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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0612]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마 14:22-33

(설교자: 마경훈 목사)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먼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주님은 밤을 새워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바다를 건너다가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바다의 광풍은 뱃사공들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광풍입니다.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바다에서 고기잡이 일을 하던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제자들의 능력으로는 광풍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제자들은 광풍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밤 4경이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1시간 정도면 건널 수 있는 바다인데 제자들은 광풍으로 몇 시간 째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광풍이 이는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주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광풍 속에 있던 제자들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이 걸어서 오시는 모습을 보고 유령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라베드로는 담대하게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에게로 가는 도중에 바람을 보자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다 위로 걷던 몸이 바다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붙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주님이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절을 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박인걸 목사님은 세상은 바다와 같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갈릴리 바다와 이 세상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은 어둡습니다. 여기 4경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입니다. 밤은 캄캄합니다. 앞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불빛이 없었습니다. 사물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어두움이 임하면 사람들은 두렵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두운 곳입니다. 윤리적으로 어둡고, 도덕적으로 어둡고, 영적으로 어둡습니다. 어둠이 가득한 세상은 혼란과 거짓으로 가득합니다.

 

둘째, 이 세상에는 풍랑이 있습니다. 돌풍이 있습니다. 지중해보다 낮은 지형으로 인하여 회오리바람이 자주 일어나고, 헐몬산의 제트기류가 바다에 큰 풍랑을 일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렇게 풍랑이 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가정도 풍랑을 만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면 고스란히 그 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불안정합니다.

 

셋째, 이 세상은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이 세상에도 두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발붙이고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그가 정치 생활에서 은퇴한 후 고향인 미주리 주에 기념 도서관을 짓고 어린이들과 자주 어울렸습니다. 한 번은 도서관에 온 어린이가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는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반장이었지요?”, “아니야, 나는 꼴찌였어. 나는 겁이 많아서 친구들이 고함만 치면 움츠리고 운동을 하지 못해서 애들이 운동할 때 나는 구경만 했단다. 그리고 나는 눈이 너무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성경책을 읽었어. 매일 성경을 읽었단다. 그 성경에서 빌립보서 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 한마디가 내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고 은퇴할 때까지 중심을 잡아 주었단다. 나는 언제나 할 수 없다. 못한다. 약한다. 허약하다. 할 때 마다. 이 빌립보서 413절을 외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할 때 내 속에 용기가 생기고 힘이 불끈 생겨났단다.”라고 말했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말씀에 의지해서 용기와 힘을 얻고 제2차 대전을 무사히 승리로 이끌고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용기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이 세상은 지나가는 곳입니다. 제자들은 바다 위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34절에 보니 그들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곳이 아닙니다. 잠간 지나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향해 여행하는 순례자들입니다.

 

다섯째, 이 세상은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곳입니다. 제자들은 광풍을 이길 능력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광풍을 이길 능력이 없는 제자들을 도우셨습니다. 우리도 광풍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주님에 대하여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를 나누겠습니다.

 

1.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22-23절을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신 후에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날이 어둡기 시작할 때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신 후에 제4경에 제자들에게 가시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4경은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에서 6시입니다.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주님이 거의 밤을 지새워 기도하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기도하실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던 일들이 몇 번 나옵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셨습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과의 대면이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연인이 만나는 이유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만나고 또 만나서 교제하려고 만나는 것입니다. 기도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다윗이 시 18:1에서 한 고백을 좋아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다윗은 하나님을 힘으로만 삼지 않고 사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이용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도생활은 하나님과 교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도 본문과 동일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 6:15을 보면 이 사건이 나오기 전에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유혹입니다. 주님은 유혹이 올 때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유혹을 이기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26:39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41절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시험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역하시기 위하여 늘 기도생활을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12명의 사도들을 선택하실 때도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역인 십자가를 지는 사역을 앞두고도 철야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주님은 눅 22:31-32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베드로가 시험에 들어서 주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으나 그가 돌이키고 다시 주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8:34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니 용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하는 시간은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고 우리들은 그 대화 가운데서 새 힘을 얻게 되고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복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는 일정한 장소를 갖기를 바랍니다.

이삭에 관한 전설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난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 이후에 이삭의 삶에는 모리아산의 체험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삭은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려운 문제만 있으면 자기가 죽을 뻔한 바위를 찾아서 기도하며 매달려서 답을 얻고 새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모리아산은 이삭에게 응답의 자리였습니다.

