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왜 반대하는가 (롬1:24-27)
소강석목사(새에덴교회)
2013년에 김조광수감독과 김승환씨가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을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몇몇 동성애자들 지인들만 참석하였는데, 그들의 공개적인 동성애 결혼은 언론의 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습니다. 더구나 김조광수 커플은 동성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혼인 신고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에서 혼인 신고를 받아주지 않자 행정소송을 하게 되었고 행정소송에서 패하면 헌법소원까지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분들은 대단한 소신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얼마나 동성을 향한 성적 지향이 확실했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사실은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몰래 동성 간의 사랑을 하거나 숨기며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고 어떤 지상파방송에서는 축복의 대담 프로그램까지 방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도 동성애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아니 동성애의 파도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동성애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찬반을 넘어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분위기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젊은 세대는 “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걸 왜 막느냐, 그들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의견이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석천씨가 처음으로 자신은 동성애자라고 스스로 밝힐 때만 해도 당장 방송출연 금지처분까지 받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나니까 다시 홍석천씨가 방송에 컴백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얼마나 인기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요즘은 언론이 동성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도를 합니다. 어떤 언론에서는 아예 동성애를 선정적으로 보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은근히 미화시키고 부추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동성애를 금지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동성애를 하면 법적인 처벌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에서도 동성애가 인권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동성애 금지와 처벌법을 폐기시켜 버렸습니다. 더구나 동성애자들의 행복추구권이라는 미명 하에 동성애자들의 천국이 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동성애 처벌법을 폐기한 대신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차별금지법을 입법하는데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DSM이라는 의학 서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정신의학 박사들 중에 최고의 권위와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랜 임상과 연구를 통해서 정신과 진단기준을 마련한 지침서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정신과 의사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DSM-Ⅰ과 DSM-Ⅱ는 1965년도에 나온 것인데 동성애를 분명히 성격장애로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이 소수의 인권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정신의학회가 열릴 때 동성애가 성격장애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빼줄 것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궐기를 했습니다. 특별히 샌프란시스코에 게이가 제일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1980년대 DSM-Ⅲ에서는 동성애를 성격 장애자에서 자아이질적인 현상이라고 수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94년에 펴낸 DSM-Ⅳ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성적 지향을 선천적 가능성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니까 의학계의 흐름도 동성애자들의 규탄과 궐기, 소수의 인권 보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점 동성애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쪽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더니 미국은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법까지 통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이러한 동성애의 바람이 우리나라에 폭풍처럼 불어오고 있고 그를 공감하는 파도가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콧방귀를 끼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가 침묵만 지키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침묵을 하는 동안에 소수의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미화시키고 홍보하고 합법화하기 위하여 올인을 한 것입니다. 바로 동성애 역시 인권이고 행복추구권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느 때부턴가 동성애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확산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근에 와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 입법까지 요구하며 온갖 로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목사로서 동성애에 대해서 이해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대를 하였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봐도 동성애는 하나님의 죄라고 명하고 철저하게 금기 명령을 하셨지 않습니까? 더구나 한 남자로서 생각해 봐도, 어떻게 남자를 보면 성적 욕망이 끓을 수 있을까, 아무리 이해를 해 보려 해도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아무리 남자가 잘 생기고 훈남이기로서니 어떻게 남자를 바라보고 키스를 하고 싶고 항문성교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단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할수록 무의식중에도 그런 욕구가 없을 것입니다. 목사지만 남자로서 어떤 여자가 보이면 한번 더 보고 싶을 수 있고, 곁눈질을 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정이 들고 친하더라도 남자와 성적 관계를 갖고 싶은 생각이 생길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그런 욕구를 느껴보셨습니까? 남자 성도들이여, 지나가는 남자를 보고 “아, 한 번 품에 안아보고 싶다. 저 남자와 키스를 한 번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여자 성도들이여, 아무리 예쁘고 고운 여자가 있다하더라도 그 여자와 포옹하고 키스도 하고 성적 관계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물론 없는 사람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사실은 성적 정체감이 혼란해져 버렸고 일종의 비정상적 성적 욕구를 느끼는 장애현상이 오기 때문에 동성끼리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일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들 편에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공감하고 수용해 보려고 마음을 한 번 열어보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어떤 주장을 합니까? 먼저 그들의 행복 추구권을 주장합니다. “아니, 우리도 한 남자로 태어나고 한 여자로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데,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을 누가 간섭하고 누가 제재를 한단 말인가. 우리도 동성애를 하고 싶어서 하게 되는가. 살다보니 동성애에 끌리게 되고 동성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동성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을 어떡한단 말인가. 