질문 안에는 저들의 큰 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가득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 그리고 교계 주변에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계에 사람을 세울 때 선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정치판에서나 볼만한 일들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청탁을 하고, 파벌의 행태를 보이고, 돈 봉투가 오고갑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교계 선거에도 소위 ‘네거티브 공격’이 가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폭로하고, 인신공격을 하고, 심지어 없던 것도 지어내서 공격을 합니다.

   모두가 큰 자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남보다 더 큰 자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이 욕심의 그늘 뒤에 사탄이 숨어있음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런 큰 자가 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작은 자가 되라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일찍부터 제자들의 마음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참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천국에서 누가 큰 자냐고 묻자 드디어 답을 하시게 됐습니다.

   그런데 역시 예수님다운 답이었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제자들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큰 자가 되려면 이 어린아이처럼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린 아이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 어린 아이에게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한 마디로 자기를 낮추려고 하는 점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역설을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큰 자가 되려는 자는 작은 자가 되려고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큰 자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결코 큰 자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작은 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만이 큰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역설은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세상나라에서는 큰 자가 되려고 꿈을 꾸고 노력하고 기회를 잡아야만 큰 자가 됩니다. 그래서 큰 자가 되려는 자만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다릅니다. 큰 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때만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노력한다고 큰 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자로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만 큰 자로 세워집니다. 그래서 작은 자가 되려는 자만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동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또래집단이 형성되는 시기가 빨라야 10세 이후라고 합니다. 대체로 또래집단은 본격적으로 청소년 시기에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린이들은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늘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늘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 커서 부모의 돌봄 없이도 어느 정도 자기의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부모와 함께 있는 것보다 자기들끼리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또래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제 또래집단이 형성되면 그 안에서 큰 자가 되려는 경쟁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짱이 등장하고 짱 중심으로 또래집단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서 큰 자라는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철저하게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과 함께 있으려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또래집단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큰 자가 되려고 경쟁하고 그것 때문에 다투고 적대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제자들은 큰 자가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히려 작은 자가 되려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보살핌 속에 작은 자로 살려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하고 권세를 휘두르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받들어주고 섬겨주려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5절 이하를 보면 큰 자가 되려면 작은 자를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선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작은 자를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면 그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을 마치 주님을 영접하는 것처럼 여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길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특히 7절 말씀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결코 큰 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우리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소위 ‘갑질’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갑질이란 한 마디로 자기가 큰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작은 자들을 무시하고 횡포를 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워낙 갑질이 만연하다보니 ‘갑질 사회’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지난 8월 새로 취임한 경찰청장이 우리 사회의 갑질 횡포를 근절하겠다면 100일간의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9월 한 달간 단속 결과 발표했습니다. 불법행위가 1289건이 적발됐고, 그 중에 1702명이 검거되어 69명을 구속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많았던 사례가 종업원에게 가한 폭언, 폭행, 협박과 같은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사회적인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해 인권을 유린하거나 금품을 착취한 사례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못박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한 마디로 절대로 갑질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 을에게 횡포를 부리지 말 것은 물론이고, 속으로도 을을 무시하거나 깔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갑을 갑으로 보지 말고 또 을을 을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는 갑이 있고 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형제요 자매일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갑이라는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갑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질문은 근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잘못된 질문입니다. 큰 사람이 되려는 욕심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그리고 결코 큰 사람이 되려는 생각도 말고 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큰 사람도 없고 작은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고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경쟁하며 다투고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