삭개오에 관한 전설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매국노였습니다. 돈은 많았으나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고 사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너무나 외로웠기에 예수님을 만나 하소연하고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는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뽕나무 밑으로 오셔서 삭개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가셔서 하룻밤을 지내셨습니다. 지나가시다가 그 집에 머무르신 기록은 이곳뿐입니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인생이 바뀐 구원의 밤이었습니다.

그 후 일주일 만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삭개오는 자기에게 세리장 임명장을 수여한 빌라도를 찾아 갔습니다. 임명장을 내던지며 외쳤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당신에게 충성하지 않겠소.”라고 했습니다.

그 후 삭개오는 문제만 생기면 뽕나무로 가서 뽕나무를 붙들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의 해답이 떠올랐고 새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삭개오는 뽕나무를 자기 인생의 중심지로 삼았고 뽕나무를 찾아가서 기도하고 응답을 누렸다고 합니다. 삭개오에게는 기도의 장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기도의 장소가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교회가 기도하기 좋은 곳입니다. 우리 주님은 막 11:17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따라합시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다

요즘, 청년들과 학생들이 주일 오후에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아마 기도하면서 힘든 학생, 청년들도 있을 것입니다. 주일 아침에 늦잠도 자지 못하고 일찍부터 교회 와서 학생예배 드리고, 오전예배 드리고, 오후예배 드리고, 또 기도회를 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교회에서 그렇게 모여서 기도했던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바다 위를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

인간은 어느 누구도 바다 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주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바다와 파도와 바람에 의해서 제한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가장 알려진 이름이 예수입니다. 1:21을 보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 잘 알려진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1:23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도 있습니다. 9:6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여기 보면 주님의 다른 이름이 나옵니다. 가장 먼저 나온 이름이 기묘자입니다. 기묘라는 말은 기이하고 묘하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니까 기묘를‘Wonderfu’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주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주님은 경이로운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사역에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많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사건을 빼버리면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주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셨고, 수많은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홍해 바다를 갈라주셨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주의 백성들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를 무너뜨려주셨고, 심지어 태양이 멈추는 기적도 일으켜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주님은 바다 위를 걸으신 분입니다.

 

3. 바다 위도 걷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참으로 담대합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시니 정말 바다 위로 내려가서 걸었습니다. 베드로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베드로가 순종하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바다와 파도와 바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임하면 말씀을 붙들고 담대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바다 위를 걸었던 베드로처럼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3대 대학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인데, 3대 대학 중의 하나인 예일 대학에 단 바틀렛(Dan Bartlett)이라는 유명한 교육학 박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를 보면 보는 사람들마다 이 세계적인 대학에 어떻게 저런 교수가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다 깜짝 놀랍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흑인이고, 둘째는 언청이인데다가, 셋째는 귀 밑에는 큰 혹까지 나있기 때문입니다. 보기에도 아주 흉측한 그가 어떻게 이 세계적인 대학의 교육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는지, 다들 의아해 했습니다.

그는 부모조차도 외면할 정도로 아주 흉한 모습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자라면서부터 부모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항상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멸시와 천대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의무 교육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교까지는 나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백인의 가정에서 막노동을 해야 하는 일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성실한지, 한 밤중에 남이 안 볼 때에도 쓸고 닦고 열심히 청소를 했습니다.

그 백인 주인은 예수님을 잘 믿는 분이었습니다. 이 백인 주인은 흑인인 이 청년을 전도했습니다. 그는 이 주인 아주머니의 인도를 받고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나가서 평생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절망 속에서 마지못해서 살았지만, 예수를 믿고 나서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기도 흉한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하신다는 확신과 굳건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마태복음 28:20 말씀을 읽고서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세상 사람들, 부모, 형제, 친구, 모든 사람이 다 떠나도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그 말씀을 읽고서 그는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나는 결단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나도 하나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틈틈이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능력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말씀을 힘입고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술이나 마시고, 절망하고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외모, 그런 가정, 그런 환경 속에서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하던 날, 그를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축하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반 바틀렛 박사는 말하기를, “나에게는 박사 학위가 감격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이 더 감격스럽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반 바틀렛 박사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그는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물위를 걷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기적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없는데 바다 위를 걸으려고 하는 것은 만용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기적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비상섭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기적보다 더 많은 자연적인 사건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기적만을 바라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일상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면 그 말씀을 붙잡고 담대하게 도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바다 위도 걷게 하시는 분입니다.