이렇게 행복한 걸 어떡한단 말인가. 우리가 좋아서 이렇게 사는 것을 누가 간섭한단 말인가. 내가 좋고, 내가 행복해서 이렇게 하는 것을 왜 간섭한단 말인가.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동성애를 통해서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데 왜 못하게 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행복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간섭한단 말입니까? 그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 동성애를 그들은 인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인권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성애도 인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동성애자들도 얼마든지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동성애를 하며 살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제발 자기들을 차별하지 말고 간섭하지 말고 차별하지도 말며 내 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찌보면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 뿐입니까? 그들은 인간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평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등의 원리를 동성애로 적용을 해서 “남녀만 사랑하는 것인가, 동성끼리도 사랑하는 것이지. 우리도 평등하게 봐야 한다. 남녀만 사랑하는 것은 불평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끼리 좋아하는 것도 성적 평등이라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얼마나 그럴듯한 주장입니까?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소수자의 논리를 펼칩니다. 동성애자들은 역사상 소수요, 약자였다는 것입니다. 소수이고 약자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약자고 소수이기 때문에 약자와 소수인 동성애자들을 보호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성숙이고 사회 성숙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약자고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이유에서 소수차별금지법까지 제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그럴듯한 이야기입니까? 여러분도 언뜻 들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동성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만 알고 부분적으로만 이해한 젊은이들이 동성애자들을 옹호하는 쪽으로 가 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그들의 요구 좀 들어주면 될 게 아닌가, 그들을 내 버려둬라. 동성애를 하든, 동성결혼을 하든 간섭하지 말고 터치하지 말고 자기들끼리 행복하게 살게 내 버려두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요즘 지식인들 일부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옹호를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을 옹호해 주고 지지를 해 주어야 하겠죠. 그리고 그들이 동성애를 해도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도록 응원을 해 주어야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을 차별하고 폄훼하는 자들에게 처벌을 하라는 차별금지법도 만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정말 그럴까요? 행복추구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개인이 행복하다는데 뭐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개인이 행복하다고해서 사회적, 법적 제재를 전혀 안 받아도 되는 것일까요?
그러기로 말하면, 마약을 복용해서 행복하다고 한다면 당연히 복용을 허락해야하지요. 음주운전을 해서 개인이 해복하다면 당연히 음주운전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어떻게 아무리 개인이 행복하다고 해도 사회질서나 공익을 위해서 제재하고 금지해야 할 것은 제재하고 금지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나라는 동성애자들을 단 한 번도 제재를 해 본 적도 없고 간섭을 해 본적도 없습니다. 또 금지를 한 적도 없고 처벌규정을 만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간섭을 안 하는데 간섭을 하는 것처럼 주장을 하느냔 말입니다. 단 한 번도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고 처벌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왜 소수차별금지법을 만들어서 다수의 인권이 역차별을 당하게 만드냐는 말입니다. 침묵하는 다수의 인권자들도 표현의 자유가 있고 사상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것을 억압하느냔 말입니다.
그러면 과연 동성애가 인권입니까?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인권의 근본적 의미는 천부인권, 자연인권에서 왔습니다. 윌버포스가 해왔던 인권운동, 링컨, 마틴 루터킹, 토마스 재퍼슨의 인권운동의 의미는 전부 천부인권, 자연인권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성애가 인권으로 인정받으려면 동성애에 대한 성적 지향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성애가 천부적으로 타고난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성애 본능은 태어날 때부터 동성애를 하도록 하는 DNA를 갖고 태어났다고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1993년에 미국의 해머 연구팀은 동성애자들의 염색체를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전자 중 다형질 유전자인 Xq28이 동성애의 본능과 욕구를 일으킨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이 해머 역시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래서 해머 박사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떠들어 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서구의 언론들은 동성애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대서특필했습니다. 바로 이 결과로 일반인들에게 동성애는 유전자 때문이며 이 유전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의지나 감정에 관계없이 운명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일부 진보적인 기독교 지도자들도 동성애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고 까지 하면서 변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에 캐나다의 라이스 박사 연구팀은 해머 보다 더 많은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Xq28 염색체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들을 더 광범위하고 더 구체적으로 분석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 해머 박사가 연구한 결과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라이스 박사 연구팀은 Xq28이 동성애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해머 박사를 포함한 더 많은 연구팀이 더 많은 동성애자의 가계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성애와 유전자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는 언론에 크게 부각이 되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일반인들은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는 오해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동성애를 선천적이고 유전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것을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성애 옹호론자들이 선천적 호르몬설 등 별것을 다 주장하였지만 결국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전부 다 후천적으로 설득되고 체득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인권이 아닙니다. 절대로 인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적 평등의 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자들이 그런 식으로 동성애의 평등을 주장한다면, 나중엔 평등의 의미가 너무 왜곡되고 변질되며 더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짐승과 성적 관계를 하는 것도 평등이고, 어린이와 성적 관계를 하는 유아성애자도 평등이며, 죽은 시체와 성관계를 하는 것도 평등이라고 할 것입니까?
뿐만 아니라 소수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자들 모두가 약자고 그 약자를 보호한다는 논리를 편다면, 이 세상은 소수자의 소용돌이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오고 말 것입니다. 동성애가 소수자면 앞으로 마약하는 사람도 소수자의 논리로 이해해야겠지요. 부자나 강자가 소수라고 한다면 부자를 보호해야겠지요. 또 시체성애자, 유아성애자, 기계성애자, 수간성애자, 다 소수라고해서 이 사람들을 약자처럼 보호해 주어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가면 이 세상은 아주 끝없는 소용돌이와 블랙홀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과 논리는 궤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동성애를 반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당연히 동성애를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동성애는 인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권운동은 기독교인들이 해 왔습니다. 윌버포스, 마틴 루터킹, 토마스 제퍼슨, 왜 이들이 인권운동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모두 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천부 인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권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부지중에, 즉 비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예비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도끼날이 날아가 옆에 있는 사람을 죽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지만 도피성으로 도망가게 해서 그 사람이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소수의 인권을 중요하게 배려해주신 겁니다.
신19:4-5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신약은 어떻습니까?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바리새인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율법이 맞지만, 죄 없는 자부터 그 여인에게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소수의 인권을 존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요8:7(하) ...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바로 이런 성경적 인권신앙에 기초해서 그들이 인권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인권은 소수의 이익과 욕망의 충족으로 자리바꿈을 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물론 소수의 인권도 반드시 보장 받아야 합니다. 소수라 할지라도 인권 자체는 존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수의 욕구 충족이나 방종으로 잘못 가면 그것은 더 이상 인권이 아니라 이권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동성애를 소수의 인권으로 규정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은연중에 동성애를 소수의 인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적이고 시대적 추세이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받아들이고 수용하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치인들이나 목사님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동성애가 인권일까요? 현대적 인권의 기본적 개념은 생명, 자유, 재산을 타인이나 국가로부터 침해 받지 않을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상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천부인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이 주신 인권이라는 말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자연권 사상이라고도 합니다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평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살고 순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에 있어서는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할 뿐만 아니라 남자는 여자와 성관계를 하고, 여자는 남자와 함께 성관계를 하는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적으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순리가 아니라 역리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인권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욕망을 위한 이권으로 전락을 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소수인권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천부인권이 아니라 잘못된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이권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2) 동성애는 국민보건에 절대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전환자들이 얼마나 빨리 늙어버린 줄 아십니까? 대부분 60을 못 넘기고,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조로현상이 너무 빨리 옵니다. 이건 하리수씨가 직접 했던 말입니다. 성전환을 했던 하리수씨도 얼마나 조로한지 아세요? 더구나 남성 동성애자 같은 경우는 애널섹스(Anal Sex)를 합니다. 즉, 항문성교를 하는데 항문은 절대로 성기관이 아니라 배설기관입니다. 그곳은 온갖 병균과 바이러스가 가장 많은 불결한 곳입니다. 이런 곳에다가 성행위를 하다보니까 악성치질이 생기고 항문출혈, 장질환 등 온갖 병이 다 생깁니다. 그리고 AIDS가 가장 잘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AIDS는 동성애자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AIDS는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시키고 맙니다. 여러분! 변을 보라고 만들어놓은 항문으로 왜 성교를 합니까? 그러니까 AIDS병이 걸리고 그 병이 이웃에게 감염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AIDS 신규감염환자의 94%이상이 남성동성애 때문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AIDS 환자는 국가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은 줄 아십니까? 모든 의료비를 전액지원 받습니다. 이 사람들은 입원을 하면 1인실로 입원을 시켜주고 간병인까지 붙여 줍니다.