 

4.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는 바다와 파도와 바람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순간 그는 두려움을 느꼈고 그의 몸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소리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주님은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물에 빠져서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손을 내밀어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넘어져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제가 친구에게서 받은 글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조용필 명곡인 비련에 얽힌 일화를 소개합니다. ‘비련이라는 곡 아세요? “기도하는...” 이렇게 시작하는 곡입니다. 조용필 전 매니저인 최동규씨가 과거 조용필 4집 발매 당시 인터뷰 했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조용필이 과거 4집 발매 후 한창 바쁠 때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 원장은 자신의 병원에 14세의 지체장애 여자아이가 조용필 4집에 수록된 비련을 듣더니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입원 8년 만에 처음 감정을 보인 것입니다.

이어 병원 원장은 이 소녀의 보호자 측에서 돈은 원하는 만큼 줄테니 조용필이 직접 이 소녀에게 비련을 불러줄 수 없냐며 와서 얼굴이라도 보게 해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최동규씨는 당시 ()용필이가 캬바레에서 한 곡 부르면 지금 돈으로 3,000만원~4,000만원 정도를 받았다며 그런데 조용필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바로 병원으로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그날 행사가 4개였는데 모두 취소하고 위약금 물어주고 시골 병원으로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병원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했습니다.

조용필은 병원에 가자마자 사연 속의 소녀를 찾았습니다. 소녀는 아무 표정도 없이 멍하니 있었습니다. 기적은 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조용필이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자 소녀가 펑펑 운 것입니다. 이 소녀의 부모도 울었습니다.

조용필이 여자애를 안아주고 사인 CD를 주고서 차에 타는데 여자애 엄마가 돈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용필은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더 비쌉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세상에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많다는 걸 잊지 맙시다. 그리고 돈 보다 귀한 것은 어려운 분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넘어진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손을 잡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주님의 손을 잡으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손을 내밀어 주실 때 우리는 그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교회에 출석하던 허남준 집사라고 젊은 집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군대 갈 때 고기 집에 고기값을 계산하고 갔습니다. 개척교회 전도사라 고기도 못 먹을까봐 저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고마운 친구입니다. 그 집사가 홍대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그 집사가 그림을 하나 보여주었습니다. 제목은 베드로였습니다. 두 개의 손을 그린 그림입니다. 한 손은 위에서 밑에 있는 손을 붙잡아주고 또 한 손은 아래에서 위에 있는 손을 붙잡고 있는 그림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을 붙잡는 방법은 늘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여, 주여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디 목사님은 키가 크고 몸이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아침에 시카고에 눈이 와서 온통 공원 전체가 눈 천지가 되었는데 또 비가 와서 얼어붙어서 빙판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린 딸과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목사님은 딸이 빙판에서 미끄러질까봐 딸의 손을 단단히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딸이 아빠, 손잡지 마! 내가 걸을 수 있어. 나도 걸을 수 있다고!”라고 말했습니다. “아니야. 위험한데...”, “아니야. 아빠 손잡지 마. 나도 아빠하고 같이 걷겠어.” 그래서 둘이 걸어가다가 얼마 안 있어 딸이 쭈욱 미끄러져서 넘어졌습니다. 엉덩방아를 찧고 응아~’하고 울기에 이것 봐라! 아빠가 잡아 주겠다는데 왜 고집을 부르고 혼자 걷다가 그렇게 엉덩방아를 찧느냐. 자 잡아 줄께!” 하니까 손가락 하나만 잡아. 손가락 하나만 잡아라고 하며 손가락만 내놓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손가락 하나만 잡고 걸어가다가 또 미끄러지니까 손가락이 쑥 빠져 가지고서 이제는 진짜 크게 자빠졌습니다. 딸은 또 울어 재켰습니다. 그러니까 아빠가 일으켜서 손 전체를 덥석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같이 산보를 하니까 미끄러져 넘어지면 달랑 달리고 미끄러져 넘어지면 달랑 달리고 해서 미끄러져도 자빠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함께 걸어가서 공원 산책을 하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주님과 손을 잡고 걸어갑시다. 주님의 손을 단단히 잡아야 합니다. 주님은 손을 내밀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삶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손을 붙들어주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셨던 분입니다. 바다 위를 걸으신 분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바다 위도 걷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시는 분입니다. 늘 주님을 부르십시오. 늘 주님을 찾으십시오. 늘 겸손한 마음으로 주여, 주여를 부르시고 주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파도와 바람을 잔잔케 하신 만물의 통치자이십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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