그들에게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이 약값만 350만원이라는 보도도 있고 모병원의 자료에 의하면 500만원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사는 환자가 한달에 한번 치료를 받기 위해 육지로 나오면 왕복 비행기 티켓 비용까지 지급을 해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동성애를 통해 10대, 20대 AIDS 환자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전부 다 AIDS 환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유독 우리나라는 AIDS 환자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는 자살률이 많습니다. 지금 당장은 엽기적인 괘락이나 행복을 느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 자체가 혼돈과 공허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다보니까 자살을 많이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동성애는 국민보건에도 엄청난 해악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3) 창조질서에도 절대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역행하는 것이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와 남자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녀의 결혼과 가정 제도를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습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 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런데 마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대적하고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마귀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혼돈하게 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공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혼돈하게 하고 공허하게 하는 일들 중의 하나가 동성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각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후에 남자는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여자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남녀가 한 몸이 되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성적인 정체성을 혼돈 시키고 공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남자인줄을 모릅니다. 또 여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여자인줄 모릅니다.
왜냐면 자기 안에 있는 성적인 정체성을 사탄이가 혼돈하게 하고 공허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성적인 호기심이 생기며 욕망을 가져야 하고 여자도 남자를 보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정체성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어 버리니까 동성애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통해서는 생명을 생산할 수도 없고 번식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가정을 이룰 수도 없고 생육하고 번성할 수도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동성애는 하나님 뜻이 아니요, 창조 질서에 역행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이 시대를 모른다고, 지금은 시대가 너무 달라졌다"고 그런 말을 합니다. 물론 저도 시대의 트렌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진다고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뜻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질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 하나님이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면 오늘날도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성애를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아름다운 미래 사회를 이루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란, 성의 정체성이 해체되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그런데 성의 정체성 해체는 자아 정체성 해체에서 시작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때 더 그런 경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갈수록 사람들이 자꾸 광란적이고, 엽기적으로 변해갑니다. 그런데 동성애 차별 금지법이 합법화되면 미래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동성애자들은 통계에 의하면 대부분 2-3년 동안 서로 사랑을 하다가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일찍 병들어서 단명을 한다든지 단명을 하지 않아도 노년에는 다 홀로 삽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를 생산할 수가 없으니까 입양을 합니다. 그런데 입양을 해서 아이를 키우더라도 그 아이들 대부분이 후천적으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동성애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구촌이 얼마나 황폐한 지구가 될 것이냐 이 말입니다. 미래사회가 얼마나 혼돈하고 공허한 사회가 될 것이냐 이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지구촌은 텅 빈 지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거야 말로 미래의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는 공공의 적이요 사회의 적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법화 쪽으로 가려고 하지 말고 치유와 회복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대본을 쓰는 사람이나 드라마 작가도 좀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예술의 창작성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고 시청률이나 흥행이나 인기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다같이 아름다운 미래 건설을 위해 함께 염려하며 힘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이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자기도 앞으로 남자 친구하고 결혼하고 여자 친구하고 결혼하겠다고 말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되고, 우리의 미래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하고, 사회가 망하기 전에는 가정이 망하는 것을 봅니다. 로마가 망하고, 폼페이가 망했던 원인도 동성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사회를 위해서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5) 동성애는 법의 정신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에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를 비롯해서 소수 인권을 그렇게 보호하고 옹호하고 싶다면 기본법으로가 아니라 개별입법으로 해결을 해야 합니다. 구태여 동성애 차별금지법까지 만들어서 과잉보호를 하다가는 그 법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다수의 사람들에게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법적인 정신으로 보더라도 동성애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법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공동체, 선한 시민사회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율법에서도 금지했고 지금도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해서 동성애자를 정죄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성애자들이 교회를 오더라도 교회는 그들을 환영하며 있는 그대로 맞아 주어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치유의 대상이고 회복의 대상입니다. 그것이 이 땅을 고치고 사람을 고쳐야 할 교회의 과제요 사명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결코 동성애 자체를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동성애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동성애는 법의 정신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6) 성경이 동성애를 반대하고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동성애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가증한 것이요 저주의 대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20:13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롬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동성연애)하는 자나....
보십시오. 얼마나 성경은 동성애를 가증한 것으로 저주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신약에서는 동성애 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동성애자를 처벌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동성애 처벌법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고 섬김의 대상입니다. 다만 우리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를 교회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단체가 앞장서고 종교를 초월해서 유교나 불교나 가톨릭에서도 함께 반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자들도 동성애를 보도할 때 다시 생각해 보고 보도해야 합니다. 또한 드라마 작가들도 드라마를 만들 때, 무조건 미화시키지 말고 다시 한 번 사회와 미래를 생각해 보며 만들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가 되고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미래의 대한민국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일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동성애자들을 존중하면서도 동성애를 민주적이고 품격 있고 신사적으로 반대하여 교회를 지키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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